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어송라이터 지셀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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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션으로 경로를 튼 이력이 신선하네요.
일본에서 대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에 돌아와 경영학 공부를 더했어요.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마치고, 박사과정으로 이어지려던 참에 선뜻 뛰어들 자신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학업 휴식기를 가지며 프로듀서 매니지먼트 회사에서 일을 시작했어요. 음악가들이 있는 회사에서 제 전공을 살려 마케팅 관련 일을 했어요.
프로듀서 레이블로 들어간 건 운명이었네요.
일반 아티스트를 관리하는 레이블과 달리 유통도 연관된 회사여서 음악 만드는 전체 과정을 세세하게 알 수 있었어요. 공 트랙부터 멜로디를 얹고 데모를 만든 뒤 판매하는 과정까지 터득할 수 있었죠. ‘나도 톱 라인으로는 자신 있는데’라는 생각을 계속했어요. 근데 제 친오빠는 극구 반대하더라고요.
왜요?
오빠는 고등학교 때부터 밴드를 했고 지금까지도 음악에만 몰두해왔어요. ‘맥스 송’이라는 프로듀서거든요. 오빠가 지금이야 안정기고 활발하게 활동하지만 힘든 시간을 오래 보냈어요. 그걸 제가 겪는 게 싫었던 거죠. 공부만 곧잘 하던 제가 갑자기 진로를 트니까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나 봐요.
지셀 입장에서도 뮤지션의 길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겠어요.
함께 일했던 프로듀서는 발라드 가수 혹은 아이돌이나 대중가수들의 곡을 프로듀싱했어요. 그런데 제가 만든 곡은 너무 어둡거나 비주류 같더라고요. 저는 대중성을 고려하지만 추구하는 감성은 대중의 감성과 확연히 다르거든요. 대중적인 곡을 만들려면 기승전결이 확고해야 하는데 저는 기승전결보다는 곡의 분위기를 이끌어가는 걸 좋아해요. 그 간극을 좁혀야 하는 게 어려웠죠.
R&B 장르로 언제 빠지게 됐어요?
음악을 늦게 시작했지만 어렸을 때부터 너무 좋아했어요. 초등학교 때 미국에서 2년 정도 살았거든요. 당시 어느 파티를 가든 흥행했던 아티스트는 ‘에미넴’이었어요. ‘애프터 매스’라는 크루의 ‘피프티 센트’나 ‘스눕 독’도 좋아했어요. 2000년대 초반 힙합에 빠졌었죠. 힙합을 듣다 보니 자연스럽게 R&B 장르로 갈래를 뻗었어요. 당시 힙합 음악 피처링 아티스트는 대부분 여성 R&B 뮤지션이었거든요.
가사의 소재는 어디서 얻는 편이죠?
대화죠. 친구들과 대화하면 다양한 주제를 발굴할 수 있거든요. 대화가 참 웃긴 게, 헤어짐에 대해 써야지 하고 마음먹고 친구들과 헤어짐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면 여러 가지 경험을 접하면서 부수적인 아이디어가 많이 떠오르더라고요. 대화로 콘셉트를 잡는 경우도 많고, 이별 노래는 제 경험을 떠올려 과장하거나 픽션으로 각색해서 가사를 써요.
가사를 쓸 때 반드시 잊지 않아야 할 기조는 뭔가요?
어렸을 때 노래 들으면서 좋은 노래의 기준으로 생각한 것 중 하나가 가사였어요. 멜로디도 물론이지만 내가 공감할 수 있냐 없냐가 중요했죠. 헤어짐에 관한 곡이 정말 내 이야기 같다면 더 와닿을 수밖에 없으니까요. 인간이라면 생각과 감정이 비슷할 테니 제가 겪었던 이별 중 사람들이 가장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뭘까 자주 고민해요. 예전에 창모 씨와 함께 작업했던 ‘LANGUAGE’에 대해 ‘이거 진짜 내 노래 같다’는 피드백을 많이 들었거든요. 대부분의 커플이 남녀 간의 언어 차이를 겪잖아요. 여자가 삐졌을 때 ‘왜 그래’ 물으면 여자는 항상 ‘아니야’ 하고 넘어가잖아요. 그러한 내용은 많은 사람이 공감할 것 같았고 예상 적중했죠. 그런 식으로 일상적인 부분을 살리려는 편이에요.
큰 공감을 자아내는 주제가 사랑과 이별이죠.
맞아요. 뮤지션은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쓸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누구나 사랑을 하니까요. 저는 특히 헤어진 관계에 대해 자주 다뤄요. 그렇다고 제가 엄청난 이별을 겪은 건 아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별했을 때 느끼는 힘들고 외로운 감정에 쉽게 공감하는 것 같아요. 요즘은 인생에 대한 개인적인 고민을 음악적으로 풀어내려고 해요.
어떤 내용이죠?
아마 다음 달 발매될 텐데요. 곡을 구성하던 초반에는 코로나가 터지고 활동이 모두 중단된 암흑 같은 상황이었죠. 누구나 암흑 같다고 느낄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더라고요. SNS를 보면 누구는 이런 상황을 활용해서 열심히 즐기며 살고, 또 누군가는 되게 행복해 보이더라고요. 그 작은 화면이 전부는 아니겠지만 전부인 것처럼 자신과 비교하며 더 암울해졌고, 스스로를 다그쳤어요. 그러니 심적으로 힘들었죠. 그런 상황에서 제 자신에게 쓴 편지 같은 노래예요. 세상이 변했고 내가 뒤처지는 것 같아도 변하지 말고 그 모습 그대로 있자는 내용을 담고 있어요.
