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C 비극적 사고가 드러낸 '참사 구조' 외면한 언론은
'구조적 문제' 지적한 한겨레·경향, 조선일보·경제지는 '단순 처리'
같은 사안 놓고 "중대법 필요한 증거" vs "중대법 효과 없다는 증거"
[미디어오늘 박재령 기자]
SPC계열의 빵 공장에서 지난달 15일 사망 사고가 일어난 지 2주가 흘렀다. 다수의 언론이 사고가 날 수밖에 없었던 '구조적 문제'에 초점을 맞췄지만 있지만 일부 언론은 침묵하는 모양새다.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한 논조 차이가 보도 방식과 뉴스 가치 차이로 귀결되고 있다.
“또 SPC” 노동 현장 사고의 '반복' 지적한 보도들
사건이 일어난 직후 대부분의 일간지는 노동 사고의 '연속성'에 주목했다. 서울신문은 지난달 17일 8면에 '또 혼자 일하다…제빵공장 기계에 끼여 숨진 스물셋' 기사를 냈고, 경향신문은 9면에서 “이 공장에서는 불과 1주일 전에도 산재 사고가 일어났다. 지난 7일 협력업체 직원 A씨가 생산라인 벨트에 손이 끼는 사고를 당했다”고 보도했다.
몇몇 언론은 공장 내 구조적 문제에 주목했다. 덮개를 열면 기계가 멈추는 자동방호장치(인터록)가 다수 기기에 없었고, 2인 1조 운영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울신문은 10월18일 “소스 교반기 주변에 펜스 하나만 설치됐어도 동료가 아직 곁에 있었을 것”이라는 현장 직원 인터뷰를 인용했고, 한국일보는 사설에서 “분기별 안전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증언도 나왔다”고 했다.
SPC의 열악한 노동 환경과, 노동 경시 풍조까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사망 노동자 빈소에 SPC가 자사 '빵'을 보낸 것이 알려지면서 경향신문은 지난달 21일 “SPC 그룹 전체에 노동 경시 풍조가 있다”는 SPC 노조 관계자 발언과 함께 2017년 파리바게트가 5300여명을 불법파견한 사실을 보도했다. 국민일보는 지난달 25일 사설에서 “SPC 계열사에서 최근 5년 새 산재 발생이 37배로 급증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했다.
한겨레는 '밤샘노동'의 위험성에 주목했다. 지난달 21일 “딸이 2주 야간, 2주 주간 근무의 반복이었다”며 “인원 보충을 위해 반강제로 투입됐다”는 피해자 어머니 인터뷰를 전했고, 다른 SPC 계열사 공장에서 손가락 절단 사고가 23일 발생하자 25일 사설에서 “두 사고는 밤샘 근무 뒤 새벽 6시 무렵 발생했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했다. 이어 “(맞교대는) 생체리듬을 망가뜨려 만성피로와 수면 부족을 초래한다”며 “작업중 사고 위험을 높이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라고 강조했다.
사망 '단순' 처리한 경제지…홍보 기사는 큼지막하게
반면 일부 일간지와 경제지는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외면했다. SPC를 홍보하는 기사보다 사망사고 보도가 더 짧거나 늦게 나왔으며 노동 사고의 '반복'을 짚는 기사는 거의 없었다. SPC 불매운동을 다루면서도 한국경제는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라고 했다.
보수지와 경제지는 SPC 사망사고를 '단순' 처리했다. 지난달 17일 지면에서 머니투데이, 매일경제, 조선일보, 중앙일보는 SPC 사고를 보도하지 않았고, 서울경제와 한국경제는 사망 소식을 전하면서도 1주일 전 같은 공장에서 일어난 사고를 언급하지 않았다. 반면 파리바게트 런던 1호점에 대한 소식은 이들 모두가 다뤘다. 서울경제와 한국경제는 17일 지면에서 SPC 사망사고를 27면에, 파리바게트 런던 1호점 기사는 각각 17, 18면에 실었다.
