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T다방] 사랑, 이타적이고 이기적인··· 정열의 플라멩코를 닮은 영화 '그녀에게'
이기적이면서 이타적인 사랑···농도 짙은 정서로 그려내
집시 민족의 정체성을 담은 플라멩코는 정열적이고 관능적인 리듬의 종합 예술 표현으로 종교 축제나 의식에서 사용됐다고 한다. 그런 플라멩코의 속성을 닮은 영화 한 편이 있다. 감수성이 풍부해지는 계절, 영화의 짙은 여운과 감성을 느끼고 싶은 이에게 마냥 아름답다고만은 할 수 없을 것 같은 이 영화를 추천한다. 이기적인 동시에 이타적인, 문제적 사랑을 그려낸 영화는 주인공들의 각기 다른 사랑을 아름다운 영상과 음악으로 멜랑꼴리하게 담는 데 성공했다.
영화 ‘그녀에게’(2002)는 ‘신경 쇠약 직전의 여자’(1988), ‘내 어머니의 모든 것’(1999) 등을 연출한 스페인 거장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대표작으로 아카데미 각본상, 골든글로브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이후로도 타임지 선정 100대 영화, BBC 선정 ‘21세기 위대한 영화 100편’ 등에 이름을 올리며 시간을 뛰어넘는 명작으로 꼽혀왔다.
무대 위 고통스러운 표정의 여인들로 영화는 시작한다. 두 발레리나가 공연하는 작품은 독일의 현대 무용가 피나 바우쉬의 ‘카페 뮐러’다. 발레리나들은 눈을 감은 채 고통스러워하며 춤을 추고 있고, 한 남자가 그 여인들이 부딪히지 않게 의자와 탁자를 치워준다. 공연을 보는 두 남자 주인공 간호사 베니뇨와 여행기자 마르코는 깊은 감명을 받은 듯 눈물을 글썽인다. 이 무대는 영화 내용에 대한 암시이기도 하다.
여행기자 마르코는 텔레비전에서 우연히 투우사 리디아의 인터뷰를 본다. 여섯 마리의 황소와의 대결을 앞둔 그녀이지만 TV 쇼가 관심 있는 건 투우사 엘니뇨와의 관계에 대한 가십이다. 엘니뇨와 어떤 관계였는지 노골적으로 묻는 진행자에 리디아는 답하지 않겠다고 화를 낸 뒤 생방송 도중 뛰쳐나간다. 그 모습에 흥미가 생긴 마르코는 집중 취재를 해보겠다는 명분으로 리디아에게 다가간다.
리디아의 투우장 신은 이 영화의 가장 강렬한 장면이다. 둘 중 하나는 죽어야 끝나는 투우장에서 붉은 투우복을 입은 리디아가 검은 소를 유인한다. 소를 찌르자 붉은 피가 흐르고, 여기에 흐르는 처연한 음악은 죽음을 앞둔 존재에 대한 연민 등의 감상을 불러일으킨다. 승리를 거두고 술집에서 엘니뇨를 찾아간 리디아는 정리되지 않은 둘의 사이를 정리하고자 하지만, 엘니뇨의 매니저에게 거절당한다. 리디아는 자신에게 말을 걸어오는 마르코에게 마드리드로 태워다 달라고 청한다.
마드리드 집에 도착한 리디아가 뱀을 보고 비명을 지르며 뛰어나온다. 혼돈에 가까운 그녀의 표정에 마르코는 대신 뱀을 잡는다. 그 장면에서 마르코는 알 수 없는 눈물을 흘린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이 눈물의 의미가 드러나는데, 10년간 사랑해오던 다른 여인에 대한 기억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 의미를 아직 알지 못하는 관객으로서도 리디아를 위해 무언가를 하는 마르코의 표정이 꽤나 인상적이다. 땀을 흘리고 미소를 짓는 듯 눈물을 훔친다. 자기 안에 숨겨진 열정을 발견한 듯이 말이다. 여기에 흐르는 플라멩코 음악이 두 사람의 정서와 감정에 흡입력을 더한다. 그렇게 그들은 연인이 된다.
