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민준의 골프세상] 고진영의 기권과 손톱 밑 가시
[골프한국] 지난 10월 20~23일 강원도 원주시 오크밸리CC에서 열린 LPGA투어 BMW 레이디스 챔피언십에서 고진영(27)이 1~2 라운드 합계 15오버파를 기록하고 기권했다. 천하의 고진영이 기권한 것도 이례적이지만 그가 기록한 스코어도 비정상적이다. LPGA투어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고진영이 부상으로 기권했다고만 발표해 그의 부상이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인지는 알 수 없다.
지난 8월 캐나다에서 열린 CP 여자오픈 이후 손목 부상 치료를 이유로 대회 출전을 중단하고 재충전의 시간을 보내다 두 달 만에 복귀한 그로선 '여왕의 귀환'을 실현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고진영은 일본에서 열리는 토토 재팬클래식(11월 3~6일)과 미국 플로리다에서 열리는 펠리칸 위민스 챔피언십(11~14일)을 건너뛰고 플로리다 네이플스 티뷰론GC에서 열리는 시즌 마지막 대회인 CME그룹 투어 챔피언십(17~20일) 출전을 목표로 부상 치료에 집중한다는 일정을 짜놓고 있다. CME그룹 투어 챔피언십은 고진영이 디펜딩 챔피언이라 참가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다.
손목 부상의 여파로 고진영은 9개월간 지켜온 여자골프 세계랭킹 1위 자리도 아타야 티티쿤(19·태국)에게 내줬다.
1일 발표된 롤렉스 여자골프 세계랭킹에서 평균 포인트 7.09점으로 아타야 티티쿤(평균 포인트 7.13)에게 1위 자리를 물려주고 2위로 내려왔다. 지난 1월 넬리 코다(미국)를 제치고 세계랭킹 1위로 올라선 지 9개월 만이다. 2월생으로 아직 만 20세가 안 된 티티쿤은 리디아 고(뉴질랜드)에 이어 10대에 세계랭킹 1위를 차지한 두 번째 선수가 됐다. 그 밖의 한국선수 랭킹은 전인지(28) 8위, 김효주(27) 10위, 김세영(29)이 13위다.
골프선수에게 최악의 적은 부상이다. 승승장구하다가도 몸에 이상이 생기면 하루아침에 추락하고 종내에는 선수 생활마저 포기할 수밖에 없다.
타이거 우즈가 위대한 선수로 평가받는 것은 '움직이는 병동'이라 할 만큼 많은 부상에도 불구하고 여러 차례 성공적인 '황제의 귀환'을 실현했기 때문이다. 치명적인 교통사고를 당한 뒤 큰 수술을 받고 오랜 재활기간을 보낸 뒤 골프코스로 돌아온 그에게 세계 골프팬들이 환호하는 것은 그의 불굴의 의지를 높이 평가하기 때문이다.
치명적 부상만이 골퍼를 괴롭히는 것은 아니다. 경기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 같은 아주 사소한 부상이나 통증도 경기 리듬을 깨뜨리기는 마찬가지다.
새끼 발가락의 통증, 손톱 밑 가시, 등에 난 작은 종기, 사타구니의 가려움 등은 큰 부상이라 할 수 없지만 경기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는 심하고도 집요하다.
최근 왼손등을 뜨거운 물에 살짝 대이고 나서 라운드하며 '손톱 및 가시'의 위력을 실감했다. 밴드를 붙이고 장갑을 끼기 때문에 스윙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실제 스윙할 때 전해지는 가벼운 통증은 온몸의 움직임에 영향을 미쳤다. 마음으로는 별것 아니라고 하면서도 미세하게 전해지는 통증이 동작을 지배하는 데는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그날의 내 스코어는 90대 후반으로 내려앉았다. 30여년 이래 처음 겪는 일이었다.
선수들을 괴롭히는 컨디션의 난조도 결국 눈에 보일 듯 말 듯 한 작은 부상이나 이상이 아닐까 생각된다. 고진영의 스윙을 보면 겉으로는 크게 고장 난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자신이 느끼는 감각은 곁에서 보는 것과는 다르다.
하찮아 뵈는 작은 부상이나 통증을 그대로 방치했다간 어떤 파국을 맞을지 모른다는 사실을 명심했으면 싶다.
*칼럼니스트 방민준: 서울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한국일보에 입사해 30여 년간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30대 후반 골프와 조우, 밀림 같은 골프의 무궁무진한 세계를 탐험하며 다양한 골프 책을 집필했다. 그에게 골프와 얽힌 세월은 구도의 길이자 인생을 관통하는 철학을 찾는 항해로 인식된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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