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에 걸렸다’ 말의 본질…왜 팬데믹 시대가 될 수밖에 없나

한겨레 2022. 11. 2.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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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철현의 코로나 디코딩][주철현의 코로나 디코딩]
(15) 호흡기 바이러스 시대
도시위생 개선따라 소화기바이러스 퇴조
이동수단 발달하며 호흡기바이러스 확산
항공운송 등장하며 전파 환경 더 좋아져
이젠 공기의 질도 위생 개념에 포함해야
전자현미경으로 본 코로나19 바이러스. 위키미디어 코먼스

‘코로나에 걸렸다.’ 여기에는 바이러스가 나를 감염시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바이러스에 감염이 된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 더 직접적으로 말하면 감염 현상은 바이러스가 아니라 사람이 일으킨다. 이번 시간에는 이런 바이러스 감염의 특성을 바탕으로 21세기가 호흡기 바이러스 팬데믹 시대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 그리고 개인위생 개념을 공기까지 확장하는 것에 관해 이야기한다.

많이 오해되고 있는 바이러스 감염의 정확한 의미부터 시작하자. 외부 환경에 존재하는 바이러스 입자는 아무런 해가 없는 무생물 상태에 불과하다. 하지만 무해한 입자가 우리 세포 안으로 들어가면 잠들어 있던 유전자가 작동을 시작한다. 깨어난 바이러스 유전자는 숙주 세포를 제압하고 새로운 바이러스 입자를 만들기 시작한다. 이렇게 바이러스 입자의 생산 공장이 된 숙주 세포가 바로 살아 있는 형태의 바이러스라 할 수 있다. 이런 바이러스 생산 세포가 생기면 그때부터 감염되었다고 한다. 바이러스 감염은 세포 수준의 정의이기 때문에 체내에 바이러스 입자가 존재한다고 감염된 것은 아니다. 숙주 세포로 들어가 새로운 바이러스 입자를 만들어 내기 시작해야 비로소 감염된 것이다. 두 명이 바이러스에 같이 노출되어도 누구는 감염되고 누구는 감염되지 않는다. 그 이유가 바이러스 입자의 존재와 감염 사이에 있는 큰 간극 때문이다.

살아 있는 바이러스를 품은 감염 세포는 면역으로 제거되거나 소진되어 죽을 때까지 새로운 바이러스 입자를 계속 만들어 낸다. 새로 만들어진 바이러스 입자는 주변으로 흩어져 새로운 숙주 세포를 찾아 감염시킨다. 새로운 바이러스 생산 공장이 늘어나면서 바이러스 입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이렇게 진행되다가 인체의 외부로 바이러스 입자가 새어나가면 바이러스 배출이 시작된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 배출되는 바이러스 입자 수는 최초 감염을 일으킨 입자 수에 비해 천문학적으로 늘어난다. 말 그대로 바이러스 입자가 ‘증폭’되는 것이다. 이 배출을 기점으로 감염자는 전파자가 된다.

다행인 점은 바이러스 입자는 무생물이라 한번 구조가 망가지면 복구가 불가능하다. 따라서 외부로 배출되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감염 능력이 급격히 떨어진다. 다른 사람을 감염시키기 위해 외부 환경에 노출되는 이때가 바이러스 생활사에서 최대의 약점이자 방역이 집중되는 지점이다.

바이러스는 몇 가지 유전자만으로 숙주 세포의 환경을 통제하고 증식하기 때문에, 아무 세포나 감염시키지 못한다. 각 바이러스는 입자를 증폭하는 데 최적의 궁합을 가진 숙주세포가 정해져 있다. 그리고 바이러스는 궁합이 맞는 숙주 세포에 도달하기 위해 인체의 해부학적 구조를 통과해야 한다. 또한 배출될 때도 외부 환경으로 빠져나가는 통로가 있어야 한다. 이렇게 바이러스가 들어오고 나가는 통로를 경로라 하는데 호흡기, 위장관, 비뇨생식기, 눈 등이 통로가 된다. 간단히 말해 외부로 뚫려있는 구멍들은 모두 경로가 되는 셈이다. 그리고 외부에서 들어와 최초 감염이 일어나는 감염 경로, 증폭된 바이러스가 외부로 빠져나가는 배출 경로가 있다.

