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disaster still in progress (KOR)

2022. 11. 2.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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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동은 예로부터 사람이 많이 다니던 곳이었다.

동 이름 자체가 조선시대 역원에서 유래했다.

먼 길을 가야 하는 파발과 관리에게 말을 빌려주는 곳은 역(驛), 잠자리와 밥을 제공하던 곳은 원(院)이라고 했다.

현 이태원동과 멀지 않은 서울 용산동 용산고 부지 인근에 이태원이란 이름의 원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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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thorough and rigorous investigation into the cause and the course of the disaster must follow. So many lives should never perish mercilessly again.

CHO HYUN-SOOKThe author is the deputy economic policy news editor at the JoongAng Ilbo. Itaewon-dong has always been a busy place. The name itself originates from yeokwon in the Joseon Dynasty. The term yeok refers to a place lending horses to government officials and messengers before a long journey, and the term won means a government facility providing lodging and meals. Not far from the current Itaewon-dong had been the site of such a won named Itaewon, near the current Yongsan High School in Yongsan District, central Seoul.

Names of key transportation points still have names ending with won, such as in Jochiwon, Indeokwon and Janghowon, and all of them were the sites of yeokwon. Itaewon connected the capital, the central and the Yeongnam regions as a transportation hub since the Goryeo Dynasty. It was a place where many people and supplies gathered as they traveled between the Yeongnam region and the capital.

A catastrophe unfolded in present-day Itaewon, a place where heavy crowds fill every alleyway on weekends and holidays. Moreover, it was the first Halloween weekend without a mask mandate since the Covid-19 outbreak. But there was no crowd control as an official organizer of Halloween festivities was not specified. The crowd crush took place suddenly, in a narrow alleyway packed with heavy crowds. The chaos led to disaster. Despite the struggle of many firefighters, police officers, medical staff and citizens to rescue the dying young people by administering CPR, they could not save all of them.

Some blame the victims, saying “Why did they go there?” But the victims are not at fault. As similar disasters have happened at stadiums, religious events and concerts in other countries, it could happen to anyone, anywhere. But it should not have to happen to anyone.

A terrible sense of helplessness and bottomless despair engulfed the entire Korean society. We are witnessing another national disaster we never wanted to see again after the Sewol ferry tragedy in 2014. As the grief and pain Koreans expressed eight years ago come rushing back, routine lives are swept away.

The Itaewon disaster is still in progress. Many of the injured are still in critical condition. The trauma of the survivors, witnesses and bereaved families is just the beginning. This is why follow-up measures are desperately needed to support them. A thorough and rigorous investigation into the cause and the course of the disaster also must follow. So many lives should never perish mercilessly again.

이태원동조현숙 경제정책팀 차장

이태원동은 예로부터 사람이 많이 다니던 곳이었다. 동 이름 자체가 조선시대 역원에서 유래했다. 먼 길을 가야 하는 파발과 관리에게 말을 빌려주는 곳은 역(驛), 잠자리와 밥을 제공하던 곳은 원(院)이라고 했다. 현 이태원동과 멀지 않은 서울 용산동 용산고 부지 인근에 이태원이란 이름의 원이 있었다.

조치원이나 인덕원·장호원처럼 교통의 요지마다 ‘원’으로 끝나는 지명이 남아있는데 모두 역원이 있던 자리였다. 이태원도 그랬다. 고려시대부터 수도와 중부ㆍ영남지역을 연결하는 첫 길목으로 교통 요충지 역할을 했다. 영남과 수도를 오가는 많은 사람과 물자가 모이던 지역이었다. (서울역사박물관 발간 "이태원 공간과 삶")

그런 이태원에서 참사가 났다. 평소 휴일에도 수만 인파에 골목마다 길이 밀리던 곳이다. 게다가 코로나19 이후 마스크 없이 보내는 첫 핼러윈 데이 주말이었다. 10만 명 넘는 인파가 몰릴 것이란 예측이 있었다. 그러나 행사 주최자가 특정되지 않았던 탓에 제대로 된 통제는 이뤄지지 않았다. 인파가 넘치는 가운데 사고는 갑작스럽게 발생했다. 혼란은 참사로 이어졌다. 사고 직후 수많은 소방관·경찰관·의료진·시민 등의 분투가 있었지만 희생을 다 막을 순 없었다.

‘왜 거기에 갔냐’는 한탄 섞인 목소리가 한켠에서 나온다. 하지만 그곳에 있던 젊음은 죄가 없다. 외국에서 그랬던 것처럼 경기장에서, 종교행사에서, 공연장에서. 그 누구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 누구에게도 일어나선 안 되는 일이었다.

참담한 무력감과 바닥없는 우울이 한국 사회 전체를 덮쳤다.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 이후 다시는 없었으면 했던 국가적 재난을 또 목도하게 됐다. 8년 전 경험했던 비탄과 고통이 다시 밀려들었고 일상은 쓸려나갔다.

이태원 참사는 현재 진행형이다. 많은 부상자가 지금도 생사를 오가고 있다. 현장에 있었던 생존자와 목격자,그리고 유가족 등이 겪을 트라우마는 이제 시작이다. 이들에 대한 지원을 포함하는 사고 수습이 필요한 이유다. 참사 원인과 과정에 대한 철저하고 엄중한 조사도 뒤따라야 한다. 많은 생명이 무참하게 사그라지는 일이 다시는 없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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