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액암 투병 안성기 "연기는 나의 힘"

서울문화사 2022. 11. 2.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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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배우 안성기가 혈액암 투병 중이라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많은 사람이 응원을 보내고 있다. 안성기와 오랜 지인인 필자가 그를 만나 근황을 들었다.

회복 단계… 치료 중 영화 출연하기도

한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배우 안성기가 지난 9월 15일 서울 압구정동 영화관에서 개최된 배창호 감독 데뷔 40주년 특별전 개막식에 참석했다. 그런데 이날 건장하고 다부진 체격에 하회탈 같은 그의 따뜻하고 소박한 특유의 인상이 다소 변해 있었다. 가발도 쓰고 있었다. 뜻밖에도 혈액암으로 투병 생활 중이라고 고백했고, 기사로 보도되면서 모두가 깜짝 놀랐다. ‘착한 배우 안성기’가 처한 상황을 걱정하고 쾌유를 바라는 댓글들이 인터넷 뉴스의 꼬리를 물고 쏟아져 나왔다.

안성기가 어떤 인물인가. 1957년 아역 배우로 배우 김지미와 영화 <황혼열차>로 데뷔했고, 성인이 된 후 1980년 영화 <바람 불어 좋은 날>로 시작해 충무로 시대의 중심에서 활동하며 천만 관객 시대의 포문을 연 영화 <실미도>를 포함해 출연 작품이 200여 편에 이른다. 올해 상영된 영화 <한산: 용의 출현>에도 출연했다. 초기 항암 치료를 받으면서 연기 활동을 했지만 그의 투병 생활은 밖으로 알려지지 않았다.그는 12년째 원로 배우 신영균이 설립한 신영균예술문화재단의 이사장을 맡고 있고, 필자는 상임이사로 그와 함께 재단을 운영해왔다. 설립 목적인 예술 인재 육성을 위한 주요 사업으로 단편영화 제작 지원사업, 영화인 자녀 장학사업, 어린이 영화체험 교육사업 등을 착실히 수행했다. 그는 주요 재단 행사에 빠지지 않고 참석했고, 이사회를 주관했다. 물론 그의 투병 생활을 진작 알고 있었지만 굳이 밖으로 알려야 할 이유를 느끼지 않게 그는 항암 치료 중에도 자신의 책무를 다했다.

인터뷰 당시 그는 10월 20일 개최될 제12회 아름다운예술인상 행사를 차질 없이 준비하고 있었다. 이제 그의 투병 생활이 공개돼 누구보다 가까이서 재단 운영 회의를 하고 밥도 먹고 때로는 바둑도 뒀던 필자가 기자로 돌아가 그의 현재 처지에 대해 인터뷰를 청했다.

운동 뒤 혼절, 응급실 이송 후 항암 치료

투병 소식이 전해진 뒤 다들 우려하고 있다. 언제 증세가 나타났나?

2년 전이다. 한남동에 있는 헬스클럽에서 운동을 하고 욕탕에 들어가면서 정신을 잃었던 것 같다. 다행히 가까이 있던 분이 신고해 구급차에 실려 갔고 응급실에서 깨어났다. 몇 군데 큰 병원을 거쳐 혈액암 분야에서 저명한 의사를 만나 꾸준히 치료를 받아왔다.

치료 중인 서울성모병원에 1억원을 기부했다는 뉴스를 봤다.

혈액내과 조석구 박사가 주치의인데 일단 위기를 넘기고 난 뒤 주변의 불우한 환자들이 친구처럼 다가왔다. 같은 처지의 환자로 치료비가 부족한 분들에게 써주기를 바라면서 내 작은 정성을 보태고 싶었다.

아플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이 이웃 환자였던 것 같은데, 그다음은?

영화다. 아무리 내일 어떻게 된다 해도 내가 해야 할 일은 연기 활동이다. 출연 중인 작품을 중도에 포기한다는 것은 스스로 받아들일 수 없는, 심리적으로 볼 때 나에게는 병마의 시련보다 더 큰 고통이다.

가족들의 충격도 컸을 것이다.

미국에 사는 큰아들 다빈이는 코로나19 사태로 올 수 없었고, 아내(오소영 조각가)와 둘째 필립이 가장 힘들었을 것이다.

투병 중 가장 견디기 힘든 점은?