호흡기바이러스는 호흡기에서 배출하는 비말(에어로졸)이 주요한 감염 경로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같고도 다른 소화기 바이러스와 호흡기 바이러스

바이러스 경로의 공통점은 점막으로 덮여 있다는 점이다. 점막은 외부 환경과 물질 교환을 위해 혹은 발생학적으로 점액질을 품고 있는 외부 막이다. 점액의 수분은 바이러스 감염에 필수적이다. 그래서 건조한 피부는 바이러스에겐 강철 갑옷과 같다. 손 세정제 사용을 권장하는 것은 손의 피부를 통해 바이러스가 감염되기 때문이 아니라, 손에 묻은 바이러스가 입으로 옮겨질 위험 때문이다. 바이러스가 피부를 통과하는 방법은 상처가 나거나 모기가 피부를 직접 뚫는 경우밖에 없다.

각 바이러스는 고유의 감염경로와 배출경로를 가지는데 대부분 위장관 또는 호흡기다.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계속 먹고, 마시고, 숨을 쉬고, 배설해야 하기 때문이다. 바이러스 입자는 외부에서 들어오는 음식물이나 공기에 섞여서 들어온다. 바이러스 분류에는 다양한 기준이 있는데 감염 경로를 기준으로 하면 임상 증상과 전파 양상과의 연관성이 가장 높다. 바로 위장관 바이러스와 호흡기 바이러스가 경로에 따른 분류이다. 대표적으로 노로, 로타, 간염 등이 위장관 바이러스이고, 독감과 코로나 등이 호흡기 바이러스다.

최초 감염 이후 감염세포가 늘어나기 시작하면 이를 감지한 면역 때문에 임상 증상이 발생한다. 위장 바이러스에 의해 설사나 배탈, 호흡기 바이러스에 의해 콧물이나 기침 등의 초기 증상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면역 개입 이후 진행 경과는 면역과 바이러스의 상호 작용에 따라 개인별로 차이가 나게 된다. 어떤 사람은 가벼운 초기 증상으로 종료되지만, 어떤 사람은 감염이 계속 진행된다. 그리고 초기 감염 지역을 벗어나 전신으로 감염이 확산되면 위중한 증상을 발생시키는 진행 경과를 거치게 된다.

이런 개인별 진행 경과와 별개로 감염이 진행되면서 바이러스가 외부로 배출되기 시작한다. 음식이나 물에 오염되어 들어왔던 위장 바이러스는 위장 내벽 세포에서 증식하여 배설물에 섞여 밖으로 나간다. 그리고 배설물에 포함된 바이러스 입자가 음식이나 물에 오염되어 다른 사람의 입으로 들어가면 새로운 감염 사이클이 시작된다. 이 외부 경로를 분변-구강 경로라 한다. 다른 사람을 재감염시켜야 살아남는 바이러스 입장에서는 상당히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 한다. 반면 호흡기 바이러스는 비말을 통해 들어오고 비말을 통해 나간다. 즉 감염경로와 배출경로가 일치하여 감염 초기부터 주변에 빠르게 전파가 가능하다.

1918년 스페인독감에 걸린 군인들을 수용하고 있는 한 미군 병원. 위키미디어 코먼스

산업혁명을 계기로 뒤바뀐 두 바이러스의 운명

두 종류의 바이러스는 문명 발달에 의한 환경 변화로 다른 운명을 맞이한다. 위생 개념이 희박했던 과거에는 소화기 바이러스 유행이 빈번했고, 인구 집단의 밀집도가 낮아 호흡기 바이러스 유행은 상대적으로 많지 않았다. 하지만 음식과 물을 통해 감염이 일어나는 위장관 바이러스는 공공 위생의 발달로 전파가 어려졌다.

특히 상하수도의 분리는 위장관 바이러스의 분변-구강 경로가 완전히 차단되는 효과를 가져왔다. 반대로 대도시가 생기고 밀집주거 형태가 탄생하면서 호흡기 바이러스는 점차 전파에 유리한 환경을 맞이하게 된다. 우리가 숨 쉬는 공기의 질은 문명이 발전할수록 나빠져 온 것이다.

