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경의 시:선(詩:選)>주고받음

2022. 11. 2.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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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도서관으로부터 10주간 도서관 이용자들을 대상으로 시 창작 강의를 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잠시 고민했다.

강의를 맡을 때마다 나는 동일한 막막함에 시달린다.

생애 단 한 편이라도 내 시를 가져보고 싶다는 열망들은 나를 한 번도 실망시키지 않았다.

마치 덕장에 매달려 바닷바람에 얼기와 녹기를 반복하며 황태가 되어가는 명태처럼 나는 괴로움과 기쁨을 번갈아 느끼며 10주의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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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히 사랑했던 적도 없는 것 같다/ 결혼행진곡 속에 있을 때도 나는 어딘가로 도망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완전히 사랑하지 않은 적이 있었나/ 불을 끄지 않고 기다리는 아파트 벼랑 위의 불빛이 나의 등대였으니’

- 손택수 ‘완전한 생’ (시집 ‘어떤 슬픔은 함께할 수 없다’)

한 도서관으로부터 10주간 도서관 이용자들을 대상으로 시 창작 강의를 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잠시 고민했다. 기간이 너무 길고, 나는 너무 바쁘다. 핑계다. 자신이 없다. 시에 대해, 창작에 대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강의를 맡을 때마다 나는 동일한 막막함에 시달린다. 거절하지 못했다. 시의 좋음을 알릴 수 있다면. 단 한 명이라도 시를 좋아하고 즐기게 된다면. 시인이라면 가질 법한 책임감에 승낙하고 말았다.

왕복 4시간 거리. 버스와 지하철을 세 번이나 갈아타야 했다.거듭 후회를 하면서 찾아간 강의실은 그저 따뜻했다. 생애 단 한 편이라도 내 시를 가져보고 싶다는 열망들은 나를 한 번도 실망시키지 않았다. 그리하여 수업이 끝난 뒤에는, 후련함과 더불어 더할 나위 없는 뿌듯함이 가슴 뻐근하도록 차오르는 것이었다. 마치 덕장에 매달려 바닷바람에 얼기와 녹기를 반복하며 황태가 되어가는 명태처럼 나는 괴로움과 기쁨을 번갈아 느끼며 10주의 시간을 보냈다. 잊지 못할 시간이었다. 나는 수업을 한 것이 아니라 수업을 들은 기분이 되고.

일방향적인 것이 세상 몇이나 되겠는가. 싫으면서 좋고, 사랑하면서 밉기도 하고 가르치면서 배우고. 배움은 또 다른 가르침을 불러오고. 모르던 사실이 아니다. 잊고 있었던 것뿐. 잊고 지내면 모르는 것과 진배없지. 하여간, 다신 수업하지 않으련다 다짐했건만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나는 다음 수업은 어디서 누굴 만나게 되려나 기대하고 있는 거였다.

시인·서점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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