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액 없고 예약·환불 힘든 호텔 뷔페 상품권에 ‘분통’...“약관법 위반”
유효기간 1년...구매카드 없으면 환불 안 돼
호텔 측 수시로 가격 인상, 쓰려면 추가 요금 내야...주말 예약도 불가
법조계·소비자단체 “불공정약관, 약관법 6조 위반”
국내 고급호텔 뷔페 상품권에 금액이 적혀있지 않거나, 이용 시 예약이 꽉 차 원하는 시간에 예약이 어려운 경우가 발생하면서 소비자 불만이 확산하고 있다.
법조계 전문가들은 호텔이 금액이 없는 이용권을 판매하거나, 원하는 시간대에 예약하지 못할 수 있다는 걸 미리 고객에게 알리지 않는 것은 약관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2일 호텔업계에 따르면 서울 중구의 5성급 호텔인 롯데호텔 서울과 웨스틴조선 서울은 자신들이 판매하는 뷔페 이용권에 금액을 표시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호텔이 뷔페 가격을 올리면 정가에 이용권을 샀어도 차액을 지불해야 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올해 초 롯데호텔의 뷔페 ‘라세느’와 웨스틴조선호텔의 뷔페 ‘아리아’는 가격을 10~20%대 인상했다. 이에 따라 가격 인상 전 발행된 이용권을 쓰는 고객들은 인상분 만큼의 차액을 내야한다.
뷔페 이용권을 산 가격에 이용한다고 해도 주말 등 원하는 날짜에 예약을 못 하는 경우도 많다. 소비자가 돈을 주고 구매하거나 선물을 받았더라도 1년으로 설정된 유효기간 내 사용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법조계는 이렇게 금액 차이에 대한 설명 없이, 이용에 제한이 있는 뷔페 이용권을 판매할 경우 약관법 위반의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이하 약관법) 제6조에 따르면 ▲고객에게 부당하게 불리한 조항 ▲고객이 계약의 거래형태 등 관련된 모든 사정에 비추어 예상하기 어려운 조항 ▲계약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을 정도로 계약에 따르는 본질적 권리를 제한하는 조항 등을 금하고 있다.
국내 대형로펌 한 관계자는 “구매 당시에 예약의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고지하지 않거나, 뷔페 이용권 판매 시 금액 고지 없이 가격을 인상해 구매 시점과 금액 차이가 날 수 있다는 것을 알리지 않은 것은 약관법 제6조 위반 사항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약관법 위반 소지에 이어 공정위 표준약관도 지키지 않은 호텔들
이들 호텔은 공정거래위원회 지류형(종이) 상품권 표준약관도 지키지 않았다.
공정위 표준약관에 따르면, 발행자·권면액·유효기간·사용 후 잔액 환불 기준·소멸시효 이내 유효기간 경과 상품권에 대한 보상 기준·상품권의 사용과 관련한 제한 사항·피해 발생 시 연락할 번호 등을 명시해야 한다.
이와 함께 제공이 불가능하거나 제공에 필요한 통상적인 기간보다 현저히 지체되는 경우, 고객의 요구에 따라 발행자 또는 가맹점은 상품 권면 금액(상품권의 정상 판매가격)을 현금으로 즉시 반환해야 한다.
용역 상품권에 따른 물품 등의 제공 시 원재료 가격상승 등의 이유로 고객에게 추가대금을 요구할 수 없다.
그러나 전날 기자가 찾은 롯데호텔과 조선호텔은 뷔페 이용권 문의 시 금액을 묻기 전까지 이용권 금액을 알려주지 않았다. 향후 뷔페 가격이 인상될 경우 차액을 내야 한다는 안내도 없었다.
20대 직장인 김모씨는 “얼마 전 선물 받은 호텔 뷔페 이용권을 이용하려고 하는데 구매 시점보다 가격이 인상돼 차액을 지불해야 한다더라”라며 “주말 이용도 어렵고, 호텔이 마음대로 금액을 올릴 거면 이용권을 왜 판매하냐”고 반문했다.
