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위기, 더 어려운 상황 온다…‘민족 대 동맹’ 이분법 벗어나야”
미-중 대결·국제질서 요동·북핵, 한국 ‘생존 위기’
전술핵·핵개발 지금은 득보다 실, 상황 보며 판단
억제 강화하되 오판·확전 막을 미 대북특사 필요
‘민족 대 동맹’ 이분법 진영논리 넘어 해법 모색을
“미-중 대결 본격화, 흔들리는 자유주의 국제질서, 북한의 실질적 핵보유국화라는 세가지 근본적 변화가 한국에 한꺼번에 밀려오고 있다. 이런 ‘생존의 위기’ 앞에서 정치권은 정쟁에만 몰두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 초대 외교통상부 장관을 지낸 윤영관 서울대 명예교수는 3중 복합위기로 닥쳐온 국제질서의 격변이 한국에 ‘매우 험난한 시절’을 예고한다고 깊이 우려했다. 지난 27일 한겨레신문사에서 한 인터뷰에서 윤 전 장관은 현재 세계의 상황이 2차 세계대전으로 치닫던 1920~1930년대와 비슷하다고 말했다. 미국과 중국이 외교·군사·경제·기술· 이념 등 5가지 측면에서 전면적으로 대립하고 있어 타협이 매우 어려운데, 북한은 핵보유국 지위를 기정사실화하려 하고 있어 한반도와 대만 위기가 동시에 고조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절박한 상황에서 한국 외교는 ‘생존 모드’로 전환해야 하며, 한국 사회가 진보와 보수의 이분법적 진영논리에서 벗어나 현실적 방안을 함께 찾고 실현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한이 핵 사용 법제화를 하고 잇따른 미사일 발사와 도발을 하고 있고, 7차 핵실험이 임박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현재 김정은 위원장의 전략적 목표는 무엇이라 보는가.
“북한 핵전략은 단계적으로 악화하는 방향으로 질주해왔다. 2000년대 초반까지는 협상용 측면이 상당히 컸다. 그런데 2000년대 초 미국 부시 행정부가 ‘악의 축’ 관점에서 적대 정책을 취하고 강하게 밀어붙이자 절박한 위기의식을 느낀 북한은 핵을 가지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결단했다. 그 후 2013년에 핵 보유가 외부 침공에 대비한 억제책이라고 규정했고, 올해는 핵 선제 사용을 선언하고 법제화했다. 지금 김정은 위원장의 전략적 목표는 핵미사일 기술을 완성하고 핵보유국 지위를 기정사실화하려는 것이다. 앞으로 북·미 간에 협상이 열려도 북한은 한·미가 원하는 북한 비핵화 또는 한반도의 비핵화가 아니라, 핵 군축 협상을 원할 것이다. 그런데 핵을 줄이는 대가로 북한이 무엇을 요구할 것인가. 북한이 요구하는 ‘핵 위협 해소’의 맥락에서 주한미군 철수나 전략자산 철수 등을 요구하려 할 것이다. 한국 입장에서는 굉장히 어려운 상황이 올 것이다.”
—변화한 북핵 위협의 성격에 대응해, 한국은 어떤 대응을 해야 하나.
