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재가 노래하는 곳 - ‘생존본능’이란 이름의 강한 ‘순수’[시네프리뷰]
2022. 11. 2. 06:40
솔직히 범죄 미스터리 장르로만 놓고 봤을 때는 쾌감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선입견을 버리고 다양한 문제의식과 탐미적 풍광에 온전히 몸을 맡길 수 있다면 아쉬움을 상쇄되고도 남을 뜻밖의 감정과 만나게 된다.
제목 가재가 노래하는 곳(Where the Crawdads Sing)
제작연도 2022
제작국 미국
상영시간 125분
장르 드라마, 미스터리
감독 올리비아 뉴먼
출연 데이지 에드가 존스, 테일러 존 스미스, 해리스 디킨슨, 데이비드 스트라탄
개봉 2022년 11월 2일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1969년 10월 30일,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의 작은 마을 바클리 코브에 있는 외진 소방용 망루 아래에서 한때 전도유망했던 청년 체이스 앤드류스(해리스 디킨슨 분)가 시신으로 발견된다. 경찰은 오래전부터 체이스와 추문이 일었던 카야 클라크(데이지 에드가 존스 분)를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하고 신속히 체포한다. 가족의 가출로 어려서부터 습지의 낡은 집에서 홀로 외롭게 살아온 카야는 갑작스러운 상황이 혼란스럽고 두렵다.
오래전 퇴직했던 노년의 톰 밀턴(데이비드 스트라탄 분)이 국선변호사로서 유일하게 카야의 편에 서지만, 오랫동안 카야를 ‘습지 소녀’라 부르며 기피하던 마을 사람들은 경찰과 마찬가지로 그를 범인이라 예단하고 일방적인 재판을 시작한다. 더불어 아무도 몰랐던 카야의 비밀스러운 과거가 하나둘 드러난다.
관습적 스타일로 완성된 포스터와 ‘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가 눈에 들어오는 줄거리만으로는 익숙히 보아왔던 범죄 스릴러를 기대하는 것이 무리는 아니다. 솔직히 범죄 미스터리 장르로만 놓고 봤을 때는 쾌감이 부족한 영화인 것도 사실이다. 이런 소재라면 당연하게 등장하는 창의적(?) 폭력이나 치밀한 트릭을 기대한 관객에겐 전반적으로 싱거운 영화라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선입견을 버리고 영화가 제시하는 다양한 문제의식과 탐미적 풍광에 온전히 몸을 맡길 수 있다면 그런 아쉬움 정도는 상쇄되고도 남을 뜻밖의 감정과 만나게 된다.
화제의 밀리언셀러를 영화화
〈가재가 노래하는 곳〉은 델리아 오언스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일렉션〉, 〈금발이 너무해〉의 주인공으로 유명한 배우 리즈 위더스푼은 곧바로 영화화 판권을 구입했다. 영화의 제작자로도 이름을 올렸다.
원작자는 〈가재가 노래하는 곳〉을 ‘외로움에 관한 책’으로 정의한다. 더불어 생물학에 기초해 쓰인 소설이라고 말한다. 다양한 사건과 측면을 고루 내포한 인간의 삶과 닮은 이야기를 쓰고 싶었고, 그것은 현대인의 감정이나 행동이 고대로부터 이어져온 유전자의 원초성과도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 소녀의 외로움과 성장에 관한 이야기는 환경, 인종, 계급 등 시대를 관통해 현재까지도 여전히 진행 중인 다양한 사회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만약 당신이 이 작품을 보며 사랑 이야기인지 범죄 미스터리인지 장르를 고민한다면 작가의 의도가 제대로 전달됐다는 방증이다. 대부분 사람의 삶이란 다양한 장르가 뒤섞인 혼돈의 희비극일 테니 말이다.
이 작품이 단순히 ‘외로움’에만 천착하거나, ‘사랑 찾기’ 또는 ‘범인 찾기’라는 장르적 테두리 안에 갇힌 이야기로 머물렀다면 지금 같은 호응과 지지를 얻진 못했을 것이다.