지난달 17일부터 22일까지 매일경제, 한국경제는 SPC 사고와 관련해 '허영인 회장의 사과', 'SPC 계열사 압수수색', 'SPC의 안전 강화 1000억 투자'를 보도했다. 노동 사고의 반복이나 SPC 내 구조적 결함은 다루지 않았다. 노동 사고의 '반복성'에 주목한 다른 일간지와 구별되는 지점이다. 조선일보 지면 역시 지난달 18일 사망 사고를 단신 보도한 이후 SPC 사고와 관련해 1일까지 침묵을 지켰다.
이러한 와중에도 SPC 관련 홍보 기사는 이어졌다. 매일경제는 지난달 20일 '“맛있는 걸 안주면 장난칠거야” 핼러윈시즌 한정판 즐겨보세요' 기사에서 SPC그룹의 던킨 도넛을 소개했다. 조선일보도 다음날인 21일 별지(라이프) 2면 ''쫄깃 촉촉' 돌에 구운 베이글' 기사에서 SPC그룹 파리바게트의 새 제품을 홍보하는 기사를 작성했다.
이런 가운데 경제지는 기업 '피해'에 방점을 찍었다. 머니투데이는 지난달 21일 지면 2면에서 '납품처 바꾸기 어려운데…SPC 고객사 '긴장'' 기사에서 “식품업계는 불매운동의 불똥이 튈까 전전긍긍하는 모습이 역력하다”고 했고 한국경제는 25일 12면에서 “파리바게트 가맹점의 매출이 최근 1주일 새 전년 동기 대비 30% 가량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며 “가맹점주들은 불매운동 확산에 따른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26일 18면에서 한국경제는 '불매운동 하는데도…SPC 삼립 급등, 왜?' 기사에서 “불매운동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나오면서 상승세로 돌아섰다는 분석”이라며 “SPC그룹은 국내 빵 시장의 83%를 점유하고 있다”고 했다.
SPC 사고 놓고 “중대법 필요하다” vs “효과 없다는 증거”
사망 사고가 일어난 SPL은 50인 이상 사업장으로 중대재해처벌법(중대법) 적용 대상이다. 같은 사안을 두고 언론은 '중대법이 필요하다는 증거'와 '효과가 없다는 증거'로 나뉘었다.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한 논조 차이가 SPC 사고가 가진 '구조적 문제'의 조명 혹은 외면으로 이어졌다.
다수 일간지는 이번 사고를 토대로 적극적인 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울신문은 18일 사설에서 “철저한 수사와 더불어 적극적인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이 필요하다”며 “SPC를 비롯한 재계는 관련법 완화 등을 요구하기에 앞서 획기적인 안전 대책을 스스로 마련하도록 해야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겨레는 18일 사설에서 “이번 사고의 구조적 문제는 결국 경영책임자가 중대재해처벌법의 안전 의무를 외면한 데 있다”며 “윤 대통령이 자신의 진정성을 보여주려면 일터의 죽음을 막기 위해 중대재해처벌법을 오히려 강화하라고 지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향신문 역시 18일 사설에서 “올해 1~8월에만 산재로 사망한 노동자가 400명이 넘는다”며 “중대재해처벌법을 완화해 무력화하려는 정부의 시도부터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조선일보와 경제지는 중대재해처벌법의 효과가 없다는 입장이었다. 조선일보는 지난달 24일 12면 기사에서 “23일에도 역시 SPC 계열인 샤니 제빵 공장에서 40대 근로자가 기계에 손가락이 절단되는 등 산업 현장 사고가 최근 잇따랐다”며 “이에 일하다 죽거나 다치는 산업 재해를 막자는 취지로 올 1월부터 시행한 중대재해처벌법이 효과가 없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고 했다.
매일경제는 지난달 25일 사설에서 “사업주·경영자를 형사처벌해 중대재해 발생을 막겠다는 '중대재해처벌법'의 효과가 없다는 게 확인되고 있다”며 “처벌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게 확인됐으니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기업 문화를 만들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이어 27일 논설실장 칼럼 'CEO 형벌공화국의 기이한 현상'에서 매일경제는 “중대재해처벌법을 도입했지만 산업재해도 줄지 않았다”며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출발점은 기업인에 대한 형벌 위주 법체계를 하루속히 폐기하는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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