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사면 2%대 대출가능”…대환대출 사기에 ‘피해자 구제’도 난관
고금리 대출, 중고차 구매 알선 후 저금리 대환 약속
결국 저금리 대환 이루어지지 않고 책임 회피
“‘무고죄’ 고소당할 수 있다”…정부 구제도 어려워
유튜버에 도움 요청하는 사례도
[헤럴드경제=김광우 기자] #. 지난해 방송작가 A씨는 코로나19로 직장을 잃고 생계 곤란에 직면했다. 제도권 대출조차 어렵던 차에 A씨는 “5%대 금리로 대출해준다”는 광고를 접했다. 해당 업체는 “신용안정 기간이 필요하다”며 19%대 금리로 3700만원을 대출받을 것을 권했다. 추가로 중고차를 구매하면 3개월 후 저금리 대환이 가능하다고 권유했다. 물론 저금리 대환은 거짓이었다. 1000만원에 구매한 차량 시세도 130만원에 불과했다. 명백한 사기였지만 도움을 청할 곳은 없었다. A씨는 “구제를 요청한 어떤 기관에서도 도움을 주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고금리 시대, 높은 대출 장벽에 부딪힌 ‘대출난민’을 대상으로 한 중고차 대환대출 사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문제는 피해자 구제 및 처벌이 쉽지 않아 막대한 대출금을 떠안은 피해자만 늘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공권력의 도움을 받지 못한 피해자들은 유튜버의 힘을 빌려 구제를 받고 있다. 이에 전문가들은 별도의 피해 구제 기관을 설립하는 등 불법 사금융 피해자에 대한 구제 조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대환대출 사기업체의 수법은 대부분 같다. 정책 상품을 사칭한 인터넷 광고, 또는 전화 광고로 고객을 모집한다. 이후 2금융권 고금리 대출과 중고차 구매를 알선한다. 이들은 3개월간 대출 이자와 차량 할부금을 납부하면 신용도가 올라, 자사의 2~5%대 저금리 대출을 받을 수 있다고 속인다. 그러나 대환이 이루어지는 예는 없다. 약속된 기한이 지나도 대출자격이 되지 않는다며 책임을 회피한다.
수법도 지능적이다. 이들은 대출 알선 시, 약속된 기간 동안 신용조회 등 금융사와 접촉이 있으면 대환에 악영향을 준다고 경고한다. 그리고는 3개월간 금융사나 금융감독원 등을 사칭해 이들의 실수를 유발한다. 이후 ‘타 업체서 신용조회를 했다’거나 ‘금융감독원 전화를 받았다’는 식으로 피해자에 책임을 전가한다. 이에 사기를 당했다고 생각지 못하고, 본인의 잘못으로 일이 잘못됐다고 착각하는 경우도 많다.
올해 초 3%대 저금리 대출 광고에 혹해 사기업체의 문을 두드렸다는 직장인 B씨도 같은 경험을 했다. 사기업체는 A씨에 “신용조회를 했다”며 잘못을 추궁했고, 또 한 번 대출을 받으면 대환이 가능하다고 설득했다. 대환이 절실했던 A씨는 2000만원의 고금리 대출을 추가로 받았다. 1000만원 가량의 중고차도 구매했다. 이후 중고차 시세가 200만원에 불과하다는 얘기를 듣고 사기를 직감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A씨에게 남은 건 19%대 금리의 대출잔액 4000만원 뿐이었다.
대환대출 사기가 가능한 이유는 협력 업체들이 있기 때문이다. 사기업체는 캐피탈 등 금융사와 중고차 업체로부터 수익을 창출한다. 고금리 대출을 알선한 대가로 금융사로부터 수수료를 받고, 중고차 업체에서도 판매 수수료를 받는다. 이익 관계가 있다 보니, 중고차 시세를 부풀려 담보대출을 실행하는 사실을 알고도 용인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공권력에 의한 피해자 구제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김범수 자동차 전문 행정사는 “경찰이나 금융감독원에 피해 사실을 알려도, 증거 수집이 어렵다는 이유로 진척되지 않는 경우가 열 중 아홉”이라며 “상담자 중 경찰에서 ‘무고죄’로 고소를 당할 수 있다고 해 신고를 포기한 분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직접 시간과 비용을 소모해야 하는 상황이니 피해 사실을 묻어드는 사례가 많다”고 덧붙였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유튜버의 도움을 받는 일도 생긴다. 중고차 업체를 운영하는 진영민(38) 씨는 중고차 업계에서 종사하던 중 대환대출 사기를 알게돼, 유튜브를 통해 피해자 구제를 돕고 있다. 진씨는 “지금까지 파악한 피해자만 약 400명이 넘지만, 피해자들 연락은 꾸준히 오는 상황”이라며 “직접 수집한 증거로 40명 정도의 환불을 도왔다”고 말했다. 그는 “아직 더 큰 규모의 사기업체들도 남아있어 피해자 규모는 더 커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5월 대환대출 사기를 포함한 ‘중고차 대출 사기’에 대해 소비자경보 ‘주의’ 단계를 발령했다. 그러나 관련 피해자는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이에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피해 구제를 위해 절차상 문제점을 파악해야 하는데, 대출 과정 등이 금융사마다 달라 어려움이 있다”며 “이 부분을 포함한 제도 개선을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소비자경보를 내린 만큼, 피해 예방을 위한 소비자들의 주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고금리 상황, 저신용자들의 자금 조달이 어려워지며 불법 사금융 피해에 대한 우려는 점차 커지고 있다. 최승재 국민의힘 의원이 금융감독원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월평균 불법사금융 피해신고 건수는 올해만 848건으로, 2018년(419건)에 비해 2배 가량 늘었다. 대환대출 사기의 주요 경로인 온라인 불법금융광고도 올해 8월까지 1만1166건에 대해 조치가 이뤄져 전년 동기(1만795건) 대비 증가했다.
전문가들은 피해 예방뿐만 아니라 피해자 구제에도 제도적 정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최근 불법 사금융 피해는 점차 커지고 있는데, 당국에서는 예방 조치에만 주력하는 듯 보인다”며 “피해자 구제를 위한 기구를 설치하는 등 후속 조치에 대해서도 더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w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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