“먼저 현 상황을 크게 진단해볼 필요가 있다. 세상이 지금 격변하고 있다. 2018년을 기점으로 미·중 대결이 본격화되고 있는데 그때부터 한국에 굉장히 힘든 세계가 되었다. 그 이전만 해도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한국은 상대적으로 자율적인 외교 영역이 있었지만, 그 영역은 굉장히 줄어들고 있다. 두번째 격변은 규범에 기반한 국제질서가 심각하게 도전받고 있다.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대표적 사례이고 이런 흐름이 더 심화하면 약육강식 논리가 지배하는 국제질서가 될 것이다. 제국주의 힘의 논리에 희생당했던 일제 35년과 6.25 전쟁의 비극을 겪었던 한국의 입장에서는 대단히 어려운 상황이 도래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세 번째로는 북한이 실질적 핵보유국이 되었다. 안타깝게도 그동안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비핵화 외교는 실패했다. 북한의 강화된 미사일 핵미사일 능력이 한국의 안보를 상당히 위협하고 있는 지경까지 왔다. 예를 들어 KN23 단거리 초고속 미사일이 날아오면 탐지와 방어가 거의 불가능하다. 북한이 고체 연료 미사일을 발사하게 되면서, 북한이 액체 연료를 주입하는 30분 동안 미사일 발사 준비를 미리 탐지해 선제 타격한다는 3축 체계의 의미가 사라졌다. 이런 세가지 도전 요인 앞에서 우리가 과거의 상대적으로 평화로운 시대에 가졌던 발상과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꿔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정부는 미국과 협의해 확장억제를 획기적으로 강화한다고 하는데, 이 방법으로 한국의 안보 불안을 해결할 수 있을까.
“지금 미국 국방 정책 담당자들은 새로운 ‘통합 억제(integrated deterrence)’라는 개념에 몰두하고 있다. 미국이 세계에 퍼져 있는 적대 국가들을 억제하는 방식을 새롭게 바꾸는 것인데, 재래식·핵·사이버·우주정보 등 여러 영역의 무기 체계와 자산을 통합하고, 여러 분쟁 지역들에 통합해 대응하고, 동맹과 파트너를 포함한 모든 나라들의 국력 가운데 필요한 요소들도 활용하겠다는 취지다. 한국으로서는 현재 3축 체계가 북한의 핵·미사일 기술 고도화로 약화된 상황이기 때문에 그것을 보완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의 대북억제 전략을 미국의 통합 억제의 한축으로 통합해, 북한의 공격을 더 빨리 탐지해내고 미사일 방어 체제를 보강할 수 있도록 고도화하는 억제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한편으로는 통제 불가능한 상황 악화를 막기 위해 북한과 외교적 소통 노력도 지속해야 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대화할 의도가 없다고 공언했는데, 대화가 가능할까.
“한미훈련이 재개되었고 북한이 고강도 대응을 하면서 오판과 과잉 대응으로 인한 확전의 위험이 있다. 이를 막기 위해서 미국이 북한에 특사를 파견할 필요가 있다. 1998년에 클린턴 행정부가 윌리엄 페리 전 국방장관을 대북특사로 임명을 해서 전권을 위임해 협상하게 한 것과 비슷한 조치를 바이든 대통령이 취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북한도 이런 상태가 장기화하는 것을 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의 입장에서 핵이 중요한 어떤 축이지만 또 다른 중요한 축은 경제다. 경제 상황이 상당히 어려운 데 무작정 이렇게 버텨나가는 것이 과연 자신의 지지 기반을 다지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될까를 생각할 것이다. 미국이 적절한 선제조치를 취한다면 북한도 대화에 응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김정은 위원장은 차기 미국 대선까지는 계속 핵·미사일 능력을 강화하면서 기다리지 않을까.
“바이든 정부의 특단의 조치가 없다면 그럴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2024년 미국 대선까지는 약 2년이 남았는데 북한 내부 정세, 미·중 관계, 러시아 우크라이나 상황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서 패배했다고 볼 수 있는 국제 정세가 온다면 김정은 위원장에게도 심리적 영향을 줄 것이다. 중국 경제가 악화된 상황에서 중국이 북한이 원하는 경제적 지원 등을 충분히 해줄지도 변수다. 그래서 북한이 협상장으로 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필요는 없다.”
―이런 복합적 위기 속에 확산되는 전술핵 재도입·자체 핵개발 주장을 어떻게 평가하나.
