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오늘은 좀 추운 사랑도 좋아』 문정희 “그래 이대로 절뚝이며 살아라, 미완성의 완성이여” [김용출의 문학삼매경]

김용출 2022. 11. 2.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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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 간 써온 시 100편을 출판사에 넘긴 뒤에야 깨달았다. 이전과 다른 시세계를 보여주기 위해서 부단히 애를 썼음에도, 이전 시집과 상당히 유사하고 반복하고 있다는 걸. 공간을 한번 바꿔보면 새로운 언어가 태어나지 않을까. 코로나 팬데믹이 한창이었지만 지난해 여름 미국 캘리포니아로 건너가서 3개월을 머물며 시를 고치고 또 고쳤다.

그런데 시들이 오히려 망가졌다. 마치 침엽수나 활엽수를 비롯한 좋은 목재를 갖다가 불쏘시개를 만든 것처럼. 등 푸른 물고기 떼가 배 뒤집고 죽어 가듯이. 망했구나. 시인 문정희는 절망감이 몰려와서 며칠을 앓기도 했다. 귀국한 뒤에도 불안 속에 시를 고치고 또 고쳤다.
이때 우연히 헝가리 소설가 산도르 마라이(Sandor Marai)의 한 구절을 접한 뒤 비로소 마음이 편안해졌다. 아무리 아름답고 멋진 기념비를 세우더라도 얼마 뒤면 동네 개가 와서 오줌이나 싸갈겨 놓고 지나갈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시를 망가뜨린 뒤 뜨거워진 머리가 개 오줌 하나에 즐거워졌다. 이때 시가 한 편 툭, 하고 걸어 나왔다. 「망각을 위하여」였다.

“봄부터 가을까지 내가 한 일은/ 그동안 쓴 시들을 고치고 주무르다가/ 망가뜨린 일이다/ 시는 고칠수록 시로부터 도망쳤다/ 등 푸른 물고기떼 배 뒤집고 죽어 가듯이/ 생명이 빠져나갔다//… 나는 울다가 눈을 떴다/ 그래 이대로 절뚝이며 살아라/ 나 또한 헛짓하며 즐거웠다/ 나는 시들을 자유로이 놓아주었다/ 부서진 욕망, 미완의 상처에서 흐르는 피/ 불온한 생명이여/ 어쩌다 내가 기념비적인 기둥 하나를 세웠다 해도/ 얼마 후면 그 기둥 아래/ 동네 개가 오줌이나 싸놓고 지나갈 것을”(「망각을 위하여」 부문)

문정희 시인이 「망각을 위하여」를 포함해 72편의 시를 묶은 신작 시집 『오늘은 좀 추운 사랑도 좋아』(민음사)를 펴냈다. 시집 『작가의 사랑』 이후 4년 만의 신작으로, 그녀의 15번째 시집이다. 더구나 지난달 한국문학 유산의 계승과 문학활동 진흥을 주도할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국립한국문학관장에 임명되기도 했다.

「한계령을 위한 연가」와 「월포의 기억」, 「치마」, 「이별 이후」 등 주옥같은 시를 쓰면서 반세기 이상 “늘 새로 태어나기 바빠 해가 기울어 간 것도 몰랐다. 살과 뼈 들끓는 나로 시를 살았다”던 시인이지만, 이번 시집을 펴내며 맛본 좌절과 실패 속에 문득 “미완성으로 완성”이라는 새로운 경지를 깨달았다.

“화가는 그림 어디에서 붓을 멈추느냐가 중요하고, 무용가는 무대 어디에서 발을 멈추느냐가 중요합니다. 4년 만에 나온 이번 시집에선 어떤 미완성의 완성을 생각했어요. 끝없이 더 할 수 있고, 끝없이 노력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미완성이야말로 희망을 주는 단어라고 할 수 있지요.”

시력 50년이 넘는 문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무엇을 어떻게 노래했고 어떤 특징을 보여주고 있을까. 시인의 작가적 행로는 어디로 향해 가는 것일까. 문 시인을 지난달 13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시 「망각을 위하여」는 개오줌 표현을 비롯해 유머가 엿보인다.

