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많은 평화” 윤이상 염원, 음반으로 오페라로 만난다
‘한국이 낳은 최고의 작곡가’ 윤이상(1917~1995)과 그의 작품세계가 다양한 방식으로 재조명되고 있다. 오페라 <심청>이 23년 만에 재공연되고, 관현악곡 ‘광주여 영원히’도 국내 음반으로 나온다. 국내 교향악단이 최초로 녹음한 ‘윤이상 음반’도 발매됐다. 서울시향과 광주시향, 대구오페라하우스가 전면에 나섰다. “세상에 더 많은 평화, 더 많은 선(善), 더 많은 순수함과 따뜻함을 전하고자” 했던 윤이상의 염원이 널리 전파되는 계기를 맞게 됐다.
앨범으로 발매되는 ‘광주여 영원히’
광주시향은 10월8일 통영국제음악당 연주 실황을 음반으로 발매하는데, 여기에 ‘광주여 영원히’가 담긴다. 1980년 광주 민주화운동 때 희생된 이들을 위해 윤이상이 이듬해 작곡한 곡이다. 북한 국립교향악단과 일본 도쿄심포니오케스트라가 이 곡을 음반으로 발매했지만, 국내엔 없었다. 홍석원 광주시향 상임지휘자는 “‘광주여 영원히’를 광주시향이, 작곡가의 고향인 통영에서 연주하고 녹음한 것은 의미가 깊다”고 말했다. 유니버설뮤직이 11월 중에 발매할 이 앨범에는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연주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과 새뮤얼 바버의 ‘현을 위한 아다지오’도 수록되어 있다.
국내 교향악단이 최초로 녹음한 윤이상 앨범도 나왔다. 서울시향이 그의 후기 작품 3곡을 연주한 음반이다. 음악감독 오스모 벤스케가 지휘하고, 신예 바이올리니스트 박수예가 협연자로 참여했다. 스웨덴 음반 레이블 ‘비스’(BIS)가 지난 9월에 발매해 스포티파이, 애플뮤직 등 음원 사이트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다. ‘관현악을 위한 전설: 신라’는 작곡가가 조국에 바친 헌사다. 바이올린 협주곡 3번은 작곡가가 자신에게 주는 75번째 생일 선물이자 외손녀를 위한 작품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실내교향곡 1번’은 오보에와 호른, 현악기를 위한 단악장 곡이다. 벤스케는 “진심으로 존경하는 윤이상의 곡을 연주하는 것은 커다란 도전이지만, 20세기 한국의 중요한 작곡가의 음악을 음반으로 남기고자 했다”고 밝혔다.
윤이상이 영화음악을 만든 사실도 새로 확인됐다. 최근에야 필름이 발견된 1952년 영화 <낙동강>의 크레디트에는 ‘영화음악 윤이상’이라고 명기돼 있다. 영화는 10월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공개됐다.
■ 23년 만의 재공연…오페라 <심청>
대구오페라하우스가 오는 18~19일 ‘대구오페라 축제 폐막작’으로 선보일 윤이상의 오페라 <심청>은 여러 측면에서 의미가 각별하다. 1999년 국내 초연 이후 두번째 공연이다. 이 작품은 1972년 뮌헨올림픽 문화 행사를 위해 독일이 윤이상에게 위촉해 탄생했다. 지휘자 볼프강 자발리슈(1923~2013)의 초연 당시 “동양의 신비한 정신세계를 심오한 음향과 정밀한 설계로 표현해냈다”는 독일 언론의 찬사를 받았다. 작가 루이제 린저는 “오페라 <심청>은 격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는 점에서도 대성공이었다”며 “어떤 사람은 너무 서양적이라고 했고, 어떤 사람은 너무 동양적, 이국적이라고 했다”고 저서 <윤이상, 상처 입은 용>에서 썼다.
이 ‘비운의 작품’은 윤이상의 정치 색깔과 행적 시비로 국내에선 무려 27년이 지난 뒤에야 초연될 수 있었다. 문익환 목사의 장남 문호근 연출에, 최승한 당시 연세대 교수가 지휘봉을 잡았다. 이번 대구 공연은 정갑균 대구오페라하우스 예술감독이 연출하고, 국내 초연을 이끈 최승한 연세대 명예교수가 지휘한다. 독일 극작가 하랄트 쿤츠가 대본을 썼다.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이뤄진 국내 초연은 한국어 공연이었지만, 이번 대구 공연은 독일어 공연에 한글과 영문 자막을 붙인다.
뮌헨올림픽 주제가 ‘인류 화합’과 ‘문화의 결합’이었다. 독일이 윤이상에게 오페라를 위촉한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오페라 <심청>에서 심 봉사는 ‘지식으로 눈이 먼 인물’로 그려진다. 그가 눈을 뜨는 것도 단순한 기적이 아니라 깊은 반성과 고백, 참회를 통해서이며, 그 결과 세상을 제대로 보는 철학적 의미의 ‘개안’을 하게 된다.
<심청>은 음악적으로도 높게 평가받는다. 서구의 전위적 음악 기법에 동양적 음향과 음색을 녹여냈고, 한국의 소리를 서양 악기로 우려냈다. 하프는 가야금 소리를 내고, 플루트는 피리 음색을 들려준다. 합창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도 특징. 최승한 지휘자는 “통상적 그림만 보다가 갑자기 피카소 그림을 볼 때의 느낌과 비슷할 것”이라며 “동서양의 갖가지 리듬에서 독특한 매력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용숙 음악평론가는 “음악이 그만큼 자유로울 수 있다는 걸 보여주면서 서양 작곡가들에게 새 지평을 열어준 것으로 평가받는다”며 “이탈리아 오페라의 아름다운 선율을 기대하긴 어렵지만 잘 배합된 동서양의 다양한 리듬을 즐길 수 있다”고 했다.
이번 대구오페라하우스 공연은 오페라 <심청>이 세계에 진출하는 발판이란 의미도 있다. 대구오페라하우스는 2024년 헝가리 부다페스트 극장과 불가리아 소피아 극장, 이탈리아 볼로냐 극장에서도 <심청>을 공연한다. 2026년엔 독일 만하임 오페라극장 공연이 잡혀 있다. 만하임 오페라극장이 최근 바그너의 대작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 4부작을 대구에서 공연한 데 대한 ‘품앗이’ 성격이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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