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사찰 떠오르는 경찰청 '이태원참사 여론동향 문건' 파장
참사 이틀 뒤 '사고'에 대한 '정부 부담 요인' 수집해 문건 작성
"MBC PD수첩 심층 보도 준비 중…'정부 책임론' 부각 소지"
"진보단체 정부 성토 여론 주력…대통령님 담화처럼 사고수습 최우선"
[미디어오늘 노지민 기자]
경찰청이 이태원참사 이틀 뒤 '정부 부담 요인' 등 동향 문건을 만들고, 언론의 보도 정황을 정부 책임론 부각 조짐으로 수집한 사실이 확인됐다. 참사 당일 수시간 동안 '압사' 등 신고를 묵살한 경찰이 과거 사찰을 연상케 하는 문건까지 만들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SBS는 1일 경찰청이 지난달 31일 작성한 '정책 참고자료' 문건을 공개했다. 문건의 첫장에 '대외공개, 수신처에서 타 기관으로의 재전파, 복사 등을 할 수 없다'고 적혀 있어 대통령실 등 상급 기관에 보고하기 위한 것으로 추정되는 문건이다. △이태원 사고 관련, 주요 단체 등 반발 분위기 △이태원 사고 관련, 온라인 특이여론 △산업현장 안전관리, 구조적 문제 개선 필요 △지자체 '안전한국훈련' 대비 실태 및 현장 요망사항 등 5가지 주제로 작성됐다.
해당 문건은 '사고 관련 온라인 특이여론' 부분에서 언론이 '정부의 안전관리가 미흡했다는 정부책임론 부각 조짐'을 보인다고 썼다. “언론은 통상 대형참사 발생 시 '희생자 추모→원인 분석→정부 비판'의 흐름을 보이며 점차 비판 보도를 늘리는 경향”이라며 “이태원 사고에서도 '정부 책임' 관련 보도량이 10월30일 0~13시에는 9건이었으나, 13~20시에는 108건으로 대폭 증가”했다고 썼다.
특히 “MBC PD수첩 등 시사 프로그램들도 심층 보도를 준비 중이어서 '정부 책임론' 부각 소지”가 있다고 문건은 밝히고 있다. 과거 이명박정부 국가정보원의 MBC 사찰 문건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붙임: 과거 대형 재난사고 시 언론의 논조변화 추이 및 시사점'이라는 첨부 자료에는 △판교 테크노밸리 붕괴 사고 △경주 마우나(리조트 붕괴) △대구 지하철 화재 등에 대한 보도를 시기별로 분류했다. 이 자료엔 “대체로 사고 발생 2~4일 '정부 대처, 사고 원인' 등에 관심이 고조되다 정부의 중간수사결과 또는 재발방지대책 발표 등을 계기로 보도 감소”라는 설명이 붙었다.
온라인 여론과 관련해선 네티즌들이 '정부 책임론'에 대한 반감이 있다면서 “정치적 이용에 대한 반감이 적지 않은데, 일부 커뮤니티에서는 '시체팔이'라고 반감 표출” 부분을 강조해서 썼다. 진보진영이나 야권에 부정적인 일부 커뮤니티 이용자들이 사용하는 비하적 표현을 네티즌 여론으로 기록한 것이다.
주요 단체 등 반발 분위기에 대한 부분도 시민단체를 진보성향, 보수성향으로 나누고 있다. 정치적 성향을 막론한 단체들이 국가애도기간 동안 주요 일정을 중단한다고 밝힌 상황임에도 이 문건은 진보성향 단체들이 '카페글·카톡 지라시 등을 공유하며 정부 성토 여론 형성에 주력'하고 있다고 썼다.
특히 전국민중행동이 세월호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의 SNS글(이태원 참사, 당신 잘못이 아니다)을 공유한 일을 두고는 “정부 대응상 미비점을 적극 발굴하고 '제2의 세월호 참사'로 규정해 정부를 압박한다는 계획”이라고 썼다. “'세월호 사고'와의 연계 조짐도 감지”된다며 “내부에서는 향후 피해자 가족 측 입장을 대변하는 데 적극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함”이라는 전언도 포함됐다.
보수단체와 관해선 “자유대한호국단 등 보수단체들은 대통령님 담화처럼 일단 사고 수습이 최우선이라며, 사고원이 파악이 진행 중인 만큼 섣부른 행동을 자제하고 추모 분위기 속에 상황을 관망할 방침”이라고 쓴 대목이 눈에 띈다. 도심권 촛불행동 집회 참석인원 중 다수가 이태원에 합류했을 것이라며 촛불행동 측 책임을 주장할 것이라는 '일부 보수단체 활동가' 발언도 덧붙였다.
이 문건에 대해선 주요 언론 매체들도 비판을 이어가고 있다. 1일 이를 단독 보도한 SBS는 “이번 문건을 보면 제목만으로도 정부 부담 요인에 관심이 필요, 주요 단체 등 반발 분위기와 같이 정부 활동을 지원하겠다는 의도가 뚜렷하다. 특히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고 시민단체 관계자와 직접 접촉해 내부 동향을 파악했다는 점에서 논란이 예상된다”며 “이태원 참사와 같은 위험을 사전에 막기 위한 정보 수집을 더 치밀하게 했어야지 사후에 정권 입장에서 '사고'를 관리하기 위한 정보 수집에만 열중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올 것 같다”고 했다. 경찰청은 “공공안녕에 대한 위험의 예방과 대응을 위해” 문건을 작성했다는 입장이다.
2일 경향신문은 “이 문건에는 과거 정보 경찰의 민간인 사찰이 연상될 법한 표현이 곳곳에 등장한다”고 지적했다. 중앙일보도 “과거 정보 경찰이 민간인을 사찰하며 정리한 문건과 유사하다는 지적이 나온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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