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속 베토벤·차이콥스키, 희망으로 리셋”

2022. 11. 2.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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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수원컴퍼니 허강녕 대표를 만나다
고통적 삶 이겨낸 클래식 거장 소재
2015년 ‘작곡가 시리즈’ 뮤지컬 구상
절망 극복 위대한 ‘변곡의 순간’ 담아
현대인에 위안보다 희망 전달에 방점
두 작품 모두 판권 해외 수출 쾌거
“차기작은 위대한 작곡가 리스트죠”
과수원컴퍼니는 2018년 초연 이후 올 연말 ‘루드윅: 베토벤 더 피아노(맨 위)’를 시작으로 차이콥스키, 리스트까지 위대한 작곡가 시리즈를 이어가고 있다. 과수원컴퍼니 허강녕 대표는 “과거 속 인물의 삶을 통해 지금을 사는 우리들에게 긍정적이고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이야기를 싶었다”고 밝혔다. [과수원컴퍼니 제공]

“오, 푸쉬킨, 강물처럼 흘러가는 음악.”

참담한 ‘전쟁의 시대’를 살아간 클래식 음악 거장 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1840~1893)가 무대로 걸어나왔다. 러시아 시인 푸쉬킨의 동상 앞에 그가 서자 ‘그 유명한’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이 절묘하게 뒤섞인 넘버(‘푸쉬킨 동상 앞에서’)가 흐른다. 뮤지컬이 클래식을 담았다. ‘악성(樂聖)’ 베토벤을 지나 차이콥스키로 당도했다. 차기작은 리스트로 예정하고 있다. 이른바 ‘위대한 작곡가’ 시리즈다.

“차이콥스키는 낭만주의 정점에 있는 작곡가예요. 편성 자체도 대단위인 데다, 어떻게 보면 훅이 있어요. 미국 디즈니 음악의 시초 역시 차이콥스키였고요.”

‘불후의 명곡’들을 주인공으로 가져오기 위해 무대는 ‘최초의 시도’가 이어졌다. 대학로 뮤지컬 사상 처음으로 ‘9인조 오케스트라’가 무대 안쪽에 자리했다. 기존 대학로 뮤지컬을 두 편(한 편당 평균 제작비 4~7억원)이나 만들 수 있는 제작비가 투입됐다.

뮤지컬 ‘안나, 차이코프스키’를 제작한 허강녕 과수원컴퍼니 대표는 “‘작곡가 시리즈’를 통해 동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희망을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작곡가 시리즈’의 탄생은 201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만 해도 클래식 거장을 내세운 뮤지컬은 ‘블루오션’이자 ‘불모지’였다. 과수원컴퍼니는 그 문을 열었다. 뮤지컬 ‘루드윅:베토벤 더 피아노’(12월 20일 개막 예정)가 탄생까지는 3년의 시간이 걸렸다. 2018년 초연, 올 연말 네 번째 시즌으로 무대에 오른다.

“이 작품을 제작하는 것이 사람들에게 위안과 희망을 주라는 미션 같았어요. 전 위안보다는 희망에 더 방점을 뒀어요. 위안이 현재의 상황이라면, 희망은 미래지향적이니까요.”

“희망을 주기 위한 작품”의 소재로 베토벤만한 인물은 없었다. “상상도 못한 고통을 이겨낸” 데다, “전 세계 최고의 히트 작곡가”라는 것이 허 대표의 생각이다.

‘루드윅:베토벤 더 피아노’은 무엇보다 인물을 다루는 방식이 신선하다. 극적인 드라마가 담긴 단편적 에피소드가 아닌 한 사람의 인생을 관통해 무대로 가져왔다. 작곡가의 깊은 내면 안으로 들어가 그의 삶을 휘감은 열망, 열망 안에 피어난 고통과 절망, 그것을 딛고 다시 일어서는 위대한 ‘변곡의 순간’들을 작품으로 녹였다. “마치 신이 있다면, 베토벤은 그 모든 고통과 고통을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만든 사람 같았어요.” 허 대표는 “지금이 어렵고 절망적이라도 지금 바꾸고, 꿈을 꾸면 된다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주고 싶었다”며 “그것이 베토벤에 대한 일종의 예의였다”고 말했다.

이는 ‘작곡가 시리즈’가 추구하는 방향성이기도 하다. ‘안나, 차이코프스키’에서도 엄혹한 시대에서 부딪히는 이념과 사상, 금기된 사랑에 굴복하고 좌절하다 다시 서는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담는다.

“과거 속 인물의 삶을 통해 지금을 사는 우리들에게 긍정적이고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이야기를 싶었어요. 때로는 반면교사 삼을 수도 있고요. 우리 인생에 선하고 희망적인, 미래지향적인 메시지를 전하려는 방향성을 가지고 있어요.”

시리즈의 세 번째 작곡가는 리스트다. 허 대표는 “시간은 조금 걸리겠지만 리스트의 음악과 삶을 담아낼 수 있는 작품을 개발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역사 속 인물들의 ‘보편타당한 이야기’는 한국을 넘어 세계로 향했다. 과수원컴퍼니가 제작한 두 작품이 판권을 수출, K-뮤지컬의 새로운 길을 닦고 있다. 지난달 29일 일본에선 ‘루드윅: 베토벤 더 피아노’가, 전날엔 ‘브라더스 까라마조프’가 중국에서 막을 올렸다. 중국 현지에선 매진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허 대표는 “(과수원컴퍼니는) 창작뮤지컬을 만들어 해외에 진출하는 지향점을 가지고 출발했다”고 말했다.

“방탄소년단과 같은 K팝 그룹이 미국 빌보드 1위를 한다는 것은 제가 어릴 때만 해도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었어요. 거기에 영화 ‘기생충’, 드라마 ‘오징어게임’까지 말도 안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잖아요. 이런 일들을 보며, 뮤지컬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됐어요.”

해외로 진출한 작품들은 K-뮤지컬의 힘을 여실히 보여준다. 탄탄하고 밀도 높은 스토리, 아름다운 음악, 촘촘하게 직조된 요소요소가 오랜 시간 성장한 대학로 창작뮤지컬의 저력을 담고 있다. 허 대표는 우리 뮤지컬 시장의 독특한 구조가 지금의 성취를 이끌었다고 보고 있다.

한국 뮤지컬 시장은 2001년 매출 200억 원을 달성한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을 기점으로 빠르게 대중화, 산업화에 접어들었다. 현재 4000억원 규모의 시장으로 성장했다.

허 대표는 “이 작은 내수시장이 급격하게 성장해 뮤지컬 한 편이 2~3개월씩 이어가고 있다”며 “N차 관람을 하는 회전문 관객들과 함께 성장하며 경쟁력 있는 작품이 생겨나고, 배우들도 더 좋은 조건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대극장은 물론 대학로를 찾아오는 관객의 힘이 업계의 선순환을 이끌어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게 됐어요. 그것이 동력이 돼 일본과 중국으로도 진출할 수 있게 됐다고 봐요. 이젠 K-뮤지컬 시대도 가능하리라 생각해요. 창작진, 프로듀서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노하우를 쌓으며 역량과 기반을 마련했어요. 일본, 중국을 넘어 뮤지컬 본토인 미국, 영국까지 갈 수 있다고 봐요.”

고승희 기자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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