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청, 참사 이틀 후 ‘시민단체 동향’ 내부 문건서 “주관단체 없어 책임 소재 불명확”

김동환 2022. 11. 2.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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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경찰청 정책 참고 자료’ 지난 1일 공개…주요 시민단체 동향 등 분석한 경찰청 문건
사고 수습 위한 갈등 관리 필요 등 항목에는 “주관 단체 없어 책임 소재 불명확”
경찰청, ‘공공안녕’에 대한 위험의 예방과 대응을 위해 필요한 경우 관계기관 배포 입장
윤희근 경찰청장, 참사 사흘 만인 지난 1일 대국민 사과…“‘읍참마속’ 각오로 진상 규명”
SBS가 단독 입수해 지난 1일 홈페이지에서 공개한 ‘경찰청 정책 참고 자료’의 일부. 문건에 “이태원 사고는 행사 주관 단체가 없어 책임 소재가 불명확”이라는 문장(빨간 밑줄)이 적혀 있다. SBS 제공
 
경찰청이 ‘이태원 참사’ 발생 이틀 뒤인 지난달 31일 주요 시민단체 동향과 과거 참사에서의 언론 보도 추이 등을 분석해 작성한 내부 문건에 “이태원 사고는 행사 주관 단체가 없어 책임 소재가 불명확”이라는 문장이 적힌 것으로 나타났다.

SBS가 단독 입수해 지난 1일 홈페이지에서 공개한 ‘경찰청 정책 참고 자료’에 따르면 경찰청은 ‘빠른 사고 수습을 위해 ‘장례비·치료비·보상금’ 관련 갈등 관리 필요’ 항목에서 “보상 문제는 대형 참사 때마다 가장 첨예한 갈등 요인이었다”며 이같이 짚었다. 이어 “정부가 신속히 특별재난지역을 선포하고 구호금 지원을 발표했지만, 통상 대형 참사 유가족에게 지급되는 보상금과 비교하면 턱없이 부족”이라면서 “향후 보상 문제가 지속적으로 이슈화될 소지”라고 부연했다.

경찰청은 세월호 사건은 유족이 8억~10억원을 받았다며 정부에 1억5000만원·서울시 1억원·용산구 1억원의 배상 책임이 있다는 주장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제기된다고도 언급했다.

문건에는 “지자체 실무자들은 정부가 특별재난지역을 선포하더라도 정부 예산에 한계가 있는 만큼, 국민 애도 분위기 속 성금 모금을 검토하고 정부도 동참하는 분위기를 조성할 필요가 있다는 반응”이라고도 적혔다.

아울러 2014년 발생한 ‘판교 환풍구 추락사건’ 언급과 함께 “사고 4일 만에 유가족과 합의해 큰 갈등 없이 보상 문제가 매듭지어진 사례로 평가된다”며, ‘외부인 참여가 늘어날수록 협의가 어려워진다며 초기에 가족 대표를 정해 대화 창구를 단일화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한다’는 내용이 사고 수습 과정에 관해 경기연구원이 작성한 정책연구보고서에 있다고 썼다.

SBS가 단독 입수해 지난 1일 홈페이지에서 공개한 ‘경찰청 정책 참고 자료’의 일부. 시민단체 동향과 관련해 일부 진보성향 단체의 반발 분위기에 주목하는 내용(빨간 네모)도 문건에 들었다. SBS 제공
 
시민단체 동향과 관련해 일부 진보성향 단체의 반발 분위기에 주목하는 내용도 문건에 들었다. 진보단체 등이 정부 규탄 논리를 모색 중이라며 세월호 참사 당시 정부의 대응 미비점을 상기시키거나, 지난 정부의 핼러윈 대비 조치를 비교하는 카페 글·카카오톡 지라시 공유로 정부 성토 여론 형성에 주력하고 있다면서다. 이번 참사에서 여성 사망자가 많았던 점을 거론한 여성단체가 여성가족부 폐지 등 정부의 반(反)여성 정책 비판에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내용, ‘제2의 세월호 참사’로 규정한 시민단체 대목도 포함됐다.

특히 언론 보도를 통해 ‘정부 책임론’이 부상할 조짐이 있다는 점도 부각했다. 문건은 이태원 참사 관련 ‘정부 책임’ 보도량이 30일 0시~오후 1시 9건에서 오후 1시~8시 108건으로 대폭 증가했다고 구체적으로 분석했다. 고위 공직자의 부적절한 처신을 차단하고 정부 관계자가 피해자에게 책임을 돌리는 듯한 발언을 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는 조언도 문건에 보인다.

SBS는 “경찰청은 ‘공공안녕에 대한 위험의 예방과 대응을 위해 필요한 경우 관계기관에 배포하고 있다’는 입장을 내놓았다”고 보도했다.

윤희근 경찰청장이 지난 1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이태원 참사’ 관련 입장을 표명하며 사과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희근 경찰청장은 지난 1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 출석해 “사고 당일 18시34분쯤부터 현장의 위험성과 급박성을 알리는 112 신고가 11건 접수됐지만 사고 예방 및 조치가 미흡한 것을 확인했다”고 인정했다. 윤 청장은 같은 날 오전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 입장 발표에서도 부실 대응 인정과 함께 참사 사흘 만에 대국민 사과를 하면서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고 경찰에 맡겨진 책무를 완수하기 위해 제 살을 도려내는 ‘읍참마속’의 각오로 진상 규명에 임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도 국회 행안위에서 “국가는 국민의 안전에 대해 무한 책임이 있음에도 이번 사고가 발생한 것에 대해 국민 안전을 책임지는 주무부처 장관으로서 국민 여러분께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고개 숙였고, 황창선 경찰청 치안상황관리관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브리핑에서 “사고 1시간 전부터 여러 건의 신고가 있었다. 인파가 많아 관리가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다”며 “오후 9시가 되면서 심각할 정도의 신고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경찰청은 독립적 특별 기구를 만들어 진상을 규명하겠다는 윤 청장의 뜻에 따라 사고 지역 관할인 용산경찰서에 대한 감찰에 착수하는 한편 서울경찰청 수사본부를 특별수사본부로 전환했다. 김호승 경찰청 감사담당관을 팀장으로 15명의 인력이 투입된 감찰팀은 핼러윈 축제 사전 대비부터 현장 대응까지 적절한 조치를 했는지 따져볼 계획이다. 나아가 경찰은 실무자부터 지휘관까지 관계자 전원을 상대로 의사결정과 실행이 어떻게 이뤄졌는지 조사하겠다며 대대적 감찰도 예고했다.

세계일보는 이번 참사로 안타깝게 숨진 분들의 명복을 빌며, 유족들의 슬픔에 깊은 위로를 드립니다.

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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