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시각] 슬픔이 분노가 됐다

2022. 11. 2.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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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 되면 분노하지 않기가 어렵다.

사고 발생 네 시간여 전부터 '이상 징후'를 알리는 현장의 신고전화가 폭주했음에도 경찰은 움직이지 않았고, 관할 용산구청은 제대로 된 안전대비책 하나 세우지 않았으며, 소방은 인파와 차량의 뒤섞임을 막을 계획조차 없었던 것이 확인됐다.

돌연 '마약수사'에 올인한 검찰은 현장에서 마약범을 잡을 사복경찰 배치에만 관심이 있었고, 소방청장은 사고 발생 불과 8일 전인 지난 10월 21일 검찰 수사를 사유로 경질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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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 되면 분노하지 않기가 어렵다. 사고 발생 네 시간여 전부터 ‘이상 징후’를 알리는 현장의 신고전화가 폭주했음에도 경찰은 움직이지 않았고, 관할 용산구청은 제대로 된 안전대비책 하나 세우지 않았으며, 소방은 인파와 차량의 뒤섞임을 막을 계획조차 없었던 것이 확인됐다. 돌연 ‘마약수사’에 올인한 검찰은 현장에서 마약범을 잡을 사복경찰 배치에만 관심이 있었고, 소방청장은 사고 발생 불과 8일 전인 지난 10월 21일 검찰 수사를 사유로 경질됐다. 눈물의 사과를 한 서울시장은 안전예산을 삭감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후 대처는 더 한심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30일 참사 현장을 찾아 “여기서 그렇게 많이 죽었다고?”라고 말했고, “경찰을 더 배치했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고 말했던 행정안전부 장관은 “선동 말라”고 주장했으며, 국무총리는 “잘 안 들리는 것에 책임져야 할 사람은 누구냐”고 농담했다. 국민 평균에도 미치지 못하는 무딘 감수성들이다. 용산구청장은 “구청이 할 역할은 다했다. 축제가 아닌 현상”이라고 말했고, 경찰과 서울교통공사는 ‘이태원역 무정차 결정’이 없었던 원인에 대해 서로 책임을 미루고 있다.

참사 현장에 국가는 없었다. “압사될 것 같다” “소름끼친다” “‘사람이 바닥에 쓰러졌다” “장난이 아니다” “심각하다”는 현장의 절규에 경찰은 우리도 들어가기 어렵다고 했다. 몇 되지 않는 이태원 파출소 인력으론 감당하기 어려웠음이 분명하다. 또는 수년간 아무 문제 없이 진행됐던 젊은이들 축제라는 생각에 ‘올해도 괜찮겠지’라는 생각이 앞섰을 수도 있다. 당일 이태원에 배치된 경찰 인력은 137명, 이 가운데 안전관리에 투입될 수 있는 정복 차림 경력은 50여명에 불과했다. 이마저도 ‘안전관리’ 담당요원은 한 명도 없었다는 것이 지금까지 확인된 바다.

참사 진상을 ‘수사’로 밝힐 수 있다는 믿음도 틀렸다. 온라인상에선 ‘토끼띠 남성’이 최초 ‘밀어’를 외쳤다며, 그를 찾는 탐정놀이가 계속됐다. 지목된 인사는 얼굴 사진이 공개되고 신상이 털렸으며 악플에 시달렸다. 해당 남성은 자신이 그곳에 있지 않았음을 증명하고 나서야 ‘마녀사냥’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누군가가 ‘밀어’를 외쳤으니 그를 처벌하는 것이 능사로 보일법하다. 그러나 앞으로도 움직일 수 없을 만큼 꽉 들어찬 인파에 갇힌 군중 속에선 반드시 ‘밀어’를 외치는 이가 나온다. 사고는 구조적 문제가 복합적으로 결부됐을 때 나타난다.

또다시 1997년을 전후해 태어났던 20대 젊은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2014년 세월호 사고 당시 고등학교 2학년생들이 97년생들이다. 이태원 일대가 거대한 응급실이 됐던 ‘그날’은 대한민국이 안전한 나라가 아님을 알려준 상징일이 됐다. 피해자 유족들이, 그리고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왜 최근 수년 동안 발생치 않았던 사고가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에서 발생했느냐다. 불과 지난해까지만 해도 멀쩡하게 치러졌던 ‘주최자 없는 행사’가 왜 올해 초대형 참사로 이어지게 됐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지난해와 올해 정부와 지자체, 검찰, 경찰, 소방청의 대응은 어떻게 바뀌었는지도 찾아내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그 꽃같은 청춘들을 보내 줄 수 있다.

h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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