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경찰 내분 격화… 일선에선 분통, 윗선은 책임회피 급급

윤예원 기자 2022. 11. 2.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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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선 경찰들 “병력 요청 들어줬나… 위에서 현장에 책임 전가해”
전문가 “일선 감찰보다는 윗선 결정에 대한 중립적인 감찰 필요”

경찰청이 이태원 참사 전 들어온 압사 위험에 대한 신고 내용을 언론을 통해 공개한 후 경찰 내부에서는 윗선이 현장 경찰을 희생양으로 삼고 있다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일선에서는 지휘부의 명령으로 움직이는 경찰 조직 특성으로 현장에서 근무하는 연차 어린 경찰관들이 독박을 쓰고 있다는 반응이다.

지난 30일 새벽 서울 용산구 이태원 일대에서 경찰과 소방대원들이 대규모 압사사고가 발생한 지역을 수습하고 있다./뉴스1

전날인 1일 오후 경찰 내부망에는 자신이 용산경찰서 이태원 파출소 소속 직원이라고 밝힌 A씨의 글이 올라왔다. A씨는 “압사 우려 신고는 매해 있었다”며 “사건 당일 오후 6시부터 10시까지 총 79건의 신고가 접수됐고 당시 근무 중이던 20명의 이태원 파출소 직원들이 최선을 다해 근무했다”고 밝혔다.

이어 일대 인원 통제 등을 위해 지원을 요청했지만 모두 거절당했다고 설명했다. A씨는 “핼러윈 때 용산경찰서에서 서울청에 기동대 경력 지원을 요청했지만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핼러윈 보름 전에 이태원지구촌 축제 당시 질서유지를 위해 기동대 지원을 요청했지만, 윗선에서 거절했다”고 밝혔다. A씨는 “윤희근 경찰청장은 어떤 근거로 112신고 대응이 미흡했다면서 용산서 직원들을 무능하고 나태한 경찰관으로 낙인찍히게 하냐”고 비판했다.

A씨 뿐 아니라 일선에서는 이번 경찰청 발표에 대해 “윗선이 책임을 전가하고 있는 것 같다”며 아쉽다는 반응이다. 한 경찰 관계자는 이번 이태원 참사에 대한 경찰 책임론에 대해 “아프다”라면서도 “재난 사고에서는 항상 책임자를 찾으려고 하는데, 그게 경찰”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독박을 쓰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며 “서로 살아남으려고 내부분열까지 일어나는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경찰 관계자 역시 “평소에도 핼러윈 시즌이면 비슷한 신고가 많이 들어왔다고 한다. 현장에서는 상황을 잘 아는 만큼 조처를 하려고 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위에서는 일선 경찰들이 모두 잘못한 것처럼 말하니 담당 소속은 아니지만 섭섭한 마음이 있다”고 밝혔다.

자신을 이태원 파출소 소속 직원이라고 소개한 B씨는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인 블라인드에 ‘언론 보도 등을 보고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며 글을 올리기도 했다. A씨는 “서울시장, 경찰청장, 용산구청장은 아무 대책도 없었고 관심도 없었다”며 윗선 스스로 먼저 감찰을 받으라고 비판했다.

B씨는 “이태원 파출소 직원 90%가 2030 젊은 직원들이고, 그중 30%는 시보도 끝나지 않은 새내기 직원과 기동대 현장 경험 없이 일선으로 나온 직원들”이라며 “늘 더 많은 직원이 필요했는데, 그에 대한 적절한 대응은 있었냐”고 반문했다. 이어 “광화문 집회에 그렇게 많은 기동대가 필요했나. 체감상 VIP 연도경호에 동원된 인원보다 덜 지원해준 것 같다”고 적었다.

앞서 경찰청은 전날 공개한 사고 당일 이태원 인파 관련 112신고 접수 녹취록 11건을 공개했다. 이중 다수는 압사 사고 위험성을 알리며 경찰의 신속한 조치를 요구하고 있었다. 윤 청장은 전날 브리핑을 통해 경찰의 현장대응이 미흡했다며 사과하고 고강도 감찰을 예고했다.

경찰청 감사의 대상이 된 용산경찰서 내부에서도 불만이 나온다. 본청 차원의 대응이 부족했던 걸 일선 경찰서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어느 선까지 책임을 물을 것인지를 놓고 경찰 내부에서도 눈치 싸움이 치열하다는 뒷말까지 나온다.

김영식 서원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결정권자가 아닌 일선 경찰들에 대한 책임을 묻기보다는 대비책을 세우지 못했던 윗선에 대한 고강도 감찰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지휘부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현장 인력에 대한 감찰은 상부의 ‘꼬리 자르기’라는 것이다.

김 교수는 이날 “경찰 조직은 최일선까지 스스로 움직이지 않는다. 지휘부 차원에서 상황 관리가 이뤄지고 명령이 내려간다. 일선 112상황실, 순찰차가 잘못됐다고 말하는 건 지엽적인 문제다. 중요한 건 사전 대비, 그리고 상황 관리 과정에서의 지휘부들의 정책적인 판단이 옳았는지는 가리는 것이다.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자꾸 일선에 대한 감찰로 방향을 돌리는 거 같은데, 기본 방향 자체가 잘못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외부의 중립적인 민관 합동 진상조사위원회에서 용산서장부터 위에 지휘부들의 사전 대비, 상황 관리 과정에서의 지휘를 제대로 했는지를 가려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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