먹는 음식이 지극히 제한됐다. 우선 물을 많이 마시지 않고 살았는데 물을 많이 마셔야 하는 것은 고문과도 같았다. 먹고 싶은 음식을 먹지 못하는 것도 힘든 시련이었다. 신체 활동에 제약이 되는 의사의 행동 규제 요청도 많았다. 그리고 무균실에 격리돼 혼자 적막한 공간에서 입원 치료를 받는다는 것은 다른 환자들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인내가 필요하다.

최근 영화 <한산: 용의 출현>이 성공했다. 모처럼의 대박이었다.

기분이 좋았다. 최근 들어 가장 반가운 소식이었고 기쁨이었다.

(인터뷰가 진행되는 사이에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설립자이자 원로 배우인 신영균 회장으로부터 안성기 이사장과 필자에게 전화가 왔다. 신영균 회장은 필자와 대화가 끝나고 안성기 이사장을 바꾸게 한 뒤 “신문 봤어요. 기운 내야 해, 힘내야지. 정신이 제일 중요해. 마음이 약해지면 병을 못 이겨요. 힘내요! 우리 안성기”라고 곁에 있는 필자에게까지 들리도록 힘주어 격려했다.)

1957년에 배우 김지미와 데뷔 동기로 아역 시절부터 출연 작품이 아마도 300여 편은 될 것 같다.

그 정도는 안 되고 200여 편쯤 된다.

1980년 이장호 감독의 <바람 불어 좋은 날>로 활동을 재개할 때부터 기자로 가까이서 지켜보며 한번 물어보고 싶은 질문인데 못한 것 같다. <고래사냥> <투캅스> <깊고 푸른 밤>을 비롯해 우리나라 최초 관객 천만 영화 <실미도> 등 그 많은 작품 중 어느 작품이 가장 애정이 가고 잊을 수 없나?

(그는 매우 깊이 생각을 한 후에) 이준익 감독과 함께한 <라디오 스타>가 잊을 수 없다. 자그마한 이야깃거리를 의미 있고 즐겁고 신명 나게 풀어간 작품이었다. 나는 우울한 캐릭터보다 밝고 희망적이고 재미있는 역할이 마음에 들고 늘 하고 싶다.

항암 치료 중에 출연한 영화 <한산: 용의 출현>
항암 치료 중에 출연한 영화 <카시오페아> 의 한 장면

그러고 보니 <라디오 스타>에서 공연한 배우 박중훈과 참 오랜 콤비로, 파트너로 많은 작품을 성공시켰다. 그중에 <투캅스>는 백미 같다. 두 사람이 형님 아우 하며 평생 정답게 의리를 지키며 사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흐뭇하다. 또 누구와 깊은 정을 나누는가?

선후배들이 다들 날 좋아하고 나도 다 좋아해 몇 사람 꼽기가 좀 거북하다. 그냥 만만한 사람이라면 박중훈을 비롯해 김수철, 정우성, 이정재 등이다. 김수철은 <고래사냥> 때 노래보다 연기가 너무 힘들다고 안 보이는 곳에서 자주 울먹울먹해 내가 달래가면서 출연했다.

힘들 때 부모님(아버지는 배우 출신으로 영화사 사장을 지낸 고 안화영 씨) 생각도 많이 날 것 같다.

물론이다. 어머니는 83살에 돌아가셨고 아버지도 94살까지 사셨다. 인간은 좋을 때는 잊고 살다가 힘들어지면 부모님을 생각하지 않나. 60대 때는 아직도 갈 길이 많이 남아 있다고 생각했는데 칠순을 맞이하면서 인생이 너무 짧다는 생각과 함께 남은 시간이 길지 않게 보이는 불안감이 다가왔다.

지금 불안해하는 영화인과 관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다음 작품을 기대해달라는 희망 사항을 함께 나누고 싶다. 배우는 관객을 위해 연기로 봉사하고 헌신하는 직업인이다. 영화를 통해 사랑을 주셨으니 영화로 보답하는 길밖에 없다. 사랑하는 우리 관객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고 즐거움을 나눌 수 있는 작품을 만났으면 하고 기도한다.

에디터 : 하은정 | 취재 : 김두호(<인터뷰365> 발행인) | 사진 : 김두호 제공, 영화 <한산: 용의 출현> <카시오페아>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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