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Wall] 무분별한 볼트 남발은 그만! 날것 그대로의 암벽을 위해
2014년 우리(크랙등반이 좋은 사람들)는 저승봉을 개척한 뒤 많은 등반가들이 저승봉을 등반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예상과는 완전히 달랐다. 저승봉이라는 이름처럼 "등반하다가 저승갈 뻔했네", "어프로치 하다가 죽을 뻔했네", "볼트가 얼마 없어서 겁나서 등반 못 하겠네" "벽 각도가 세서 좌절했네" 등등 저승봉은 살벌하면서도 위험한 곳이라고 소문이 고약하게 났다. 참고로 저승봉은 우리가 생각하는 이승 저승이 아니고, 돼지 저豬, 오를 승昇자를 쓴다. 산에 멧돼지가 많아서 붙인 이름이다.
트래드 클라이밍은 등반자가 확보물을 직접 설치하며 오르는 등반을 말하며, 스포츠클라이밍이 생기면서 이를 구분하기 위한 말로 생겼다. 전통적인 등반, 기존 등반을 뜻한다. 또 멀티피치라고 해서 모두 트래드 클라이밍 루트는 아니다. 볼트를 촘촘히 박아놓은 자연바위는 위험성을 제거했기에 스포츠클라이밍 루트라고 정의한다. 결국 바위에서 볼트 개수와 간격이 트래드 루트와 스포츠 루트를 나누는 기준이 되는 것이다. 스포츠클라이밍은 위험을 줄이고 동작의 어려움을 추구하는 등반으로, 볼트로만 이루어진 루트를 말한다.
저승봉은 트래드 클라이밍 대상지로 확보물 설치가 가능한 곳에는 볼트를 설치하지 않았다. 볼트는 확보물 설치가 잘 안 되는 곳이나 추락의 위험이 있는 곳에만 설치했다. 그래서 볼트에 익숙한 등반가들은 저승봉 등반을 부담스러워하거나 두려워했다. 등반의 모험이 사라져 가는 한국의 등반문화를 안타깝게 생각한 우리들은 등반 문화를 보존하고 전승하고자 트래드 클라이밍을 알릴 수 있는 문화를 기획하고 이에 맞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기부행사로 '트래드 클라이밍 페스티벌'을 개최했다.
2017년 1회를 시작으로 2019년 3회까지 행사를 가져오다 코로나 때문에 2년의 공백이 생겼고, 올해 9월 3~4일, 제4회 트래드 클라이밍 페스티벌을 열었다. 많은 관심과 호응으로 접수 시작 5분도 안 되어 마감이 됐을 만큼 인기가 높았다.
주민들이 등반가로 인해 생활의 불편함 느끼지 않게 해야
트래드 클라이밍 페스티벌은 단지 크랙 등반기술을 알리기 위한 행사로 알고 있는 사람도 있지만, 사실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등반 목적이 오로지 오르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닌 등반을 대하는 태도에 가치를 두고 함께 고민하고 해결 방법을 찾아 올바른 등반 문화를 만들자는 것이다.
지금 전국의 등반지는 무분별한 볼팅으로 인해 역사적 가치가 있는 클래식 루트들이 위기를 맞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한국의 벽은 확보물 설치가 가능한 곳까지 편리성 때문에 볼트가 무분별하게 설치되고 있다. 이는 스포츠 루트로의 변질을 넘어서 한 시대의 등반정신이 배어 있는 역사성마저 훼손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인위적으로 암벽을 훼손(치핑, 닥터링)해 등반가의 도전정신과 창의성을 없애는 행위도 늘어나고 있다.
정말 심각한 것은 기초질서조차 지키지 않는 사람들로 인해 토지 소유자나 지역주민들로부터 암장이 폐쇄되는 안타까운 현실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등반지를 지키는 일이 거창하거나 실천하기 어려운 것은 절대 아니다. 자신의 능력에 맞는 루트 선택하기, 쓰레기 되가져가기, 야영장 이용하기, 소란 피우지 않기, 지정된 주차장 이용하기, 볼일보고 뒤처리 깔끔하게 하기, 특히 안전사고가 났을 때 책임은 본인한테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또 지역주민들이 등반가로 인해 생활의 불편함을 느끼지 않게 해야 한다.
이에 더해 지역경제에 득이 될 수 있도록 등반지 근처의 마트, 식당, 숙박시설을 이용해 지역주민들에게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어야 서로 상생할 수 있다. 결론을 말하면 등반지는 누구의 소유도 아니며 우리 모두의 노력과 책임으로 보존되는 것이다. 자연과 사람을 존중하고,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 등반가와 함께 공유해야 한다. 이번 행사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행사에 참여한 50여 명의 등반가들 모두 우리가 생각하는 것들에 깊이 공감했을 것이라고 여긴다.
월간산 10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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