환불도 어려웠다. 회사나 지인에게 선물 받은 이용권의 경우 구매 카드와 영수증이 없으면 환불이 되지 않는다고 호텔 측은 설명했다.
이처럼 공정위의 표준약관이 지켜지지 않은 것은 이 약관이 권고사항에 그치기 때문이다.
공정위 약관심사과 관계자는 “표준약관을 만들긴 하지만, 그 약관을 사업자가 쓸지 말지는 강제할 수는 없다”며 “호텔들의 약관이 법을 위반할 정도로 문제가 있는지는 심사를 해봐야 알 것 같다”고 말했다.
◇소비자단체도 이용권 ‘꼼수’ 주장…”이럴 거면 왜 판매하냐”
상품권을 이용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원하는 날짜에 예약은 어렵다. 지난 1일 기준 롯데호텔 서울 뷔페 ‘라세느’와 웨스틴조선호텔 서울 뷔페 ‘아리아’의 11월 평일 저녁과 주말 예약은 대부분 마감된 상태였다.
유효기간이 1년으로 설정돼 있어 기간 만료가 다가오는 고객들 사이에서는 예약 전쟁이라는 불만도 나오고 있다. 이들이 이커머스에서 판매한 금액권은 유효기간이 2~3개월이라 더욱 사용이 어렵다.
강성경 소비자와함께 사무총장은 “이용권을 정가에 구매해도 추후 가격 인상으로 인해 차액을 더 내야 한다든가 유효기간을 짧게 설정해 소비자가 이용하기 어렵게 만든 것은 불공정 약관”이라며 “호텔이 소비자가 구매한 이용권의 유효기간이 지나길 바라는 것처럼 약관을 유리하게 설정한 꼼수”라고 비판했다.
◇호텔들, 상품권 통해 無이자로 고객돈 미리 당겨...1년 유효기간 지나면 매출로 ‘꿀꺽’
호텔들이 불공정 약관을 통해 뷔페 상품권을 대거 판매하는 것은 대출 금리가 7~8%에 육박하는 시대에 무(無)이자로 고객 돈을 미리 선불(先拂)로 당겨서 쓰기에 가장 좋은 수단이 ‘상품권’이기 때문이다.
기업은 1년 이내의 단기차입금과 1년 이후의 장기차입금으로 나누어 돈을 빌리고, 자산을 운용한다. 둘 다 빌린 돈이기에 수십억에서 수백억원에 달하는 이자 비용이 발생한다.
상품권은 회계상 ‘선수금’으로 잡히는데, 유효기간이 지날 시 선수금은 호텔의 매출로 바뀐다. 기업 입장에서 당장은 선수금이 부채로 기록되지만, 고객이 금액권이나 상품권을 사용하지 못하면 이후 매출로 활용할 수 있는 셈이다.
때문에 유효기간은 짧을수록 기업에게는 이득이다. 카카오톡 선물하기와 같은 모바일 금액권 및 쿠폰의 유효기간이 최대 5년인 것과 비교해 호텔에서 판매하는 지류형 이용권의 유효기간이 1년으로 짧게 설정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올 상반기 연결 기준 호텔롯데의 선수금은 1157억원으로, 지난해 상반기(876억원)보다 281억원가량 늘었다. 조선호텔앤리조트 역시 지난해 연결 기준 선수금이 전년(51억원) 대비 90% 늘어난 97억원을 기록했다.
이에 호텔 관계자들은 “유효기간이 지나도 사용할 수 있게 최대한 배려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상품권 구매 시, 이 같은 내용을 따로 안내하지 않아 유효기간이 지나면 사용이 불가능하다고 알고 있는 소비자들이 많다.
강 사무총장은 “이용권에 금액을 정확히 명시하고, 소비자가 이용권 금액에 맞게 사용할 수 있는 상황인지 알릴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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