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오래 기억하면 좋겠다"
할머니가 올해로 89세를 맞으셨다. 할머니께 전화를 드려 생신 축하드린다고 인사하고 늘 하던 대로 사랑한다고 했다. "나도 사랑해."라는 할머니 목소리를 듣고 전화를 끊는데, 갑자기 영화 '코코'(2017)를 다시 보고 싶어졌다. '코코'에도 할머니 한 분이 나오신다. 주인공 미구엘이 사랑하는 증조 할머니 코코.
영화는 멕시코 최대의 명절인 망자의 날에서 영감을 얻었다. 망자의 날은 10월 31일부터 11월 2일까지로 멕시코인들은 이 기간에 죽은 가족과 친지들을 추모한다. '코코'에도 미구엘의 돌아가신 조상들 사진을 둔 제단이 나온다. 제단을 주황색 꽃잎으로 장식하고 양초, 술병, 설탕으로 만든 해골 인형 등을 두며 죽은 이들의 명복을 빈다고 한다.
미구엘 집의 제단 맨 꼭대기에는 고조모 이멜다의 사진이 있는데, 할머니 옆의 고조부 사진이 찢겨 있다. 고조 할아버지는 음악을 하겠다고 가족을 버리고 떠나서 이멜다 할머니가 홀로 가족을 건사했기 때문이다. 미구엘은 음악에 빠져 기타리스트를 꿈꾸지만, 미구엘 가족에게 음악은 금기어다. 어른들 몰래 다락방에서 혼자 기타를 연주하는 미구엘은 사진 속 고조 할아버지의 기타가 멕시코의 전설적인 기타리스트 에르네스토의 것이라는 걸 알게 된다. 망자의 날, 에르네스토의 묘지에서 그의 기타에 손을 댄 미구엘은 죽은 자들의 세상으로 넘어가게 된다.
해가 뜨기 전에 망자들의 세상에서 죽은 가족의 축복을 받아야 이승으로 돌아갈 수 있다. 이승으로 돌아가되 음악은 하지 말라는 이멜다 할머니의 축복을 미구엘은 받아들이지 못한다. 미구엘은 저승에서 우연히 만난 헥터와 함께 자신의 우상인 기타리스트 에르네스토를 찾아가기로 한다. 산 자들의 세상으로 돌아가서 음악을 하라는 축복을 받기 위해서.
우여곡절 끝에 미구엘은 이승으로 돌아온다. 밤새 없어졌다가 아침이 되어서 나타난 아들에게 아빠가 말한다. "널 잃어버린 줄 알았어." "죄송해요, 아빠." 엄마가 모두를 안으면서 말한다. "이젠 다 함께 있잖니. 그럼 된 거야."
이들의 짧은 대화에서 이태원 참사가 떠올랐다. 가족에게 가장 중요한 건 뭘까. 다 함께 있는 것, 그게 전부 아닐까. 죽지 않고 살아서 서로 사랑하는 것. 서로의 곁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
올해 89세가 되신 우리 할머니가 언젠가 자연사하신다고 해도 나는 슬플 것이다. 아빠가 65세에 암으로 돌아가셨을 때도 말로 다할 수 없이 힘들었다. 먼저 이 세상에 온 가족이 먼저 이승을 떠나도 견디기 힘든 것이 죽음이다. 왜 생때같은 젊은이들을 사고로 잃어야 하나. 왜 유족들이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아픔을 겪어야 하나.
수학여행을 갔다가 무사히 집에 돌아오기를(세월호), 외출하러 나갔다가 안전하게 집에 돌아오기를(이태원) 간절히 바라게 되는 사회는 정상이 아니다. 젊은이들이 살아서 하루하루 별 탈 없는 일상을 영위하는 것이 대단히 운 좋은 일로 여겨져서는 안 된다. 왜 이런 참사가 벌어졌는지 사실 관계를 명명백백히 밝히고, 책임을 분명히 규명하기 바란다.
영화 속에서 진짜 죽음은 저승에서 찾아온다. 죽은 이를 기억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 아무도 없을 때, 그 사람은 저승에서도 사라진다. 그래서 망자 헥터는 '기억해줘(Remember me)'라는 노래를 부른다.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어른들이 오래 기억하면 좋겠다.
세월호 이후로 '잊지 않을게'를 외친 사람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또 이런 일이 벌어져 참담하다. 아이를 둔 양육자로서 이 무서운 현실을 직시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이제 왜 이런 사회를 만들었냐고 손가락질할 어른이 없는, 빼도 박도 못하는 기성세대다. 부끄러운 마음으로 나부터 잊지 않고 기억하려고 한다. 안전한 사회를 다시 세우는 과정을, 어른들이 모두 두 눈을 부릅뜨고 함께 하면 좋겠다.
*칼럼니스트 최가을은 구 난임인, 현 남매 쌍둥이를 둔 워킹맘이다. 아이들을 재우고 휴대전화로 영화를 본다. 난임 고군분투기 「결혼하면 애는 그냥 생기는 줄 알았는데」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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