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장이 조직 희생양 삼나" 윤희근 향해 쏟아진 경찰들의 분노
"꼬리자르기식 책임 회피" "윗선부터 감찰 받아야"
여권서도 "일선에 떠넘기는 태도 곤란"
윤희근 경찰청장이 1일 서울 이태원 핼러윈 참사 관련해 112신고가 쏟아졌음에도 현장 대응이 미흡했다며 내부 감찰을 공언했다. 하지만 온라인에선 오히려 일선 경찰의 대응보다 수뇌부의 예방 조치 부재가 더 큰 문제였다는 반발도 나왔다.
윤 청장이 내부 감찰 계획을 밝힌 1일 오후부터, 회원들이 직장을 인증해 가입하는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는 경찰청 직원을 자칭하는 회원들이 불만을 터뜨리는 글들이 다수 올라왔다. 이들 내용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타고 다른 인터넷 사이트로 전파되며 화제가 되고 있다.
"그 대비는 이태원파출소만 해야 했나"
가장 주목을 받은 글은 스스로를 '이태원파출소 직원'이라고 밝힌 한 이용자의 글이다. 그는 이 글에서 "이태원파출소 직원 90%가 20, 30대 젊은 직원이고, 30% 이상은 시보도 끝나지 않은 새내기 직원과 기동대에서 현장 경험 없이 일선으로 나온 직원들로 채워져 있다. 그로 인해 항상 고충이 있고, 늘 더 많은 인원이 필요했다"고 토로했다.
그는 "112신고는 시간당 수십 건씩 떨어지는데 그날 본 근무직원은 11명, 탄력근무자 포함 총 30명 남짓이었다"면서 "뛰어다니며 신고 처리하기도 바쁜 상황에서 압사사고를 예상해서 통제하고 있었다면 112신고는 또 누가 뛰나. 혹여 강력사건이라도 떨어져서 누군가 죽었다면, 거리 통제하느라 강력사건 못 막았냐고 비난하지 않겠냐"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 대비는 이태원파출소만 해야 했나. 경찰청, 서울청은 뭐 했나. 경찰청장은 뭐 했나. 예상 못하셨나"라며 "광화문집회에 그렇게 많은 기동대가 필요했나. 체감상으로는 VIP(윤석열 대통령) 연도경호에 동원된 인원보다 (인력을) 덜 지원해주신 것 같다"고 비판했다.
그는 "한 명이라도 더 살리고 싶었다. 살려달라 손 내밀던 모든 손을 잡아주지 못해서 그 기억들이 채 가시지 않아 괴로워하는 젊은 경찰관들이다. 자신들을 자책하며 괴로워하는 현장 경찰관들에게 사고에 대한 책임까지 짊어지게 하는 것이 최선인가"라고 반문하면서 "아무 대책도 없고 관심도 없었던 서울시장, 경찰청장, 용산구청장, 윗선 본인들부터 스스로 감찰 받으라"고 주장했다.
다른 경찰 직원 역시 "경찰청에서는 초기 112신고 대응이 미흡한 것이 문제였다고 하는데, 대응의 문제는 지엽적인 것에 불과하다"면서 "현장 대응에 초점을 맞추고 정책적인 책임은 지지 않으려는 전형적인 꼬리 자르기식 책임 회피"라고 주장했다. 그는 "죽음의 공포를 전혀 느껴보지 못한 이들이 단순히 출동 기록만 들춰보며 왜 늦게 대응했냐, 파출소나 상황실 직원들이 책임이 있다는 식으로 전개되는 것이 상당히 실망스럽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번 참사는 대응보다 예방을 했어야 하는 문제였다. 경찰 배치로 해결될 수 없었다는 (이상민) 행안부 장관의 주장과는 달리 충분한 경찰이 현장에 배치돼 상황을 통제했어야 하는 문제"라면서 "10명짜리 집회시위에 경찰관 100명도 배치하면서, 10만 명 다중 운집이 예상되는 상황에 왜 혼잡경비업무를 담당하는 경찰관이 한 명도 배치되지 않았는지에 대해 해명이 필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신고 쏟아지고 지원요청도 했지만... 인근 배치 기동대, 사건 1시간 전 퇴근"
2일 YTN에 따르면, 수뇌부를 향한 격앙된 분위기는 경찰 내부망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이태원파출소 직원 A씨는 내부망에 "핼러윈 당시 안전 우려로 인해 용산서에서 서울청에 기동대 경력 지원 요청을 하였으나 받지 못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그는 같은 글에서 윤 청장의 '112신고 대응 미흡' 발언에 대해선 "그 발언으로 누구보다 열심히 일한 용산서 직원들은 무능하고 나태한 경찰관으로 낙인찍혀 언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면서 "어떤 점을 근거로 그런 발언을 했는지, 취임사에서 '일선 경찰관은 슈퍼맨이 아니다. 경찰만능주의를 극복하겠다'는 말은 전부 거짓말이었는지 묻고 싶다"고 밝혔다.
경찰은 이태원 참사 당일 참사 관련 신고 11건을 공개했는데, SBS에 따르면 비슷한 시점에 총 79건의 신고가 접수됐다. 참사 당일 서울 도심 곳곳에 시위 대응 목적으로 81개 기동대와 경찰관 4,800여 명이 배치됐고, 사고 현장과 불과 1.5㎞ 떨어진 용산 대통령실 근처에도 행진과 집회에 대비한 1,100여 명이 배치돼 있었지만, 참사 발생 불과 1시간 전에 철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이태원 일대에는 경찰이 137명 배치됐는데 그 가운데 마약 단속 등을 목적으로 배치된 사복 경찰이 아닌 정복 경찰은 58명에 그쳤다.
정치권에서도 일선 경찰 반응과 비슷한 취지로 윤 청장을 겨냥한 책임론이 제기되고 있다. 2일 YTN 라디오 '뉴스킹 박지훈입니다'에 출연한 이언주 전 국민의힘 의원은 윤 청장이 '수습 후 사퇴' 수순을 밟아야 한다고 밝혔다. "감찰 조사 당연히 해야 하는데 일선에 있던 사람들한테만 책임 묻는 식으로 진행돼서는 곤란하다"면서 "수습은 내가 하고 그만두겠다, 그 정도 자세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같은 날 KBS 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에 출연한 권은희 국민의힘 의원은 아예 윤 청장이 먼저 사퇴해야 진상규명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는 "사전에 대비해야 할 책임자들이 진상 규명을 하는 상황이 벌어지다 보니, 변명하고 회피하고 심지어 일선의 현장 경찰관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모습"이라면서 "진상 규명이 제대로 되기 위해서는 빨리 본인 거취를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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