“요즘 좋아하는 시인은 미국의 찰스 부코스키(Charles Bukowski·1920~1994)인데, 미국 서점에서 가장 도둑을 많이 맞는 시집을 펴낸 시인이라고 한다. 쌍소리도 쓰고 제멋대로 쓰는데, 매우 즐겁다. 소설가 레이몬드 카버의 산문시도 읽는데, 즐겁고 심오한 이야기에 미소를 짓게 된다. 요즘 한국의 시는 강렬한 주제 의식 때문에 너무 비장하고 서정시의 경우 너무 부드럽고 얇아서 읽자마자 내면을 들키는 경우가 많은데, 좀 더 신나고 즐거운 시가 많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시 「도착」은 벌레를 먹고 땅에 나뒹구는 것조차 긍정하는 삶의 어떤 경지를 보여주는 시라고 할 수 있겠다. 슬픈 것도 아름답게 볼 줄 알고, 지는 것조차 괜찮다고 끄덕일 줄 아는.

“이름도 무엇도 없는 역에 도착했어/ 되는 일보다 안 되는 일이 더 많았지만// 아무것도 아니면 어때/ 지는 것도 괜찮아/ 지는 법을 알았잖아/ 슬픈 것도 아름다워/ 내던지는 것도 그윽해// 하늘이 보내 준 순간의 열매들/ 아무렇게나 매달린 이파리들의 자유/ 벌레 먹어/ 땅에 나뒹구는 떫고 이지러진/ 이대로/ 눈물 나게 좋아/ 이름도 무엇도 없는 역/ 여기 도착했어”(「도착」 전문)

―이 시 역시 미완성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것 같다. 툭툭 내뱉는 말투도 재밌고.

“옛날 우리 할머니나 어머니들이 먼 산을 바라보면서 편하게 얘기하듯 툭툭 뱉는 어투를 사용했다. 결혼이나 사랑, 성공, 행복 등 그 동안 이래야 된다는 생각이 너무 많았다. 예를 들어, 결혼이란 행복이나 사랑만으로 채워지는 게 아니다. 사랑과 행복만 있는 결혼은 신혼 때 잠깐뿐이고 나머지 장구한 세월은 미완성으로 이뤄진다. 희생, 거짓, 후회, 이런 것들이 합쳐져야 진정한 결혼이 된다. 행복한 것만 있는 게 아니라 눈물도 있고, 콧물도 있고, 지문이 다 닳아빠진 손톱도 있는 게 행복이다. 이것저것 합쳐져야 밧줄이 굵어진다. 미완성의 완성이지만, 여기까지 왔다는 것 자체가 굉장한 성공이다. 부족하고 미흡하고 부끄러웠지만, 아니야 여기 왔어, 괜찮은 거야, 하는 느낌이다. 그런 것들에 대한 도착이다.”

시 「떠날 때」 역시 삶의 마지막 순간으로 본다면 젊은 시절의 여러 모습이 첫눈 같은 신비일 수 있다는 걸 깨닫게 해준다.

“떠나는 순간에도/ 나 모르는 것투성이일까/ 숨 쉬고 산 것/ 그게 다일까/ 낮은 파도이고 밤은 조약돌인 것을/ 간신히 알까/ 좋아하는 것보다/ 부러워하는 것을 가지려고 했던 것/ 무엇이 되어야 한다며/ 머리 쥐어뜯으며 괴로워했던 순간을/ 굳이 어리석었다고 말하지는 않겠지만/ 하지만 모르는 것투성이/ 그것이 얼마나 희망이었는지/ 그것이 얼마나 첫눈 같은 신비였는지/ 너와 나 사이의 악기였는지를/ 떠날 때 그때 간신히/ 소스라치듯이 알기는 할까”(「떠날 때」 전문)
―삶의 마지막 순간이라는 시점에서 젊을 반추하는 게 인상적이다.

