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중견 건설사 회사채 금리가 연 65%? 커지는 시장 '불안'
중견 건설사인 한신공영이 발행한 회사채가 한때 금리 연 65%에 거래돼 자칫 휴지 조각이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루머로 떠돌고 있는 건설업계 줄도산설에 다시 불을 댕기는 분위기입니다.
한신공영은 1970~80년대 서울 강남 노른자 땅인 반포에 한신아파트 대단지를 지어 강남개발의 선두주자로 우뚝 섰었던 건설사입니다. 이후 여러 부침을 겪고 현재는 시공 능력 25위 중견 건설사로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데, 최근 부동산 호황에 힘입어 다수의 개발 사업을 벌이는 과정에서 자금이 필요하자 2019년부터 올해까지 벌써 여러 건의 회사채를 찍어냈습니다.
그중 작년에 1천억 원 규모로 발행했던 회사채 '한신공영42'에서 이례적인 거래가 발생했습니다. 어제(1일) 장 시작한 뒤 오전 10시쯤, 연 환산 수익률 8% 선에서 거래되다가 갑자기 50%포인트를 단숨에 뛰어넘더니 65%까지 치솟았던 겁니다. 이 채권은 투자 적격 등급 중 BBB- 다음으로 낮은 BBB로서 표면금리는 3.784%, 민간 채권 평가사 4곳이 평가하는 금리 평균(민평금리)은 5.801%이었습니다.
채권은 수익률이 높을수록 가격은 떨어지는 구조입니다. 민간 평가 금리 평균보다 약 60% 포인트 높은 수익률에 거래됐다는 건 다시 말해, 누군가가 이 채권을 '헐값' 수준에 내다 팔았다는 뜻입니다. 채권 매도자가 어떤 이유로 상당한 수준의 원금 손실을 감수하면서까지 시장에 급하게 내다 팔았다는 건데, 시장은 이게 한신공영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신호가 아니냐며 불안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습니다. 만기가 불과 4개월 정도 남은 채권을 이례적인 유통금리로 매도하는 건 일반적이지는 않다는 것이죠. 이와 관련해 한신공영 측은 "개인이 급전이 필요해서 팔았는지 회사에서도 정확한 이유는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라고 밝혔습니다.
시장에선 여러 가지 추측을 내놓고 있습니다. 일단 '해프닝'으로 보는 견해입니다. 연 금리 65%에 거래된 채권 규모가 2천여만 원어치로 총 발행액인 1천억 원에 대비해 크지 않은 데다, 이 거래 이후 곧바로 채권 가격이 원래 거래 수준을 회복했다는 겁니다. 즉, 거래액이 크지 않고 일회성이어서 급전이 필요했던 개인 투자자의 매도로 보일 뿐 큰 의미를 둘 정도는 아니라는 거죠.
그러나 이 이례적인 거래가 향후 다가올 어떤 재앙의 전초가 아니냐는 우려도 만만치 않습니다. 미분양 폭탄에 따른 유동성 위기가 극단적인 가격의 채권 거래로 나타난 게 아니냐는 거죠.
한신공영은 올해 경남 일대와 충남 아산, 울산에 '한신더휴' 아파트를 분양했다가 모든 사업장에서 미분양이 일어났습니다. 자체 개발 사업도 많고, 수도권 외곽과 지방에도 미분양 리스크가 큰 사업장을 다수 갖고 있다 보니 재무부담이 점점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됐습니다. 지난 6월 한국신용평가는 한신공영의 무보증 사채 신용등급 전망을 'BBB(긍정적)'에서 'BBB(안정적)'으로 한 단계 낮춘 바 있습니다.
빠르게 얼어붙고 있는 자금조달 시장 분위기도 부담입니다. 한신공영은 저금리 시기에 발행한 회사채들의 만기가 곧 다가오는데, 새 회사채를 발행해서 이걸 갚지 못하면 더 큰 위기가 올 수 있습니다. 그런데 천문학적인 적자를 메우려는 한국전력과 유동성 위기에 대비해 최대한 실탄 마련에 나선 은행들이 신용등급 높은 고금리 채권을 마구 찍어내 자금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어, 그보다 채권 발행 조건이 불리한 한신공영으로선 회사채를 통한 자금조달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죠.
정부는 한전채와 은행 발행 급증이 회사채 시장 경색을 가중시킨다며 발행을 자제하도록 권고하고 있지만, 이달에도 4조 원 넘는 공사채가 쏟아져 나올 예정입니다. 회사채 투자 위험의 척도인 신용스프레드(국고채와 회사채 AA- 3년물 금리 차)는 계속 커지고 있어 일반기업들이 겪는 자금난은 더욱 심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금융 관계자는 "한 대기업집단 계열 건설사의 기업어음(CP)도 거래가 쉽지 않을 만큼 자금 시장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불안 심리가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큰 만큼 금융당국이나 시장 참여자들이 시장의 안정에 유념해야 한다"고 전했습니다.
지금 정부와 당국은 기업들이 유동성 위기에 빠지지 않도록 연일 대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자금시장을 둘러싼 시장 불안과 공포는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습니다.
임태우 기자eight@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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