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시사] 국가는 무한책임을 져야 한다

2022. 11. 2.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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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서울 이태원에서 참혹한 사건이 벌어졌다. 늦은 밤 뉴스에서 첫 소식을 접했을 때는 그 누구도 이런 큰 비극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휴일 아침부터 들려오는 소식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너무나도 큰 충격을 받아 순간 멍했다. 뉴스를 지켜볼수록 마음은 아팠지만 쉽게 TV를 끌 수도 없었다. 종일 몸살이 걸린 듯 몸이 아팠다. 현장에 있던 사람들과 소방, 경찰을 비롯한 구조인력은 오죽하겠는가. 세상을 떠난 이들과 유족은 어떻겠는가. 상상이 가지 않는다. 유족이 받게 된 충격과 고통을 가슴 깊이 공감하고, 세상을 떠난 이들에 대한 추모의 시간을 갖는 것은 우리 사회공동체의 당연한 과제다.

그러나 우리를 불편하게, 더 나아가 화나게 만드는 존재가 있다. 과거에도 우리 사회를 뒤흔든 참사가 발생할 때마다 이를 도구로 이용하려는 정치권(특히 야권)의 무책임한 발언, 일단은 책임을 모면하려는 정부의 행태가 이번에도 반복되고 있어서다.

참사가 보도되자마자 다짜고짜 이번 참사가 청와대 이전 때문이라면서, 윤석열 대통령과 오세훈 서울시장은 사퇴하라고 한 남영희 민주연구원 부원장은 이미 여론의 융단폭격을 맞았다. 아무리 야권이 정부를 견제할 책임이 있다고 하더라도 무책임한 선동은 국민의 심판을 받는다는 것을 망각한 모양이다.

그러나 가장 화나게 만드는 것은 정부다. 특히 정부조직법 체계상 ‘안전 및 재난에 관한 정책의 수립·총괄·조정’ 책임이 있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발언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이 장관은 지난달 30일 브리핑에서 이번 참사 원인과 관련해서 “경찰과 소방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 “평소보다 많은 인파가 몰린 것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마치 재판에서 조금이라도 ‘법적인 틈’을 보이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습을 국무위원에게서 보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국가는 국민의 안전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 무려 156명이 대한민국 수도 한가운데서 세상을 떠난 참사에 대해 무한 책임을 지고, 진심으로 사과부터 하는 것이 추모와 진상조사의 첫걸음이다. 그런데 현 정부는 이와 반대되는 방향으로 첫 단추를 끼웠다. 정말로 유감이다.

이태원에서 참사가 벌어지기 약 4시간 전부터 총 11건의 긴급한 신고를 받고도 겨우 4번만 경찰이 현장에 출동해 신고지점의 사람들만 해산시키는 데에 그쳤다. 참사 1시간 전인 오후 9시부터 10분 동안 “인파가 너무 많아서 대형 사고 일보 직전” “사람들이 떠밀리고 있다” “사람이 많아서 압사될 분위기” 등 사고가 임박했음을 알린 신고에도 경찰의 개입은 없었다. 책임 있는 직책에 있는 누군가는 정치적 책임을 넘어 법적 책임을 져야 할 가능성이 커졌다.

경찰의 늑장 대처를 확인한 윤 대통령은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처리하라”며 “한 점 의혹이 없도록 철저히 진상을 밝히라”고 지시했다. 윤 대통령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을 당장 경질해야 한다. 또한 윤희근 경찰청장이 특별감찰팀을 구성해 초동 대응을 감찰하고, 특별수사본부(특수본)가 수사한다고 밝혔지만 과연 국민이 경찰의 ‘셀프 수사’에 대해 얼마나 신뢰할지 의문이다. 참사 사흘이 지나서야 신고 녹취록을 공개한 것만 봐도 책임을 물을 희생양을 찾으려는 건 아닌지 의심이 든다. 차라리 특검을 통해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것이 낫지 않을까 싶다.

지난 3년간 코로나로 인해 답답했던 젊은이들에게 국가는 안전을 제공하지 못했다. 정부는 수많은 우리 국민의 안타까운 죽음에 대해 ‘사고(incident)’가 아니라 ‘참사(disaster)’로 받아들이고 헌법에서 선언한 국가의 무한 책임을 기꺼이 지기를 바란다. 그것이야말로 세상을 떠난 영혼들과 그들의 유족에 대한 진정한 애도의 길이다.

김한규 전 서울지방변호사회장

pooh@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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