“인간은 아마 죽는 순간까지 그냥 가다가 끝날 것이다. 미완성의 완성을 자꾸 이야기했는데, 떠나는 순간이야말로 바로 인생의 완성이다. 어떤 연애가 떠날 때도 거기까지의 완성이고, 어떤 시련도 그럴 것이다. 돈 트라이, 너무 애쓰지 마라가 찰스 부코스키 시인의 묘비명이다.(지금은 좋아하는 것과 부러워하는 것 가운데 무엇을 추구하는지) 둘 다 추구한다. 늙어서 많이 비웠다, 는 말 아직은 동의 못한다. 많이 개안한 것처럼, 많이 비워버린 것처럼, 빈 마음처럼, 하는 것은 노(아니다). 다만 젊은 날에 비해서 많이 달라졌다. 지금은 더 비워질까 봐 걱정이다. 옛날에는 시를 썼기 때문에 놓쳐버린 게 보였지만, 지금은 시가, 내가 가진 게 더 좋다. 젊을 때 세속적인 건 아니야, 라고 했지만 그것 역시 지금 그렇지 않다.”

시 「눈송이 당신」은 그의 대표시 「한계령을 위한 연가」만큼은 아니지만, 차가우면서도 은근히 뜨거운 연애시다. 사랑에 눈이 멀면 추운 사랑조차 좋을 수 있다는. 그리하여 깊은 땅속으로 녹아들게 된다는.

“처음 만났는데/ 왜 이리 반갑지요/ 눈송이 당신/ 처음 만져보는데/ 무슨 사랑이 이리 추운가요/ 하지만 오늘은 좀 추운 사랑도 좋아요/ 하늘이 쓴 위험한 경고문 같아요/ 발자국도 없이 내 곁에 온/ 하늘의 숨결/ 눈송이 당신/ 슬며시 당신을 좀 먹고 싶어요/ 당신의 눈부심을/ 당신의 차가움을 혀로 핥고 싶어요/ 이윽고 당신은 눈물과 함께/ 깊은 땅속으로 녹아들고 싶어요”(「눈송이 당신」 전문)

―「눈송이 당신」의 시구에서 시집 제목이 나왔는데.

“이 시를 좋다고 하는 사람이 많다. 시집 제목이 나와서 더 주목도가 높아졌나 싶다. 남이 보면 평범하지만, 사랑의 눈을 뜨면 갑자기 섬뜩하다든가 나중엔 뜨거워지기도 한다. 눈송이에 혀도 내밀어보고, 먹고 싶기도 하고, 만져도 보고.... 눈송이처럼 소스라치는 감수성에 화들짝 놀라면서도 좋다. 순간순간 깨어나는 것이고, 목숨 걸고 같이 땅에 숨기까지 하지 않느냐. 이런 감수성이 없어지면 안 된다. 삶이 이다지도 짧고 빠른 줄 몰랐다. 강도가 어느 날 밤에 와서 홀랑 집어가 버린 느낌이다. 어쩌면 이렇게 빠를 수가 있나.”

시집에는 「나 잘 있니」나 「나의 검투사」, 「시인의 장례식」, 「예술가와 상」 등 시나 시인을 노래한 시들도 적지 않다. 「망한 사랑 노래」는 그 가운데 두드러진다.

“요즘 내겐 슬픔이 없어/ 무엇으로 사랑을 하고 시를 쓰지?/ 슬픔? 그 귀한 것이 남아 있을 리 없지/ 창가에 걸어 두고 흐린 달처럼/ 조금씩 흐느끼며 살려고 했는데/ 슬픔이 더 이상 나를 안아주질 않아/ 멍할 뿐이야/ 행복도 불행도 아니야/ 서양 사람처럼 어깨를 으쓱 들었다 놓아/ 말하자면 폭망한 것 같아/ 슬픔은 안개 속에 서걱거리는 강철/ 그것으로 50년이나 시를 썼으니/ 내가 나를 뜯어 먹었으니/ 당연히 망하지/ 가시도 뼈도 없어/ 상처도 딱지 진지 오래/ 베레부렀어/ 손에는 허망을 쥐려다가 찔린/ 핏방울... 오오... 향기롭고 독한/ 그 이상은 나도 몰라/ 내가 본 것이 본 것이야/ 슬픔? 나를 두고 어디로 갔지?/ 아니, 슬픔이 뭐야/ 시? 망한 사랑 노래야”(「망한 사랑 노래」 전체)

―시가 조금 쓸쓸하고 슬프지만 그렇다고 무겁지도 않다.