사회에서 격리된 외진 습지에서 외롭게 살면서도 살인사건의 용의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한 유약한 소녀의 이야기는 종국에 이르러 뜻밖의 강력한 에너지를 분출하며 마무리된다.
섬세하고 아름답지만 냉철하고 단호한
이는 결국 수많은 시련과 편견 속에서도 자신의 삶을 지키기 위해 꿋꿋이 다시 일어서는 한 인간의 이야기다.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스스로의 가치를 규정하고 구원하는 결정적 단초가 되는 개인 간의 관계와 믿음에 관한 이야기로 치환된다. 사회적 합의와 도덕률에 반함에도 불구하고 선택할 수밖에 없는 ‘치명적인 반격’의 정당성에 관한 심란한 물음까지 던진다. 그래서 이 작품은 자연을 품은 매우 순수하고 아름다운 작품임과 동시에 생존에 관한 냉철하고 단호한 작품이기도 하다.
재능 있는 젊은 배우들의 호연이 영화를 더욱 매력적으로 만든다. 특히 주인공 카야를 연기한 데이지 에드가 존스의 존재감은 단연 눈에 띈다. 1998년 영국 런던 출신인 데이지 에드가 존스는 다수의 TV시리즈를 통해 얼굴을 알려오다 올해 2편의 장편영화에 연이어 출연하며 본격적인 영화배우 활동에 시동을 걸고 있다. 〈가재가 노래하는 곳〉 외 다른 한편인 영화 〈프레시〉는 첫눈에 반한 매력적인 의사에게 납치 감금된 한 여성이 겪게 되는 끔찍한 경험을 공포와 코미디로 버무려낸 작품이다. 미국 OTT 플랫폼 훌루를 통해 공개됐다. 국내에서는 디즈니+를 통해 감상할 수 있다.
“가재가 노래하는 곳까지 멀리 가거라”
소설은 2018년 미국에서 출간됐다. 미국 도서 업계에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헬로 선샤인 북클럽’ 운영자이자 배우 리즈 위더스푼의 눈에 들어 강력 추천을 받으면서 단숨에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 미국에서 선풍적인 화제를 낳은 여세를 몰아 원작소설은 2019년 한국에서도 번역 출간됐다.
생태학자이자 환경보호론자로도 유명한 델리아 오언스는 조지아대에서 동물학을 전공했다. 캘리포니아대에서 동물행동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23년 동안 아프리카에서 야생동물을 관찰·연구하며 보냈다. 이때의 연구 성과를 정리한 논픽션의 공동저자로서 훌륭한 자연도서에 주어지는 존 버로스상을 수상했다. 다수의 저명한 학술지에 글을 실으며 명성을 얻었다. 2014년에는 로버트 레드포드가 내레이션에 참여한 다큐멘터리 〈새로운 환경운동가들〉에 출연하기도 했다.
〈가재가 노래하는 곳〉은 그가 일흔에 가까운 나이에 이르러 처음 발표한 소설이다. 근간의 하나인 소녀감성의 로맨스와 더불어 자연을 바라보는 해박한 지식과 섬세한 서정성이 빼곡히 채워질 수 있었던 데는 과거의 경험이 유용했으리라 추측해도 무리는 아니다.
실제로 작가의 어머니는 숙녀이면서도 활동적인 성격이었다고 한다. 종종 어린 딸에게 숲속에 들어가 놀게끔 부추겼다. 그럴 때마다 “가재가 노래하는 곳까지 멀리 가거라”라고 말했다. 노년이 된 작가는 ‘그곳’을 알고 있다. “당연히 가재는 노래하지 않는다. 어머니가 그 말을 통해 뜻했던 것은 우리가 자연을 충분히 경험했으면 하는 것이다. 당신이 혼자 야생으로 상당히 멀리 들어가 당신과 자연,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순간을 맞이한다면 당신은 가재가 노래하는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최원균 무비가이더
▶ 최신 뉴스 ▶ 두고 두고 읽는 뉴스
▶ 인기 무료만화
©주간경향 (weekly.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주간경향.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주간경향에서 직접 확인하세요. 해당 언론사로 이동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