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는 사람 김초엽…그를 발견하는 읽기의 궤적

김미경 2022. 11. 2. 0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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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우연들
김초엽|296쪽|열림원
2030세대 팬덤, 국내 대표 SF작가
읽기가 쓰기로 이어지는 과정 담았죠
나를 마주하는 글쓰기의 여정

[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영어 속담 중에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표현이 있다. 사자성어로는 ‘유유상종’(類類相從), 비슷한 무리끼리 서로 사귄다는 의미다. 이는 장서(藏書)에도 적용 가능한 말이다. “누군가의 서재를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보인다”. 김초엽(29) 작가의 첫 에세이 신작 ‘책과 우연들’(열림원)을 읽다보면 어느정도 수긍이 갈 터다.

책은 ‘쓰는 사람’ 김초엽이 되기까지 지나온 독서 궤적이 오롯이 담겨 있다. “읽기가 어떻게 쓰기로 이어지는지, 내가 만난 책들이 쓰는 나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작가의 읽기 여정을 되짚어가며 그 안에 ‘쓰고 싶은’ 김초엽을 발견하는 탐험의 기록이다.

첫 에세이 ‘책과 우연들’을 펴낸 김초엽 작가가 최근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사진을 찍고 있다. 김 작가는 책에 대해 “읽기가 어떻게 쓰기로 이어지는지, 내가 만난 책들이 쓰는 나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의 여정이자 그 안에서 ‘쓰고 싶은’ 나를 발견하는 탐험의 기록이라고 했다(사진=이데일리 김태형 기자).
김초엽은 지금 한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가 중 한 명이다. 포항공대에서 화학을 전공한 그는 2017년 한국과학문학상 대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강렬한 데뷔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비롯해 ‘방금 떠나온 세계’, ‘지구 끝의 온실’ 등 내는 책마다 베스트셀러에 올리며 따뜻한 시선과 문체의 ‘김초엽식 SF(과학소설)’ 장르를 개척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최근엔 2030세대가 공공도서관에서 가장 많이 빌린 대출 1위 도서로, 김 작가의 소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가 꼽히기도 했다.

김 작가는 최근 가진 이데일리와 인터뷰에서 이와 관련, “뿌듯하다”며 활짝 웃었다. 그는 “어렸을 때를 떠올려보면, 가치관에 충격을 주는 책들을 자주 찾아 꺼내 읽어봤던 것 같다”며 “어떻게 보면 내 또래들이 내 글을 좋아해 준다는 의미인데, 동시대 독자들과 통한다는 것은 큰 행운”이라고 했다.

책은 일단 여기저기 기고한 글들을 모아 다시 새롭게 기획 구상한 뒤, 올 2월부터 8월까지 6개월간 다시 고쳐 썼다고 했다. 첫 에세이를 쓴 배경으로는 “에세이를 써보고 싶다는 가벼운 생각으로 시작했는데, 돌이켜보면 내 안을 들여다보는 작업이었던 것 같다”면서 “쓰는 일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독자는 물론 저와 같은 고민을 하는 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실용서다운 책을 쓰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런 그도 스스로를 “공부하는 소설가”라고 했다. 때는 2017년. 한국과학문학상 대상을 수상하며 ‘덜컥’ 작가가 된 그는 데뷔초 벽을 마주했다고 말했다. 아이디어가 고갈되고 “매번 소설을 쓸 때마다 글 쓰는 법을 까먹었다”고 느꼈다. 당시 아이디어를 찾기 위해 과학책을 뒤적거리고 작법서를 찾아 남들의 글 쓰는 방법을 탐독했다. 참신한 상상력이 강점인 김초엽도 작법서를 챙겨본다는 건 의외다.

김초엽 작가의 첫 에세이 ‘책과 우연들’(열림원)
김초엽은 책에서 작법서의 진짜 의미는 ‘진정체’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글 쓰는 일은 때로 나를 뚝 떼어내 (중략) 고립시킨다. 재미있지만 가끔은 심심하고 외롭고 심지어 고통스러울 때도 있다. 그럴 때 책상 위에 놓인 작법서와 작가들의 에세이는 마음을 진정시켜준다. (중략) 무엇보다 내가 이렇게 늘어져 있는 지금도, 어느 작업실과 침실과 부엌에서 수많은 작가가 화면을 노려보며 분투하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고 적었다.

장르문학을 ‘쓰는 사람’으로서 SF소설 그리고 문학에 대한 고민과 철학도 풀어냈다. 그는 “SF는 ‘인간중심’주의라는 오랜 천동설을 뒤집는다. 어쩌면 좀 과다하게 부풀려진 인간 존재의 중요성을 조심스레 축소해 제자리에 돌려놓는다는 점에서 SF가 수행하는 불완전한 시도를 좋아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말하지 않고 끈질기게 파고들어 알고자 하는 태도”, “미지의 영역은 끝까지 남아 있을 것을 알지만, 그럼에도 결코 낯선 세계에 대한 이해를 포기하지 않는 마음” 김초엽은 그것을 SF로부터 배웠다고 썼다.

“이 책을 쓰며 나의 작업이 얼마나 이전의 책과 작품에 많이 빚지고 있는지를 거듭 생각했다”는 작가는 책 곳곳에 자신이 읽은 책들을 빼곡히 소개한다. 칼세이건의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은 “십대 ‘과학소녀’ 시절 나의 바이블”로, SF에 처음 입문했던 첫 소설은 배명훈 작가의 ‘타워’, 올슨 스콧 카드의 ‘당신도 해리포터를 쓸 수 있다’, 이경희의 ‘SF, 이 좋은 걸 이제 알았다니’ 등은 SF장르 작가로서 고민을 함께 해준 책이라고 말한다.

이야기를 쓰는 근저에는 열여덟 살의 김초엽이 있다. 수능을 앞둔 고3, 야간자율학습을 제쳐놓고 슬그머니 학교를 빠져나와 영화관에서 ‘토이스토리3’를 봤다는 장면은 흥미롭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도 언젠가는 이런 것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는 ‘이런 것’이 뭔지 몰랐다.” “안갯속에서 초고를 쓰고, 많은 자료를 읽고 공부하고 가져와 길목 구석구석을 점차 구체화하고 또 다시 쓰고 고치기를 반복한다”는 그만의 소설짓기 방식도 들려준다.

지금도 여전히 밑천 없는 작가라고 느끼지만 예전만큼 그것이 두렵지는 않다고 했다. “다음 작품을 또 쓰겠다는 동력에 감사한 마음이에요. 누구에게 혹은 무엇에 휘둘리는 게 아니라, 내가 원하고 쓰고 싶은 작품을 쓰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번 에세이를 쓰면서 많이 한 생각이에요. 날카로운 눈을 가진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제 자신의 든든한 독자가 되고 싶어요. 하하.”

첫 에세이 ‘책과 우연들’을 펴낸 김초엽 작가가 최근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사진을 찍고 있다(사진=이데일리 김태형 기자).

김미경 (midory@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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