“메뚜기가 뛰듯이 툭툭 던져버리고 싶은 어조가 좋았다. 심각한 이야기인데도, 폭망 같은 말도 쓰면서 툭툭 던져버리고 싶었다. 나의 호흡과 이 시대에 살아 있는 언어와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의미가 합치가 되면서도 유치하거나 쉽지 않도록 노력했다. 정직한 호흡으로 걷다 보니 이런 시가 나왔다.(슬픔은 작가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슬픔은 인생의 본질이고, 문학 최대의 샘물이다. 존재들은 모두 필멸하기에 태어나면서 슬픈 것 같다. 인간의 죽음이 문학의 중요한 테마이지 않느냐. 특히 시인은 죽음을 선험적으로 안에 들여와서 같이 우는 존재, 슬픔 덩어리다. 다만 슬픔도 너무 가볍게 슬픔 슬픔하면 오해하기 쉽고 오용되기 쉽다. 슬픔이 진정한 비극의 경지까지 가면 고도의 문학이 될 수 있다.”

문 시인의 이번 시집에는 「도착」, 「떠날 때」, 「어린 떠돌이」를 비롯해 많은 시에서 유랑 정신 또는 유랑의 언어가 풍성하게 담겨 있다는 점도 주목된다. 유랑은 기본적으로 현실에 대한 저항과 분노에서 출발한다는 점에서 젊은 열기, 열정이고 길 위에 있는 도정이라는 점에서 그 자체가 이미 열정적 에너지를 품고 있다. 아울러 「태풍 속의 공항」, 「타조 울음」, 「난징의 저녁」, 「탱고의 시」 등의 시에선 시를 포착하는 시적 공간이 미국을 비롯해 파리, 난징, 사우디, 쿠웨이트 사막, 부에노스아이레스 등으로 크게 확장된 점도 특징으로 꼽힐 수 있겠다.

책읽기를 좋아했던 초등학교 5학년 학생 문정희는 보성에서 광주 서석초등학교로 전학 온 직후 전국 어린이를 대상으로 열린 글짓기 대회에서 「우리 대통령 할아버지」 제하의 산문으로 당선됐다. 당선 소식이 지역신문인 『광주신문』에 실리면서, 그녀는 친구들 사이에서 일약 “글 잘 쓰는 아이”로 알려졌고, 선생으로부터 “앞으로 작가가 되면 좋겠다”는 덕담을 들었다.
아버지가 작고하면서 중학교 2학년 때 상경한 그녀는 이후에도 각종 글짓기 대회와 백일장을 휩쓸면서 늘 주목을 받았다. 특히 진명여고 3학년 시절엔 학생 신분으로 시집을 출간, 큰 화제를 낳기도 했다. 많은 백일장 수상과 이에 따른 관심과 격려는 시인 문정희의 문학 원점이 됐다.

그녀는 문학 특기자로 동국대 국문과에 입학한 뒤 미당 서정주로부터 시를 배웠다. 중고등학교 때, 시도 썼지만, 주로 소설을 썼던 그녀는 이때부터 시만 썼다. 등단보다 어떤 작품으로 등단할 것인지가 주목됐던 그녀는 대학 4학년 때 『월간문학』 신인상을 거머쥐며 시인으로 등단했다.

―은사인 서정주 시인으로부터 무엇을 배웠는지.

