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 먹통으로 다시 빛 보는 ‘온플법’
10월 15일 SK C&C 분당 데이터센터에 화재가 발생했다. 이곳에서 가동되던 카카오 3만2000여 개 서버도 가동이 중단됐다. 카카오톡이 멈췄다. 뱅크도, 페이도 멈췄다. 소상공인, 택시기사들은 업무에 차질이 생겼고, 예약 지연, 물건 주문, 배송 오류 등의 피해를 겪었다. 카카오 계열사 주요 기능의 불통은 며칠 동안 이어졌다. 화재 발생 5일 후인 19일이 돼서야 주요 서비스가 정상화됐다.
카카오 화재로 다시 관심이 쏠린 곳, 국회다. 국회 정무위원회에 계류 중인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법’. 카카오, 네이버, 쿠팡, 배달의민족 등 온라인 플랫폼 기업이 입점 업체를 상대로 하는 이른바 ‘갑질’을 규제하는 법안이다. 온플법은 지난 정부에서 공정거래위원회가 국회에 제출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면서 공정위는 ‘자율규제’로 기조를 전환했다.
이에 따라 국회에서도 논의가 지지부진했다. 그러나 이번 카카오 ‘먹통’ 사태로 빅테크의 독과점 규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잇따라 제기되며 온플법 논의 재개 여부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해 1월 제정안을 제출했다. 정무위에 계류 중인 법안들은 대개 거래액 1조원 매출 또는 매출 1000억원 이상인 18개 국내외 플랫폼 사업자를 규제 대상으로 하고 있다. 네이버쇼핑, 네이버 스마트스토어, 카카오모빌리티, 구글플레이, 애플 앱스토어, 원스토어, 쿠팡, 배달의 민족, 요기요 등이 대상 사업자다. 이와 별도로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는 ‘온라인 플랫폼 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안’이 제출돼 있다.
갑을, 소비자·이용자 분과는 오픈마켓과 배달앱 등 업종별로 기업, 입점업체·소비자·종사자단체 등이 참여하는 회의체를 구성해 자율 규제 방안을 논의하자는 의견이 제시됐다. 전반적인 종사자·입점업체·소비자 보호 이슈를 다룰 필요성도 제기돼 관련 협회·단체, 기업 등이 주기적으로 모여 현안을 논의하기로 했다.
데이터·AI 분과는 데이터·AI의 투명성·신뢰성 확보, 개인정보 보호 등과 관련해 정부·기업·전문가 등이 협업해 세부적인 자율 규제 방안을 도출해나가자는 의견이 제시됐다. ESG 분과는 정부·기업·전문가 등이 협업해 플랫폼이 사회가치 창출에 기여하고, 자율적으로 거버넌스를 개선해나갈 수 있도록 다양한 방안을 모색해 나가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공정위는 자율 규제를 적극 지원하겠다는 입장을 수차례 밝혔다.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은 9월 취임 후 첫 행보로 배달의민족, 요기요, 쿠팡이츠 등 배달앱 3사 대표를 만났다. 한 위원장은 “자율 규제가 플랫폼의 혁신 성장을 유지하면서 거래 당사자 간 상충하는 이해관계를 조성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안이 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지난달 말에는 중기중앙회와 소상공인연합회, 대한숙박업중앙회, 한국외식업중앙회, 전국가맹점주협의회, 한국대리운전총연합회 등이 기자회견을 갖고 “온플법 처리가 늦어질수록 중소상공인 피해는 누적된다”며 법안 처리를 주문했다. 민주노총과 참여연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등 시민단체들도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를 위한 전국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정부가 온라인 플랫폼 기업의 불공정 거래 행위를 제재하지 않고 자율에 맡기는 것은 무책임한 방관”이라며 온플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반면, 플랫폼 업계는 지속적으로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온플법이 플랫폼 업계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데다 중복 규제라는 입장이다.
한국인터넷기업협회, 한국핀테크산업협회 등이 모인 협의체인 디지털경제연합은 온라인 플랫폼 규제 법안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일각에서는 규제 공백으로 플랫폼법이 필요하다는 근거 없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며 “하지만 온라인 플랫폼은 공정거래법, 약관규제법, 전자상거래법, 대규모유통업법, 개인정보보호법 등 오프라인 시장보다 더 많은 규제로 상시 관리·감독을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경기 불황의 우려가 높은 상황에서 새로운 규제가 등장하면 업계에 대한 투자가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국민의힘이 온플법 논의에 적극 나설지는 미지수다. 국민의힘은 카카오 사태 후 10월 19일 열린 당정협의회 이후 “온라인 플랫폼에 기반을 둔 기업들이 문어발식 확장만 하다가 소비자 보호에 소홀히 한 것이 문제”라며 “소비자 보호를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규제에는 여전히 소극적인 입장이다. 양금희 수석대변인도 “독과점 피해 등을 들여다볼 수는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민간의 경제 영역을 해치거나 일종의 규제를 다시 만드는 것은 안 된다”고 밝혔다.
애플이 아이폰에서 애플 앱스토어만 사용하도록 하는 것이나 구글이 안드로이드폰에 사전 설치된 앱을 삭제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 등이 포함된다. 또, 플랫폼을 사용하는 업체가 제공했거나 이들의 활동을 통해 얻는 데이터를 플랫폼이 활용하는 것도 금지된다. 규제 대상은 이용자 수를 중심으로 한다. 그동안 시장점유율 기준에서 감시 대상 기업을 정한 것과 달리 온라인 플랫폼의 특성을 고려한 것이다. 유럽연합은 구글과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 등 10~15개 기업이 규제 대상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법안은 내년 4월부터 시행 예정이다.
터키에서도 7월 전자상거래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전자상거래 플랫폼이 과도한 할인과 마케팅으로 시장점유율을 높이는 것을 막기 위해 광고와 마케팅 비용을 제한하는 내용이 담겼다. 플랫폼이 자체 상품을 만들어 판매하는 것도 제한된다. 판매자와 소비자의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는 플랫폼이 중개자에 판매자 역할까지 동시에 하는 것이 불공정하다는 판단에서 나온 내용이다.
스페인에서는 지난해 5월 ‘라이더법’이 통과됐다. 배달 라이더를 프리랜서가 아닌 고용 노동자로 인정하고 배달 콜 배치와 라이더 평가 방식 등 근로 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알고리즘을 라이더들에게 알리도록 의무화하는 내용 등이 포함됐다. 일본에서는 플랫폼과 입점 업체들의 거래·계약 조건 등의 정보 제공을 의무화하는 내용의 디지털 플랫폼 거래 투명화법이 2020년 통과된 바 있다.
구글, 애플 등 빅테크 기업의 본산지인 미국도 최근 들어 플랫폼의 반독점을 위한 입법 노력이 시작됐다. 지난해 6월 미 하원에서는 ‘플랫폼 반독점 패키지 5대 법안’이 발의됐다. 규제 대상 플랫폼이 다른 기업을 인수·합병할 때 해당 인수 거래가 경쟁을 제한하지 않는다는 점을 스스로 입증하도록 했다. 거대 플랫폼 기업들이 잠재적 경쟁자를 선제적으로 인수해 시장 지배력을 유지해온 것을 겨냥한 것이다. 자사 서비스나 제품 우대도 금지하도록 하고 있다. 데이터 상호운용성, 이동성 보장 의무 등도 법안에 담겼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11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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