“지금 상황에서 득보다 실이 크다. 우선 미국이 부정적 태도를 취하고 있다. 미국 외교 정책의 근간인 비핵화에 어긋나고, 전술핵을 한국의 고정 시설에 배치하게 되는 경우 쉽게 공격 목표가 되기 때문에 비효율적이다. 핵 개발은 1970년대 중반부터 박정희 대통령이 시도했을 때 미국이 강하게 제지해 결국 포기했던 경험이 있다. 사실 한국이 핵 개발을 시도한다면 기술적 측면에서는 그렇게 어렵지는 않다. 그런데 정치적 차원에서 볼 때 핵 개발을 한다면 한미관계가 악화되고, 미국이 주도하는 제재와 경제적 수단을 동원한 여러 압박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다. 아직은 전술핵이나 핵 개발을 고려할 상황은 아니다. 그런데, 어떤 옵션도 절대로 안 된다고 말할 수는 없다. 미국도 이후에 북한 핵·미사일 상황이 도저히 확장억제로는 대응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고 판단하면, 확장억제에 무엇을 더해야 할지에 대해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 우리 입장에서도 아직은 그런 때가 아닌데 무리하게 핵 개발을 추진할 경우 실이 득보다 훨씬 클 것이다. 그래서 그때그때 상황을 보고 냉철하게 계산을 해야 한다.”
—지난 30년 동안 한국, 미국, 중국, 일본 등이 참여해 진행한 북핵 외교는 왜 실패했나.
“첫번째는 북한의 상황 전개와 미국의 정책이 서로 어긋났다. 1991년 소련이 붕괴하고 냉전이 끝날 상황에서 김정일 위원장은 굉장히 불안을 느끼고 미국과 외교 관계를 정상화하고 관계 개선을 원한다는 시그널을 보냈는데 당시 미국과 한국 정부가 거부했다. 그때 기회를 한번 놓쳤다. 2000년대 초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 포용 기조를 완전히 바꿔서 ‘악의 축’으로 압박하자 북한은 위기의식을 느끼고 본격적으로 핵보유국이 되는 방향으로 달려갔다. 또 하나 중요한 변수는 중국과 미국 간에 정책의 우선순위가 서로 어긋났다. 중국이 북한 비핵화에 대해 협력도 했지만 그 협력의 강도가 한국이나 미국 등이 기대하는 것에 훨씬 못 미쳤다. 중국이 한반도 문제를 미국과의 전략 경쟁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기 때문이다. 중국에게는 미국의 영향력이 한반도에서 북상하지 못하도록 막아주는 방파제·완충지대 역할을 하는 북한 체제의 존속이 비핵화보다도 더 중요한 우선순위였고, 역설적으로 북한 지도자들은 그러한 중국의 심리를 꿰뚫어보고 역이용했다. ‘우리가 핵 개발을 향해 달려나가도 중국은 우리를 막을 수가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다음으로는 한국과 미국의 정부가 바뀔 때마다 대북정책이 계속 바뀐 것이 북핵 문제를 푸는 데 약점으로 작용했다.”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북한을 포용해야 한다고 제안하는 글을 미국 외교전문지에 기고하시기도 했는데 어떤 의미인가.
“2018년을 기점으로 미-중은 대결구도로 완전히 전환했는데, 미국 정책 결정자들은 여전히 중국이 북한 비핵화에 대해서는 협력을 할 것으로 기대했다. 그것은 오판이라고 생각한다. 중국의 우선순위는 항상 북한의 체제 유지에 있고, 미·중 관계가 악화하면서 북핵 문제는 더욱더 미·중갈등의 포로가 되었다. 그래서 미국이 대담하게 전략적으로 발상 전환을 해서 북한을 ‘제2의 베트남화’로 유도해 가야 한다는 제안을 했다. 만약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때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각자의 입장을 타협해서 적절한 형태의 합의가 이뤄졌다면, 제가 제안했던 그런 길도 가능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실현되지 못했다. 지금은 한미일 대 북중러 대결 구도로 가고 있는데, 우리에게 매우 어려워지고 있다. 한반도가 제2의 냉전 구도에서 가장 첨예한 최전선이 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북한이 실질적으로 핵을 보유한 상황에서 긴장은 과거 냉전 때보다 더 고조될 수 있다.”
