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튼콜’ 강하늘 판에 앉았다..청진기 대보니 진단 ‘대박’ [김재동의 나무와 숲]

김재동 2022. 11. 2.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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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김재동 객원기자] 셰익스피어는 자신의 희곡 ‘뜻대로 하세요’에서 “온 세상은 무대이고 모든 여자와 남자는 배우”라고 말했다. 결국 인생은 연극이란 말이다.

KBS 2TV 월화드라마 ‘커튼콜’(조성걸 극본, 윤상호 연출)은 무대를 떠나 세상에 뛰어든 배우 이야기를 다룬다.

여기 이력서가 좀 되는 배우 하나가 있다. 이름 유재헌(강하늘 분). 캐릭터 리문성(노상현 분)과 걸맞는 나이에 북한말이 능숙하다. 작은 연극판만 전전한 무명배우라 익명성에도 강점이 있다. 게다가 인생을 바꾸기 위해서라면 뭐든 할 용의도 있다. 그리고 여기에 캐스팅 디렉터 정상철(성동일 분)도 모르는 숨겨진 메리트까지 있다. 몽타쥬. 타깃인 국내 굴지의 호텔 체인 ‘호텔낙원’의 설립자이자 총수 자금순(고두심 분)의 전 남편을 쏙 빼닮았다.

“이거 사기 아니예요?” 캐스팅에 나선 정상철이 캐릭터를 설명했을 때 유재헌이 던진 말이다. 정상철은 말한다. “누군가의 행복을 위해 만든 그 거짓말이 과연 범죄고 사기일까?”

하긴 하얀 거짓말도 있는데 하얀 사기라고 왜 없을까? 그냥 한편의 연극이라고 생각하자. 아니 실제로 연극이다. 모든 것을 알고 보는 관객이 있지 않은가? 비록 정상철 하나지만... 사기에는 관객이 있을 수 없다. 게다가 3달에 3억이란 사기급 개런티면 무조건 사기 아닌 연극이어야 한다.

영화 ‘범죄의 재구성’에서 박신양이 말했다. “사기는 테크닉이 아니다.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 지, 상대가 무엇에 약한 지..그것만 알면 게임끝”이라고.

타깃 자금순은 20년 전 남북이산가족 상봉 때 만난 손자 리문성을 보고 싶어한다. 당시 어린 리문성은 외모도, 성격도 제 할아버지를 닮아 있었다. 자금순은 당시 자신을 위로해주었던 따뜻한 그 작은 손길에 마음이 녹아내렸었다.

리문성의 실체를 확인한 정상철이 리문성 본인을 불러들일 수 없는 이유고, 유재헌을 끌어들여 한판 연극을 기획한 이유다.

현재의 리문성은 자금순이 기억하는 마음 따뜻했던 아이가 아니다. 조선족 마약조직의 전문 밀수꾼에 청부 폭력, 납치, 살인까지 그야말로 ‘폐급 인간’으로 전락해 있었다.

살 날이 고작 3개월 남은 자금순에게 그런 손자를 안겨줄 수 없다는 것이 정상철이 기획한 하얀 사기의 시작이다.

정상철이 보기에 자금순은 많은 약한 것들이 깃들 수 있는 큰 나무였다. 하지만 정작 자신은 죽음조차 자유롭지 못한 세월을 연명해온 삶을 살았다. 흥남철수 당시 사랑하는 남편과 젖먹이 아들과 헤어졌고, 남에서 만난 남편도 일찍 사별했으며, 그 소생인 아들과 며느리도 비극적으로 앞세웠다. 그리고 끊임없이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기만한 쓸쓸한 인생 끝에 이제는 자신이 떠나가려한다.

유재헌이 마음 따뜻한 손자 역할만 충실히 해주고 그런 손자를 바라보며 행복하고 평안하게 눈을 거두면 자금순을 주인공으로 한 연극은 절찬리에 막을 내리는 것이다.

판은 벌어졌다. 유재헌은 동료 연극배우인 서윤희(정지소 분)를 아내역으로 캐스팅했다. 중국 체류중인 탈북민답게 구제시장에 가서 클래식한 옷도 마련하고 위조여권까지 장만했다. 낙원의 본가로 진입하는 순간 연극의 막은 오른다.

유재헌이 가세할 낙원 본가에는 3명의 형 누나가 있다. 첫째형 박세준(지승현 분)은 ‘호텔은 개장하는 순간부터 감가상각이 발생하는 비용덩어리’란 마인드로 매각을 추진 중이다.

둘째형 박세규(최대원 분)는 허세와 허영을 즐기는 한량으로 호텔경영엔 아예 거리를 두고 ‘팔려도 좋고 안팔려도 좋다’는 방관자의 입장을 고수한다.

바로 위 누나 박세연(하지원 분)은 할머니 자금순의 분신이다. 호텔의 잡역부터 시작해 총괄매니저에 올랐다. “호텔은 나고 호텔을 팔겠다는 건 나를 죽이는 일”이란 각오로 낙원호텔을 지키려 한다.

그런 그들에게 북으로부터 날아든 사촌동생 유재헌은 캐스팅보드를 쥔 중요한 변수다. 자신들끼리야 억지사촌이지만 할머니 자금순에겐 똑같은 손자다. 모든 지분을 손자들에게 공평히 나눠준 자금순이고 보면 재헌에게도 자신들과 똑같은 지분이 돌아갈 것이다. 결국 호텔 매각이냐 유지냐도 재헌의 손에 달려있다.

다행히 자금순의 손자들은 모두 착하다. 짐짓 냉정한 채 구는 박세준도, 밖으로만 도는 박세규도 모두 ‘연기 중’으로 보인다. “널 편들면 형이 날 미워할 거고 형을 편들면 니가 날 미워할거잖아. 나 그거 싫어!”라는 박세규의 대사가 흔한 드라마 속 재벌가 형제들과는 차이남을 알려준다.

“낙원은 지금까지 가족들을 지켜온 집”이라는 자금순에게 “가족을 지켜오기만 했다고 생각하세요?”라고 되묻는 박세준도 그렇다. 그 한마디에서 박세준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가족이고, 낙원은 그 가족을 해칠 수도 있는 존재라는 생각이 읽힌다.

아마도 비행기 사고로 숨진 그들 부모의 죽음이 원인인 듯 하다. 그 사고로 세준은 낙원에 대한 적의를, 세규는 낙원에서의 의결권 포기라는 결정을 내린 모양이다. 당시 어리고 순진했던 박세연만이 진심으로 살아온 셈이다.

마침내 유재헌과 서윤희가 낙원 본가에 입장했다. 자금순을 만났다. 그렇게 막이 오르며 드라마 ‘커튼콜’의 무대가 시작됐다.

제목 ‘커튼콜’은 공연이 끝나고 막이 내린 뒤, 관객이 찬사의 표현으로 환성과 박수를 계속 보내 퇴장한 출연자를 무대 앞으로 다시 불러내는 것이다.

제목과 관련해 세준에게 말한 자금순의 대사가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그 과거라는 걸 조금은 소중히 대했으면 좋갔구나. 그 아픈 기억까지도!”

인생이 연극이라면 기(起)를 잊고서는 승(承)-전(轉)-결(結)이 이어지지않는다.

청진기 대보니 진단 나온다. 드라마 ‘커튼콜’ 잘 될 것 같다.

/zaitung@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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