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112 최초 신고자 "웃으면서 골목으로 올라가던 인파..끔찍했다"

김민정 2022. 11. 2.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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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했을 때 와서 통제만 했다면.."
"오후 6시께 몰려든 인파에 딸과 남편 놓치기도"

[이데일리 김민정 기자] “압사당할 거 같아요. 겨우 빠져나왔는데 인파가 너무 많은데 통제해주셔야 할 거 같은데요”. ‘이태원 압사’ 참사가 벌어지기 4시간 전인 지난달 29일 오후 6시 34분에 112에 신고된 내용이다.

사고가 발생한 골목 근처에서 가게를 운영하고 있었다는 최초 신고자 A씨는 2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제가 신고한 지점은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 보면 스포츠 용품점(풋락커)이 있다. 그 앞에서 전화를 했다”고 말했다.

A씨가 112에 신고를 하게 된 건 당시 골목에 몰려든 인파들 때문이었다. 사고가 발생하기 전 해당 골목을 내려왔다는 A씨는 “딸하고 남편하고 기다리면서 너무 무서웠는데 1번 출구에서 나오는 인파를 보니까 다 웃으면서 그 골목으로 올라가고 있더라”며 “이미 저 위에 많은 사람들이 정체돼서 꼼짝도 못하는데 그 많은 인구가 그 골목으로 올라가는 걸 보니 끔찍한 생각이 들어 신고하게 됐다”고 밝혔다.

지난 29일 발생한 서울 용산구 이태원 핼러윈 인명사고 현장에서 119 구조대원등이 구조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어 그는 “위에서 한번 공포를 느꼈다. 세계음식문화거리 구경을 하는데 그 위에도 이미 몸이 뭉쳐서 같이 다니고 있었고, 내 의지로 이쪽으로 움직일 수 없는 정도였다”며 “더 무서운 건 아기를 목마에 태운 아빠가 있었고 유모차 미는 엄마도 있었다. 둘째를 안 데리고 갔는데 만약 데리고 갔으면 정말 큰일났었구나라는 여러 상상도 했다”고 당시의 상황을 전했다.

평소 이태원 길을 잘 알고 있다는 A씨는 사고가 난 골목으로는 도저히 못 내려오겠다 싶어 해밀턴 호텔 내부를 통해 밖으로 나왔다고 했다. 그는 “중학교 딸은 저하고 키가 비슷하니깐 같이 걸어오다가 그 위에서 떠밀리면서 딸하고 남편을 놓치기도 했다”며 “사고가 난 지점이 비탈이라 자신이 없더라. 당시 해밀턴 호텔 안으로 문이 열려 있어서 그 안에 옷가게로 들어가서 에스컬레이터를 통해 내려왔다”고 설명했다.

사고가 난 골목은 평소에도 사람이 붐비는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A씨는 그날은 마치 콘서트장에서 꽉 조이는 정도였다며 “그 위에서 뒤로 돌아서 가고 싶었는데 뒤로도 못 가고 그냥 인파에 쏠려서 이마트 24 골목 쪽은 병목현상이었다”고 했다.

특히 A씨는 112에 신고하면서 ‘압사’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이에 대해 그는 “눌리니까 저도 그 단어를 쓴 거 같다. 내가 그 단어를, 무서운 단어를 가급적 입 바깥으로 안 쓰기 때문에 그 단어는 제가 긴가민가했는데 저희 딸이 ‘엄마 그 당시에 통화할 때 그 단어 썼어, 내가 들었어’ 그러더라”고 전했다.

이에 진행자가 ‘다급하고 긴박한 분위기가 충분히 전달됐을 것 같은데 신고를 받은 112 경찰관도 이 상황을 인지한 느낌이었느냐’고 묻자 A씨는 “그분의 직업이 늘 저처럼 다급한 사람들이 전화를 거는 거니까 담담하게 받으신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 녹취록에는 A씨가 “지금 너무 소름 끼친다. 이태원역에서 내리는 인구가 (해당 골목으로) 다 올라오는데, 거기서 빠져나오는 인구와 섞이고, 클럽에 줄 선 줄하고도 섞인다”고 하자 경찰관은 “출동해서 확인해 보겠다”고 답했다.

이와 관련해 지난 1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브리핑에서 황찬성 경찰청 치안상황관리관은 “대략 18시부터 (신고) 1건이 (경찰로) 접수된 건 맞지만, 그것은 일반적으로 용인할 수 있는 불편 정도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황 관리관은 또 “평상시에 ‘아 죽을 것 같다’라고 말하듯이 하는 게 아닌가 싶다”며 “신고자는 공포심을 느꼈을지 모르지만, 시간대나 장소적으로 사고 날 정도로 위험도가 있지 않아 보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녹취록을 보면서 ‘압사’라는 용어가 나와 당시 신고자 입장에서는 힘들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면서도 “신고도 (이태원역) 입구 쪽이었기 때문에 상황판단을 그렇게 했다”고 덧붙였다.

2일 핼러윈데이 압사 사고 희생자 추모공간이 마련된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한 국화꽃 등이 놓여 있다. (사진=연합뉴스)
경찰은 첫 신고 당시 경찰관이 현장에 출동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경력을 투입해 이태원 일대에 대한 통제에 나서지는 않았다. 첫 신고가 그리 위험해 보이지 않았다는 게 이유다.

A씨는 이에 대해 “신고 당시 최대한 잘 다듬어서 설명한다고 했지만 저희 딸이 옆에서 제가 떨었다고 했다. 저도 그 무서운 상황을, 공포감을 느끼고 전화를 한 거다”며 “(일반적 불편신고로 치부됐다는 건) 속이 많이 상한다. 전화했을 때 와서 통제를 했다면 가능했을 것이다. 그 이후 점점 인구가 많이 더 많아졌지 않느냐”고 안타까워 했다.

그러면서 A씨는 “제가 택시 타고 집에 오면서도 거기에서 내가 ‘젊은 사람들한테 위험해요’라고 인간띠라도 만들어서 경찰이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이런 후회도 남는다”고 덧붙였다.

경찰은 첫 신고 이후에도 비슷한 신고가 10건이나 더 있었지만 경력 투입 등 별다른 조치나 지시사항을 내리지 않았다.

결국 이 골목에서는 156명이 사망, 157명이 부상을 당하는 대형 참사가 발생했다.

경찰은 11건의 신고 접수와 관련된 경찰관들을 상대로 당시 상황 대응 경위를 조사할 계획이다. 감찰 결과 직무유기나 허위 공문서 작성 등의 위법 사항이 발견되면 수사로 전환할 가능성도 있다.

김민정 (a20302@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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