―세계적으로는 기존의 국제질서가 다 무너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세계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세계 질서의 기본이 도전받고 있다. 2차대전 이후 형성된 자유주의 국제질서와 규범 기반 국제질서가 흔들리고 있다. 러시아는 제국주의의 논리에 따라 세력권을 확장하기 위해서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규범에 기반한 국제질서를 근본적으로 흔들고 있다. 러시아 같은 나라들이 승리한다면 앞으로 ‘힘이 정의’가 되는 세상이 올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강대국들에 둘러싸인 한국 같은 나라는 가장 불리하다. 이와 함께 포퓰리즘과 권위주의가 확산되면서 민주주의도 흔들리고 있다. 이런 세 가지 흐름을 보면 지금 우리는 1차대전과 2차대전 사이인 1920~1930년대의 전간기와 비슷한 시대로 접근하고 있다. 디커플링이 진행되는 것은 당시의 블록경제와 비슷하고, 권위주의 포퓰리즘은 당시의 파시즘이나 나치즘, 일본 군국주의를 떠올리게 한다. 이런 세계에서 한국은 규범에 기반한 국제질서, 자유주의 국제질서, 민주주의의 회복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비슷한 문제의식을 가진 독일 등 유럽국가들, 호주, 아세안 국가들, 캐나다 등과 외교를 강화하고 협력할 필요가 있다. 특히 민주주의 회복을 위해서는 국내 경제 양극화를 해소하고 빈곤층을 보호하고 중산층을 강화하고 복지 정책과 사회안전망을 강화해야 한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대만에 대해 무력 통일을 포기할 수 없다고 했고, 대만 문제는 동아시아의 핵심 안보 이슈로 떠올랐다. 대만 문제와 관련해 한국은 어느 정도의 입장을 취해야 하나.
“대만 문제가 한국에 상당한 위험 요인이다. 주한 미국대사가 ‘주한미군은 한반도 방어가 우선’이라고 밝혔지만, 상황이 일단 발생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측하기 어렵다. 또, 그런 상황에서 북한이 도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따라서, 한국도 대만 사태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다. 한국은 대만 문제의 평화적인 해결을 위해서 미국과 협력을 해야 한다. 한편으로, 북한의 심각한 위협에 직면하고 있는 한국 상황이 일본, 호주 등 다른 동맹과는 다르다는 점을 미국에 차별화하는 전략으로 나가야 한다. 대만에서 전쟁이 벌어져도 북한의 도발 위협 때문에 우리가 군사적으로 직접 참여하는 것은 힘들다는 점을 미국을 상대로 설득해야 한다.”
―중국 공산당 20차 당대회가 시진핑 주석의 ‘1인 통치’를 확인하며 끝났다. 한국은 대중국 전략을 어떻게 해야 할까.
“한국 외교 전략에서 큰 문제는 희망적 사고를 많이 하고, 전략적 사고를 안 하는 것이다. 중국이 한반도 외교나 한중 관계·북중 관계를 기본적으로 미국과의 경쟁 맥락에서 보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중국과 외교를 할 때 어느 정도 분명하게 밝혀야 될 것이 있다. 우선 북한의 안보 위협이 허구가 아니고 실존하는 위협인 상황에서는 한미동맹이 한국에게 생존의 문제라고 하는 것 한국이 민주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민주주의 국가들과 가깝게 지내고 협력하는 것은 불가피하다는 점을 명백히 해야 한다. 또 중국이 궁극적으로 동아시아 지역에서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위계적 중화질서를 구축하려 하는데, 한국은 거기에 동의할 수 없고 주권국가로서 평등하고 호혜적인 관계를 원한다는 점을 모든 지도자들이 중국과의 외교에서 분명히 해야 한다. 그런 전제 위에서 한중 간 경제적 협력과 사회문화적 교류를 통해 관계를 유지하려는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 한편으로 중국에 대한 과도한 경제 의존도를 줄이도록 인도·아세안 국가들과 경제 협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한·미·일 군사협력 강화 움직임에 대해 ‘극단적 친일’ 논란이 벌어졌다. 우리가 어떤 원칙을 가지고 일본과 군사협력을 하는 것이 적절할까.