산업혁명과 이에 따른 이동수단의 발달은 호흡기 바이러스의 전파 무대를 세계로 넓히게 되었다. 팬데믹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철도 혁명과 등장한 팬데믹의 주인공은 독감 바이러스다. 철도시대 초기인 1889년 러시아에서 시작된 신종 독감으로 100만명에 육박하는 사망자가 발생했다. 당시는 철도 운송의 초기 단계였음에도 한 달여만에 세계로 퍼졌다. 그리고 제1차 세계대전 군대 이동과 함께 악명 높은 스페인독감이 등장했다. 신종 변이 발생에 최적화된 독감 바이러스는 최근까지도 주기적으로 팬데믹을 일으키고 있다. 이후 항공운송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사스, 메르스, 코로나19 등이 전면에 등장한다. 코로나바이러스에게 세계화 시대는 최적화된 전파 환경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분간 코로나는 팬데믹의 제일 후보 리스트에 계속 올라 있을 것이다.

팬데믹 문제까지 가지 않더라도 일상에서도 다양한 호흡기 바이러스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 이는 공기의 질이라는 주변 환경을 극적으로 개선하지 않는 한 피하기 어렵다. 그래서 개인의 위생 개념을 호흡기 바이러스에 맞춰 확장하는 것이 필요하다. 기존 위생 개념은 세균을 기준으로 형성되었다. 독립 영양 생물인 세균은 물과 영양분만 있으면 스스로 증식한다. 세균의 증식은 썩는다는 의미이며 색깔・냄새・맛 같은 사람의 감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세균에 대한 위생 개념은 비교적 직관적이다. 하지만 바이러스는 숙주 밖에서는 무생물 입자로 존재한다. 아무런 생명 현상이 없어 음식을 썩게 하지도 않고 무색무취이기에 인간의 감각으로는 인지가 불가능하다.

호흡기 바이러스 감염 경로의 가장 강력한 방벽은 마스크다. 픽사베이

마스크는 호흡기바이러스의 가장 강력한 방벽

식당 화장실을 갔는데 더러워 보이는 낡은 비누만 있다면 손을 물로만 씻어야 할까? 더러운 비누는 비위생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미생물의 관점에서 보면 때로 검게 얼룩진 비누라도 손에 비하면 병원 수술실 수준이다. 따라서 식사 전에는 낡은 비누를 이용해 손에 묻어 있을지 모르는 세균과 바이러스를 제거해야 한다. 물론 개인 손 세정제를 가지고 다닌다면 이런 고민은 없을 것이다. 음식물이나 물을 매개로 하는 위장관 바이러스는 세균에 대한 위생 개념만으로 대부분 막을 수 있다. 세균 오염에 대해 주의하면 위장관 바이러스 오염도 주의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호흡기 바이러스는 기존 위생 관념으로는 위험성을 인지하기 어렵다. 따라서 21세기 호흡기 팬데믹 시대에는 위생 개념을 좀 더 확장하는 것이 필요하다. 스스로 움직일 수 없는 바이러스 입자의 감염은 공기라는 환경과 사람의 행동으로 결정된다. 공기 환경 개선이 개인으로선 어쩔 수 없는 영역이라면, 행동은 개인의 영역이다.

호흡기 바이러스 감염 경로의 가장 강력한 방벽은 마스크다. 호흡기 바이러스는 무생물 입자 형태로 감염자 주변 공기에 높은 농도로 떠돌아다닌다. 콧물, 기침, 재채기 등의 증상이 있는 사람과 마주할 때면 마스크를 착용해야 위생적이다.

하지만 그 이전에 감염 증상이 있는 사람은 스스로 마스크를 해야 한다. 감염자가 마스크를 하는 것의 차단 효과가 압도적으로 높기 때문이다. 기침을 하는데 마스크를 하지 않는 행위는 비위생적이라는 사회적 상식의 정착이 필요하다. 이 간단한 위생 개념의 확장으로 호흡기 바이러스 일상 전파 대부분을 차단할 수 있다.

바이러스는 눈이 아닌 머리로 보는 것이다. ‘바이러스가 우리를 감염시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것’이다. 단순한 말장난으로 보이지만 여기에 바이러스 방역과 위생의 본질이 들어 있다.

주철현 울산의대 미생물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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