“시인의 정신과 자세를 배웠다. 선생은 작은 야산은 작은 재주로 쉽게 탄생할 수 있지만 큰 산맥은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씀했다. 그러면서 이 정도는 읽어야지, 라며 불경 『화엄경』을 비롯해 책을 많이 읽고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했다. 특히 정독을 강조했고, 스스로 마지막까지 공부하는 태도를 잃지 않았다. 선생 집에 찌그러진 백자 향로가 하나 있었는데, 만원도 되지 않는 골동품이었다. 내가 그 백자 향로를 좋아하자 그것을 선물로 주며 왜 좋아하느냐고 묻더라. 삐뚤어져서 좋다고 대답했더니, 너 상당하구나, 라면서 곡즉전이라, 비틀어진 것이 온전한 것이라고 설명해줬다.”

1947년 보성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란 문정희는 1969년 『월간문학』 신인상에 당선돼 등단했다. 등단 이후 『새떼』, 『혼자 무너지는 종소리』, 『아우내의 새』, 『찔레』, 『남자를 위하여』, 『오라, 거짓 사랑아』, 『모든 사랑은 첫사랑이다』, 『양귀비꽃 머리에 꽂고』, 『나는 문이다』, 『다산의 처녀』, 『응』, 『지금 장미를 따라』, 『작가의 사랑』 등 다수의 시집 및 장시집을 펴냈다. 현재 시집 14권이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등 11개 언어로 번역 출간됐다. 현대문학상, 소월시문학상, 정지용문학상, 육사시문학상, 청마문학상, 목월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특히 스웨덴 하뤼 마르틴손 재단이 수여하는 시카다상을 수상했다. 그의 대표시 가운데 하나인 「한계령을 위한 연가」의 한 대목.

“한겨울 못 잊을 사람하고/ 한계령쯤을 넘다가/ 뜻밖의 폭설을 만나고 싶다./ 뉴스는 다투어 수십 년 만의 풍요를 알리고/ 자동차들은 뒤뚱거리며/ 제 구멍들을 찾아가느라 법석이지만/ 한계령의 한계에 못 이긴 척 기꺼이 묶었으면.// 오오, 눈부신 고립/ 사방이 온통 흰 것뿐인 동화의 나라에/ 발이 아니라 운명이 묶였으면.// 이윽고 날이 어두워지면 풍요는/ 조금씩 공포로 변하고, 현실은/ 두려움의 색채를 드리우기 시작하지만/ 헬리콥터가 나타났을 때에도/ 나는 결코 손을 흔들지는 않으리./ 헬리콥터가 눈 속에 갇힌 야생조들과/ 짐승들을 위해 골고루 먹이를 뿌릴 때에도……// 시퍼렇게 살아 있는 젊은 심상을 향해/ 까아만 포탄을 뿌려 대던 헬리콥터들이/ 고라니나 꿩들의 일용할 양식을 위해/ 자비롭게 골고루 먹이를 뿌릴 때에도/ 나는 결코 옷자락을 보이지 않으리.// 아름다운 한계령에 기꺼이 묶여/ 난생처음 짧은 축복에 몸 둘 바를 모르리.”(「한계령을 위한 연가」 전문)

―시 세계를 조금 소개해 달라.

“크게 얘기한다면, 생명에 대한 예찬이나 아름다움, 슬픔을 주로 노래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생명의 소중함과 함께 생명 속의 상처나 그늘, 여성학과 페미니즘도 담았다. 꾸준히 시인의 삶을 살 수 있었다는 점에서 굉장한 행운을 가진 것 같다. 어떤 열정이나 총기, 재치 같은 걸로 조금 쓰다가 중단하지 않고, 유혹받지 않았으며, 시의 삶을 끝까지 살 수 있었다는 점에서 모국어와 우리 사회에 감사하다.”

문학평론가 최진석은 「작품 해설」에서 “그는 시를 쓰지 않고, 시를 낳았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항상 다른 시로 태어났다. 바꿔 말하면, 시를 낳을 적마다 그는 다른 시인이 되었고, 태어난 시로 인해 또다른 시인으로 변모해 왔다”(170쪽)며 이를 “감응의 산파술”이라고 명명하기도 했다.