“한국의 생존을 압박하는 지금의 복잡한 도전들을 극복해 나가는 데 있어서 일본이 파트너가 되는 것이 우리 국익에 도움이 된다. 한국 외교가 ‘생존 모드’로 전환되어야 하는 상황에서 한일 관계가 걸림돌이 돼서는 안된다. 문제는 일본 정치인들의 수정주의적 역사관이다. 일본이 과거사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사고하고 사과할 부분은 사과하도록 계속해서 촉구해 나가야 하고, 이 부분에 대해 미국의 이해와 협력을 심화하도록 대미외교도 강화해야 한다. 역사 문제는 계속해서 협의를 통해 순차적으로 문제를 풀어가는 방향으로 가면서, 경제, 기술, 군사 분야에서는 일본과 협력해나가는 것이 한국이 직면한 도전 과제들을 극복해 나가는 데 도움이 된다. 미국은 오래전부터 경제적 부담 등을 고려해 일본이 동아시아에서 군사적 역할을 강화하기를 원해왔고, 이미 그 방향으로 가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주일미군 기지와 한국의 방어를 따로 떼놓고 생각할 수가 없다. 한국에서 유사사태가 벌어지면 주일 미군기지에서 병력이 이동하게 되어 있다. 북한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한일 간 정보 공유나 잠수함 훈련 등이 필요하다. 일본과는 군사협력은 안 된다는 식으로 완전히 제외하려는 것이 과연 한국의 이해관계에 맞는 것인가. 이 문제를 친일이냐 반일이냐의 프레임으로 볼 문제가 아니고, 복합적으로 냉철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
—미국 일변도로 가려는 보수의 정책과 진보 진영의 과거 30년 북핵 해법이 모두 한계에 부딪힌 상황이다.
“외교장관으로 일할 당시 제일 힘들었던 것은 ‘민족이냐 동맹이냐’의 이분법적 사고였다. 김대중 정부 때만 해도 이런 이분법적 사고는 별로 보이지 않았다. 민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동맹을 끌어오고 외교를 활용한다는 시각이었다. 그런데 이후에는 이분법적 사고가 확산되었다. 언론의 역할이 컸다고 본다.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한반도 평화를 정착시키려면 남북끼리만 잘하면 된다는 생각은 비현실적이다. 진보 진영은 이런 이분법적 사고에 기초해서 민족 문제에 치중하는 경향을 보였고 그러다 보니 미국과의 관계가 소원해졌다. 보수 진영은 반대로 동맹에 치중했다. 동맹을 중시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한반도 문제와 관련하여 주인의식을 갖고 예인선처럼 동맹을 리드할 생각과 의지가 별로 없이, 미국이 무언가 하기를 손 놓고 기다리는 경향이 있다. 외교적 상상력이 부족하다. 미국과의 동맹을 중시하되 동시에 한반도 문제, 즉 민족 문제에 있어서 주인의식을 가지고 정책적 상상력을 발동해 풀어나가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런 진보-보수의 이분법적 진영논리가 굳어지면서, 이제는 외교 사안마다 친일 대 반일, 친중 대 반중 등의 프레임으로 모든 걸 해석하면서 진영논리끼리 서로 부딪히고 있을 뿐, 세계정세의 흐름과 그 안에서 우리가 직면한 도전을 분석하면서 해법과 목표를 논의해 가는 것을 보지 못했다. 이런 이분법적 사고를 극복하는 것이 일차적인 과제라고 생각한다.”
