‘두 팔 없는 호르니스트’ 펠릭스 클리저 “운명은 정해져 있는게 아니에요”

2022. 11. 2.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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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출신 호른 연주자
11월 9일 내한 리사이틀
발가락ㆍ입술로 호른 연주
 
주기적 좌절의 순간 경험
포기ㆍ좌절 보다는 도전
“음악으로 행복과 기쁨 전하고파”
독일 출신의 ‘두 팔 없는 호르니스트’ 펠릭스 클리저는 그의 왼발과 입술로 아름다운 호른 연주를 들려주는 음악가다. 다섯 살에 처음 호른을 배운 그는 “사람들은 내게 직업 연주자가 되긴 어려울 거라고 했다”며 “하지만 운명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인아츠프로덕션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제가 어떤 음악을 만드는지, 어떤 소리를 내는지는 사람들에게 중요하지 않았어요. 사람들은 제게 직업 연주자가 되긴 어려울 거라고 했어요. 전 그 사람들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했다고 생각해요.”

따뜻한 음색의 호른은 오케스트라의 악기 중에서도 연주가 어려운 악기로 꼽힌다. 연주 방법부터 쉽지 않고, 음정을 맞추는 것도 까다롭다. 음을 내기 위한 호흡, 그것을 조정하는 입술의 타이밍이 오차 없는 연주의 핵심이다. 이런 이유로 명문 오케스트라에서 관악기의 수준은 호른의 기량으로 평가된다.

펠릭스 클리저(31)는 특별한 호르니스트다. 호르니스트는 왼손으로 음정 조절 밸브를 누르고 오른손으로는 나팔에 손을 넣어 음색과 음량의 변화를 조절한다. 선천적 장애로 ‘두 팔이 없는’ 클리저의 연주 방식은 이와는 다르다. 그의 발은 왼손이 되고, 그의 입술은 오른손이 된다.

“제게 살아갈 힘을 주는 사실은 모든 사람은 누구나 강점과 약점을 갖고 있다는 점이에요. 사람의 운명이 미리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거죠.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차이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약점이 장애인에게 추가된 것뿐이에요. 제 경우엔 장애가 한눈에 바로 보일 뿐이고요.”

영국 본머스 심포니의 상주음악가로 활동 중인 펠릭스 클리저는 내한(11월 9일·서울 예술의전당)에 앞서 진행한 서면 인터뷰에서 “아무리 큰 약점이라도 할 수 있는 일이 분명히 있고, 모든 약점은 강점이 될 수 있다. 이 사실을 안다면 한계란 없다”며 그의 지난 시간을 돌아봤다.

호른을 처음 배운 것은 다섯 살 때였다. 그는 “호른의 가장 흥미로운 점은 다양한 음색의 연주가 가능한 것”이라고 했다. “호른 연주자가 한 음만 연주해도 단번에 매우 특별한 분위기가 만들어져요. 다른 악기는 할 수 없는 일이죠. 전 호른으로 다양한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어요.”

‘두 팔 없는 호르니스트’ 펠릭스 클리저 [인아츠프로덕션 제공]

‘직업 연주자’가 되는 길은 쉽지 않았다. “악기를 고정하기 위한 스탠드를 만들었고”, “오른손이 하는 일을 입술이 할 수 있도록” 연습을 거듭했다. 그는 “모든 음악가가 그렇듯 악기를 배우다 보면 매우 자주 실망한다”고 했다.

“주기적으로 좌절의 순간을 경험해요. 관건은 그런 상황에 어떻게 대처하느냐 예요. 포기할 것인가 도전할 것인가, 둘 중 하나죠. 인생의 모든 일이 비슷해요. 살다 보면 더이상 못하겠다고 느낄 때가 있어요. 그냥 주저앉을지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할지는 자신의 결정에 달려있어요. 이런 점 때문에 오히려 삶이 재미있어요.”

내내 꽃길은 아니었을지라도, 그는 걸음을 멈추진 않았다. 호른을 배운지 8년째 되던 해, 열세 살인 그는 하노버 음대의 예비학생(2004)이 됐다. 3년 후엔 정식으로 입학했다. 2008년부터 2011년까지 독일 국립 유스 오케스트라에서 활동하며 음악적 역량을 인정받았다. 첫 음반인 ‘꿈, 호른과 피아노를 위한 낭만음악‘(2013)은 독일의 저명한 음악상인 에코 클래식상 ‘올해의 영 아티스트상’을 받았고, 2016년엔 슐레빅 홀스타인 음악제에서 레너드 번스타인 상을 받았다. “정확하고 완벽한 연주”, “다양한 표현력과 음색을 가졌다”는 평을 듣는 연주자다. 그는 “연주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을 잘 아는 일”이라며 “내가 어떤 사람인지 충분한 이해가 있어야 내게 도움이 되는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을 분명히 파악하고, 연주에도 적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클리저의 열린 시야와 가치관은 그의 음악 세계와 자신 안의 내러티브를 확장해갔다. 그는 “특별히 한 사람에게 영향을 받지는 않았지만, 무수히 많은 사람이 내게 영향을 줬다”고 한다.

“우린 모든 사람에게 영감을 받아요. 자신의 영역에만 머무르지 않고 시야를 넓히는 것이 음악가로도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누군가를 판단하고 평가하기 시작하는 순간 우리는 자신을 폐쇄적으로 닫아버리니까요. 모든 사람을 열린 마음으로 대해야 해요. 어떤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과 과정을 통해 우리도 배울 수 있고, 배운 만큼 발전할 수 있어요.”

‘두 팔 없는 호르니스트’ 펠릭스 클리저 [인아츠프로덕션 제공]

내한 연주에서 그는 피아니스트 조재혁과 함께 슈만, 뒤카, 슈트라우스, 베토벤, 글리에르, 라인베르거를 들려준다. 뒤카의 ‘빌라넬레’는 “6분 가량의 짧은 곡이지만 호른의 모든 개성이 담겼다”. 클리저는 “슈만의 ‘아다지오와 알레그로’와 같은 작품은 첼로를 위한 곡으로 알려져 있지만 원래 호른을 위해 만들어졌다”며 “베토벤 소나타를 비롯해 위대한 작곡가들이 남긴 호른 작품들을 널리 알리고 싶어 구성한 프로그램”이라고 귀띔했다.

음악가로 그의 바람은 거창하거나 거대하지 않다. 그간 쌓아온 많은 경험을 자신처럼 양팔을 쓸 수 없는 음악가들을 위한 활동 지원으로 나누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는 “나의 영향력으로 사람들을 통제하는 일에는 관심이 없다”고 말한다.

“사람들이 저를 어떻게 보고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아요. 그건 제 문제가 아니라 저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문제니까요. 사람들이 생각하는 저와 진짜 제 모습은 달라요. 그러니 그게 어떻든 저는 괜찮습니다. 전 그저 제 음악으로 세상에 기쁨을 전하고 싶어요. 제 바람은 오직 그것뿐이에요. 제 음악을 듣는 사람들이 행복하다면 그걸로 저 역시 행복합니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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