그러나 곧 리디아는 투우를 하다 소에 치여 혼수상태에 놓인다. 마르코는 깨어나지 않는 리디아를 견디기 어려워한다. 몇 달, 몇 년, 평생이 될지도 모르는 기약 없는 기다림 동안 그녀는 응답하지 않는다.
간호사 베니뇨는 식물인간 환자 알리샤의 머리를 감기기 편하도록 짧게 자르란 동료의 말에 “처음 왔을 때랑 똑같이 해줄 거야, 깨어나서 놀라면 안 되잖아”라고 답한다. 이 장면에서도 유추할 수 있듯 베니뇨는 알리샤를 지극 정성으로 돌본다. 같은 병원에 머물던 마르코는 베니뇨가 알리샤에게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아본다. 둘은 사랑하는 사람이 식물인간이라는 공통점에 기반해 우정을 쌓는다.
베니뇨는 4년 전 발레학원에서 연습하는 알리샤를 훔쳐보고 첫눈에 반한 인물이다. 그녀가 좋아하는 무성영화와 고전영화를 모조리 보고 발레 공연까지 챙겨본 후 그녀에게 내용을 이야기해 주며 매일같이 말을 건다. 답이 돌아오지 않음에도 말을 거는 행위는 사랑의 행위로 그려진다. 식물인간인 알리샤는 베니뇨를 볼 수도 인지할 수도 없고, 사고나 감정도 갖지 못하지만 베니뇨는 그런 알리샤를 돌보던 지난 4년이 자신 인생 최고의 순간이었다고 말한다.
마르코는 베니뇨를 이해하지 못한다. 응답이 돌아오지 않는 존재와의 사랑은 마르코에게 불가능하다. 마르코는 “알리샤에 대한 당신의 감정은 일방적이고 미친 짓”이라며 베니뇨를 몰아세운다. 그는 엘니뇨에게 리디아가 쓰러지기 전 자신이 아닌 엘니뇨를 택했음을 듣게 되고, 리디아를 떠난다.
마르코는 시간이 흘러 리디아가 죽었다는 소식을 신문에서 접하고, 병원에 전화해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는다. 베니뇨가 식물인간인 알리샤와 사랑을 한다고 혼자 믿고 그와 성적인 관계를 가진 것이 그녀의 임신으로 들통났고, 베니뇨는 교도소에 갔다는 소식이다. 해당 장면에서 영화 속 영화를 등장시켜 베니뇨가 알리샤에게 무성 영화 한 장면을 들려주는 것처럼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은 독특하지만, 파격적인 내용이기에 여러 논쟁이 오간다.
알리샤는 결국 깨어나 자신의 삶을 회복해간다. 알리샤와 마르코가 피나 바우쉬의 ‘마주르카 포고’ 공연장에서 다시 만나 웃는 장면으로 삶의 회복에 대한 낙관적인 시선을 암시한다. 이 영화는 결국 다양한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고, 비극적이고 처절한 사랑을 그려낸 이야기이다. 어디까지가 사랑이냐 아니냐를 직접, 적극적으로 판단하지는 않지만, 영화가 그려낸 인간과 사랑의 모습은 깊은 여운을 남긴다.
아름다운 영상과 음악이 빚어낸 영화 특유의 분위기도 인상적이다. 감독이 애용하는 빨간색의 강렬한 색감과 브라질 국민가수 ‘카에타노 벨로조’의 음악 ‘쿠쿠루쿠쿠 팔로마’(비둘기)가 주는 느낌도 독특하다. 인물들의 관계에 있어서도 얽힌 비밀을 한 번에 드러내지 않아서, 묘한 감정선을 추측하며 따라가면 영화의 정서를 온전히 향유할 수 있다.
◆시식평 - 이보다 음악을 잘 쓴 영화가 있을까? 영혼을 건드리는 한 편의 플라멩코.
제목 : 그녀에게(Talk To Her), 2002
감독 : 페드로 알모도바르
주연 : 하비에르 카마라, 다리오 그란디네티, 레오노르 와틀링, 로사리오 플로레스 등
장르 : 드라마, 미스터리, 로맨스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러닝타임 : 112분
볼 수 있는 곳 : 왓챠, 티빙, 웨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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