—트럼프 같은 지도자가 미국에 다시 등장해 국제질서가 더욱 혼란에 빠질 위험이 있는가.
“있다고 본다. 미국이 여전히 ‘두 개의 미국’으로 분열되어 있다. 경제가 나빠지고 인플레이션이 극심해지고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패배한다면, 극도의 고립주의적인 성향과 미국 우선주의가 강화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세계 정치 체제가 1930년대와 같은 상황으로 갈 우려가 있다. 이어서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또는 트럼프와 비슷한 극단적 고립주의자가 당선된다면, 주한미군 철수 가능성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한국은 안보 공백 상태 속에서 홀로 남는 그런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북한이 이미 핵무장한 상태에서 그런 상황이 오면 국내 정치, 경제적으로도 엄청난 어려움에 직면할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이전처럼 예측 가능하고 질서 있게 돌아가는 세상이 아니다. 그런 절박한 상황에서 어떻게 생존을 유지할 것이냐가 굉장히 심각한 문제인데, 지금 정치권의 상황에 대해 아쉬움이 많다. 과거 조상들이 당쟁하다가 외침을 당했던 때와 과연 정치 역량 면에서 나아진 게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심각한 현실에 맞는 정치권의 단합과 리더십 역량, 국민들의 여론 통합이 안 보이는 점이 무척 걱정스럽다.”
―지금의 국제적 상황이 대만 충돌이나 ‘3차 세계대전’과 같은 상황으로 악화될 수도 있다고 우려하시는 건가.
“그렇다. 위태로운 국면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자신의 임기 안에 꼭 대만을 통일하겠다고 공개적으로 서약한 상황이다. 차기 정치국 상무위원 7명을 완전히 자기 사람으로 포진시킨 것을 보고 놀랐다. 그런 식으로 견제와 균형 시스템이 사라지면, 중요한 정책에서 절대 권력자가 오판할 가능성이 굉장히 높아진다. 미국에서도 대중국 강경론이 주도적 흐름이 돼버렸고 합리적 온건론자들은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미국 민주당과 공화당이 서로 누가 더 중국을 압박하는 데 선명한지 경쟁하는 상황이다. 그런 상황을 반영하듯 바이든 대통령은 대만에 대한 전략적 모호성을 버리고 ‘만약에 무력 충돌 사태가 벌어지면 미국이 개입하겠다’고 네 번이나 얘기를 했다. 이전까지는 ‘중국의 무력 침공도 반대하고 대만의 독립 추구도 반대한다’는 현상유지가 미국의 전략이었는데, 이제는 대만이 독립을 추구하는 것은 대만인들의 의지에 달려 있다고 하는 얘기들이 나온다. 미국의 대중국 정책이 한 단계 더 강경해진 것이다. 과거 미소 냉전 시기에는 미국과 소련 사이에 소통 채널이 있었고 일종의 게임의 룰이 있었다. 그래서 위험한 국면을 피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미국과 중국 사이에는 그런 게임의 룰도 없고 상대방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에 대해서도 확신이 없다. 냉전 시대보다 더 위험하다. 한국으로서는 북한 문제부터 대만 문제까지 양쪽에서 다가오고 있다. 조금 지나면 미국과 중국이 서로 대화하고 화해할 것이라고 얘기하는 분들이 많은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미국과 중국이 외교·군사·경제·기술· 이념 등 5가지 분야에서 충돌하고 있고, 어느 하나에서도 긴장이 해소되는 신호가 보이지 않는다. 다가오는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바이든과 시진핑이 만나 대화를 해도 이런 흐름이 바뀔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런데 바깥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에 아랑곳하지 않고, 국내 정치권은 정쟁에 몰두하고 있다.”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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