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광 패널에 포위된 복숭아 농장 가족들···‘알카라스의 여름’[리뷰]
영화는 스페인 카탈루냐의 작은 마을 ‘알카라스’의 초록색 복숭아 나무가 자라는 농장을 비추며 시작된다. 솔레 가족은 3대가 모여 사는 대가족이다. 할아버지가 스페인 내전에서 지주의 목숨을 구해주면서 그에게 땅을 받아 복숭아 농장을 일궜다.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고모, 고모부, 아이들까지 모두 복숭아를 딴다. 그러나 지주 아들은 복숭아 농장을 없앤 뒤 태양광 패널 사업을 하겠다며 나가라고 한다. 토지계약서는 아무리 찾아도 없다. 여름이 끝나면 복숭아 농장도 끝이다. 땅을 빼앗기게 생겼는데 복숭아는 제값을 못 받고 있다. 다른 농부들은 대형마트 앞에서 가격을 보장하라고 외치지만 아버지 키메트는 묵묵히 복숭아만 딴다. 여름 끝자락이 다가올수록 태양광 패널이 하나둘씩 농장 주위에 박힌다.
농업으로 일가를 이룬 아버지는 아들이 공부를 더 하기 원한다. 아들은 요즘 청년답지 않게 농업에 애착을 보인다. 아버지 몰래 유기농 토마토를 심었지만 아버지는 토마토를 불태워버린다. 아들은 엇나간다. 복숭아 농장에 물이 넘치지 않도록 막아야 할 문을 홧김에 열어놓고 밤새 클럽에서 보낸다. 농장은 진흙탕이 되어버렸다. 머지않아 다가올 상황을 암시하는지도 모른다.
아버지와 아들은 결국 시위장으로 달려간다. 그토록 아끼던 복숭아를 짓뭉개면서 낮은 가격을 항의한다. 중앙 정부와 재정적 차별로 분리 독립을 외치는 카탈루냐의 복잡한 역사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다음날 아침 복숭아 나무 앞에서 커다란 엔진소리를 내고 있는 포클레인을 비추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영화 <알카라스의 여름>의 배경은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이다. 찬란한 햇빛이 비추는 초록색 밭에서 빨간 복숭아가 익어가고 아이들은 뛰어논다. 총천연색 싱그러움을 한껏 담았지만 진한 슬픔이 배어있다. 아이들이 노는 모습은 연기인지 실제인지 헷갈린다. 흡사 다큐멘터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제작진은 자연스러운 연기를 위해 농부이거나 농부 가족 출신들과 카탈루냐어를 할 수 있는 현지인 배우를 캐스팅했다.
복숭아 나무가 불도저에 밀릴 위기지만 <알카라스의 여름>은 소박하다. 지주 아들의 마음을 돌리려고 직접 키운 잘 익은 유기농 무화과 한 바구니를 준비하는 인자한 할아버지, 서로 아끼지만 농장 운영을 두고 갈등하는 아버지와 고모들, 가족에게 도움이 되고 싶은 10대 아들, 지역축제 무대에 서기 위해 춤을 연습하는 딸, 동굴을 만들며 뛰어노는 해맑은 아이들까지 3대 가족의 풍경을 담담하게 그렸다.
여느 농경사회에서 어머니들이 대개 그렇듯 생계 수단을 졸지에 잃어버릴 순간에도 어머니는 남편에게 대책을 따져묻지 않는다. 묵묵히 집안일만 한다. 그러다 아버지와 아들의 갈등이 고조됐을 때 어머니는 아버지와 아들에게 각각 뺨을 한 대씩 후려친다. 유일하게 카타르시스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올해 2월 제27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황금곰상을 받았다. 각본, 연출, 프로듀싱, 촬영까지 모두 여성 제작진이 참여했다. 카를라 시몬 감독은 수상 직후 알카라스에서 복숭아를 재배하던 할아버지와 삼촌들에 대한 기억에서 출발한 영화가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킨 것이 자랑스럽다고 밝혔다. 그는 “누구에게나 가족이 있고 모든 나라에 농업이 있다. 이것은 보편적인 주제”라고 말했다.
흙에 물을 주며 흙을 밟고 살아가는 사람들, 투덕거려도 일상의 행복을 주는 가족을 느끼게 하는 영화다. 3일 개봉.
임지선 기자 visi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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