―은유 작가는 언젠가 문 시인에 대해 “남성 중심의 언어로 짜인 가부장 사회에서 삭제당한 여성의 존엄과 목소리를 살려내는 시업에 일생을 투신한 사람”이라고 평했다.

“저는 1970년대부터 활동을 하는데, 한국 사회에서 1970년대는 전통 사회에서 산업 사회로 전환하는 기점이었다. 가정에 있던 여성들이 공장에 나가고 식모도 하고 은행원도 하고 학교 교사도 되던 시기였다. 저는 사회적 역사적 시각을 갖고 여성에 대해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남성의 상대라거나 육체적 여성이 아닌 사회학적 젠더로서 여성성을 가진 시의 등장이었다. 다만 충분히 주목을 받진 못했고, 그래서 1980년대 유학을 갔다. 미국에서 돌아왔을 땐 한국 사회가 광주민주화운동의 후폭풍에 있어서 생태시와 결합한 페미니즘 시를 쓰려고 했다.”
시인 문정희. 허정호 선임기자
―시 쓰기의 전략이나 원칙이 있다면.

“시를 쓰려고 노력하면 안 되고 시를 살아야 한다. 눈 뜰 때부터 밤늦게까지 모든 것을 시화하면서 시를 살아야 한다. 시를 억지로 쓰려고 하지 말고 시를 살아라.(시를 산다는 의미를 조금 부연 설명하면) 시는 굉장히 질투가 강한 물건이다. 다른 데 가서 조금만 딴 짓을 하고 와도 안 받아들여주고 걷어 차버린다. 항상 시 속에서 응석을 떨며 살아야 안아준다. 나도 시가 나를 걷어 찰까봐 다른 직책을 맡는다는 게 두렵다. 강림이 아니라 같이 동거해야 한다.”

문 시인은 서울여대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고려대 문창과 교수 및 동국대 석좌교수를 역임했다. 2014년부터 2015년까지 한국시인협회장을 역임했다.

―지난달 3년 임기의 국립한국문학관장으로 선임됐는데.

“제가 가장 사랑했고 저의 모든 살과 뼈를 묻고 살아왔던 한국문학의 유산을 소중하게 잘 수집하고, 세련되게 정리해, 전시 보존할 예정이다. 한국문학을 비롯해서 미래에 영감을 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나는 문학당이고 문학주의자다.”

거침없이 ‘문학당’과 ‘문학주의자’를 자처하는 문 시인의 이야기를 듣고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 삼성동 경기고 언덕길에 조성된 ‘문정희 시인길’에서 촬영을 했는데, 왜 사진 기자의 여러 부탁에도 지치지 않고 자연스런 포즈를 취해 줬는지를. 제법 긴 야외 촬영에도 왜 지친 기색 하나 보이지 않았는지를. 시인은 그 순간에도 새로운 언어로 태어나려고 몸부림치고 있었다.

‘미완성의 완성’일지라도 “살과 뼈 들끓는 나로 시를 살았다”는 그녀의 말을 듣고서야 왜 인터뷰가 내내 활기찼는지를 알 수 있었다. 시집에 수록된 시들에 대한 설명을 부탁하면, 왜 최대한 성의껏 설명해줬는지를. 왜 다양한 은유와 비유를 곁들여 머리에 쏙쏙 박히도록 이야기해는지를. 그녀는 “시가 걷어 찰까봐 두렵다”며 그 순간에도 절박하게 시를 살고 있었다.

그리하여 “존재 그 자체로 주변 온도를 덥혀놓는다”(은유)는 시인은 한국 여성 시인의 정서를 강조하면서 뚱뚱하게 찍힌 사진도 좋다고, 믿음직스러운 절구통 같은 모습도 좋다고 노래하고 있었다. “거의 매일 해외에서 이메일이 올 정도로 많은 해외 작가들을 만나고 있지만, 저는 요새 좀 뚱뚱하게 찍힌 사진이 좋습니다. 꿈쩍도 않는 믿음직스러운 절구통 같은 모습으로 세계를 돌아다녀도 흔들림이 없는 그런 모습이고 싶어요....”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사진=허정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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