지셀다운 음악은 어떤 음악일까요?
되게 어려운 질문이네요. 항상 노력하는 부분이긴 한데요, 슬픈 이야기를 감정적이기보단 절제된 상태로 말하고 싶어요. 말투나 표현, 곡 안에서 짓고 있는 표정 등이 절제된 거죠. 살짝 차갑고 절제됐지만 그 안에 약간의 씁쓸함이라고 해야 할까요.
절제하면 더욱 세련되어지죠.
맞아요. ‘나 너무 슬퍼’ 이것보다는 ‘내 기분이 지금 되게 흐린 상태야’라고 섬세하게 읊조리듯 표현하려 하죠.
한 곡 작업하는 데 시간이 얼마나 소요되나요?
곡마다 천차만별인데 어떤 곡은 20분 안에 버스부터 후렴까지 완성되기도 해요. 스케치 후에 녹음만 하면 데모가 뚝딱 만들어지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에요. 하지만 가끔 1년간 작업하는 곡도 있죠. 1년 동안 붙들고 있는데도 왠지 아쉽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 저는 작업이 빠른 스타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멜로디는 비교적 빨리 만들어내지만 가사 쓰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거든요. 기본 한 달은 고민해요.
가장 빨리 만들었던 곡은요?
‘GASA(가사)’라는 곡이에요. 그 곡은 1~2주 정도 걸렸어요. 테마가 빨리 떠오른 덕분이기도 하지만 피처링한 ‘THAMA(따마)’님도 빨리 작업해주셔서 짧은 시간 내 완성했죠.
오래 붙잡았던 곡도 궁금해요.
‘Secret’이 꽤 오래 걸렸어요. 그 곡은 버전도 많아요. 계속 뒤엎어서 새로운 버전을 찾은 노래거든요.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몇 개월은 족히 걸렸던 것 같아요. 후렴이 나쁘지 않은데 더 좋은 걸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더라고요. 마지막에는 ‘챈슬러’ 선배께 도움을 요청했어요. 도저히 아이디어가 안 떠오르는데 후렴 부분을 함께 써보지 않겠냐고 제안해서 지금의 후렴을 완성했죠. 너무 혼자 하려다 보면 스스로 그 테마 안에 갇혀버려요. 가끔은 다른 작곡가들과 함께 작업하며 서로에게 영감을 주고받는 게 훨씬 창의적이고 좋은 방법인 것 같아요.
R&B 외에 새로운 장르로 뛰어들고 싶은 욕구도 느껴요?
그 생각은 항상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대중적인 어쿠스틱 노래들도 시작하려 준비 중이고, 장르적인 면에서는 굉장히 열려 있죠. 비슷한 장르보단 앨범이 나올 때마다 새로움을 추가하고 싶은 욕심이 커서 늘 실현하려 노력하죠. 물론 어렵긴 하지만요.
새로운 장르에서도 잊지 않고 고수해야 할 점이 있다면요?
제가 코러스 하모니에 정말 심혈을 기울이거든요. 코러스나 하모니, 악기를 꽉꽉 채우지 않은 미니멀한 음악을 좋아하는 분들도 많잖아요. 저 역시도 좋아하지만, 저는 하모니는 포기 못하겠더라고요. 커버곡 작업할 때도 제 스타일대로 하모니를 촘촘히 쌓아요. 강조하고 싶은 부분에 패드도 많이 추가하고, 멜로디에 하모니로 화려함을 주는 게 저만의 스타일인 것 같아요.
가가장 가까운 시일 내에 이뤄야 할 건 뭘까요?
작년 11월 발표한 싱글 앨범 <GASA>가 제가 오롯이 만든 마지막 앨범이었어요. 벌써 1년 전이죠. 앨범을 더 선보이고 싶고, 공백이 생기는 걸 원하지 않아요. 새 출발하는 느낌으로 ‘허슬 모드’로 부지런히 준비하려고요. 단기적인 목표는 그렇습니다. 원하는 프로젝트를 시기별로 준비해서 보여드리는 것. 거기에 맞춰 변화하는 이미지도 보여드리고 싶어요.
장기적인 목표는요?
해외 활동이에요. 아직 해외 투어 경험이 없어서 해보고 싶고, 해외의 다양한 아티스트들과 협업하는 것도 큰 바람이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열심히 내달리려고요.
JISELLE’S PICK 3!
뮤지션 삶에 동기가 된 앨범 즈네 아이코
지셀이 음악을 시작할 때부터 한결같이 사랑한 아티스트인 즈네 아이코는 미국의 싱어송 라이터다. <Sail Out>은 지셀의 음악적 방향에 큰 영향을 준 앨범으로, 이별로 인한 상처가 묵직하게 표현되어 있다.
최근 푹 빠진 아티스트 카일 디온
가성과 반가성을 넘나들며 고음을 올리는 톤을 구사하는 뮤지션이다. 유연하고 자유분방한 리듬과 그루브를 구사한다. 그의 곡은 담백하기보단 기교가 넘치며 화려한 장치들이 심어져 있어 신선하고 개성 만점이다.
최장시간이 걸린 곡 SECRET (Feat. BewhY)
지셀이 후렴구를 수없이 뒤엎었던 곡이다. 그래서 버전도 많다. 몇 개월은 족히 걸린 이 곡은 연인과의 관계를 타인에게 감추고 싶으면서도 자랑하고 싶은 양적인 감정을 솔직하게 그리고 있다.
Editor : 정소진 | Photography : 안승현 | Stylist : 이필성 | Hair : 남다은(오버마스) | Make-up : 왕빛나(오버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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