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인터뷰]'CHIP WAR' 크리스 밀러 "반도체가 군사력의 중심, 美의 대중 규제 불가피"

워싱턴=윤홍우 특파원 2022. 11. 2. 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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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전쟁' 저자 크리스 밀러 교수
첨단 반도체 기반 '컴퓨팅 파워'
차세대 군사력 가를 핵심 요소
美, 전방위 규제로 中 굴기 차단
韓 반도체 생존법은 결국 혁신
삼성·SK 능력이면 충분히 가능
美中 경쟁에 기술진보는 느려질듯
[서울경제]

“중국에 대한 군사적 우위를 유지하려는 미국의 노력을 지지한다면 한국도 대중 반도체 규제의 편에 서야 합니다.”

크리스 밀러 미국 터프츠대 교수는 지난달 28일(현지 시간) 진행된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미중 군사 전략가들은 컴퓨팅 파워와 이를 가능하게 하는 인공지능(AI) 시스템이 향후 수십 년 동안 군사력의 중심이 될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미국 내 떠오르는 경제사학자인 밀러 교수는 최근 발간된 저서 ‘반도체 전쟁: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기술을 위한 싸움(Chip War: The Fight for the World’s Most Critical Technology)’로 워싱턴 정가의 주목을 받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이 책이 “반도체가 세계경제 구도와 지정학적 힘의 균형을 결정한다는 사실을 입증한다”고 평했다.

향후 수십 년··· 美中 군사력의 핵심은 반도체

밀러 교수는 미중 패권 경쟁에서 반도체가 미국의 ‘군사적 우위’와 직결된 이슈라고 강조했다. 그는 “미국은 중국의 군사력 증강으로 인해 동아시아의 군사적 균형이 극적으로 변화했다고 우려한다”면서 “첨단 반도체가 뒷받침하는 컴퓨팅 파워는 차세대 군사 시스템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하다는 점에서 미국은 중국이 미국 기술을 활용해 군사력을 증강하는 것을 막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그런 점에서 중국을 제어할 가장 효과적인 수단은 중국이 미국을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첨단 반도체 분야를 차단하는 것이다.

밀러 교수는 저서에서 냉전 시대 미국이 옛 소련에 승리하게 된 배경 역시 컴퓨팅 파워와 이를 바탕으로 한 군사적 우위라고 분석했다. 1991년 미국이 이라크를 응징한 ‘사막의 폭풍 작전’ 당시 엄청난 화력과 정교함을 보인 레이저 유도탄과 토마호크 순항미사일은 사담 후세인의 군대를 몰아냄과 동시에 소련 지도자들에게 반도체 분야에서 미국의 우위를 뼈저리게 느끼게 했다는 것이다. 기술 경쟁에서 도태된 옛 소련은 그해 12월 해체됐다.

美의 규제··· 韓 반도체 기업들 보호 효과도

밀러 교수는 미국의 대중 반도체 규제로 미국 피해가 커질 것이라는 우려를 일부 시인하면서도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진단했다. 규제가 범용 반도체가 아닌 첨단 반도체 분야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그는 한국·일본·대만 등 다른 반도체 강국들 역시 미국이 군사적으로 중국보다 우위에 있기를 원한다면 미국의 대중 규제를 수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대중 반도체 규제가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 반도체 기업들의 경쟁력을 높이는 효과를 낼 것이라고도 예상했다. 그는 “양쯔메모리(YMTC)처럼 중국 정부의 보조금을 받는 기업들이 미국 규제의 영향을 받게 됨으로써 한국의 메모리 업체들이 중국과의 불공정한 경쟁의 영향에서 보호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미국이 ‘반도체와 과학법(CHIPS and Science Act)’ 등을 통해 거액의 자금을 쏟아부어도 자국 내 제조업 육성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 밀러 교수의 전망이다. 그는 “반도체 법이 첨단 기술을 포함해 미국 내 반도체 제조를 장려할 것으로 예상하지만 미국은 여전히 대만과 한국 등에서 생산된 반도체를 사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거세지는 미중 파워 게임 속에서 한국 반도체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오직 혁신밖에 없다”는 것이 밀러 교수의 조언이다. 그는 “한국 기업들의 숙제는 결국 더 첨단 수준의 칩을 내놓는 것”이라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그간의 업적을 보면 성공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밝혔다. 그는 다만 “미중 간 기술적 긴장을 헤쳐나가는 것이 (한국 기업들에) 쉽지 않을 것”이라면서 “특히 정치 및 규제 리스크를 감안할 때 중국 투자에 대한 유인은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지정학적 갈등에 ‘무어의 법칙’ 보장 어려워져

‘반도체 전쟁’을 통해 글로벌 반도체 산업의 흥망성쇠를 조망한 그는 반도체 강국의 조건으로 △잘 훈련된 인력 △글로벌 시장과 해외 첨단 기술에 대한 접근성 △대규모 투자 능력을 꼽았다. 그는 향후 10년간 반도체 산업이 어떻게 변할지에 대해서는 “국내 정책이 견인하는 중국 반도체 산업과 미국 주도의 나머지 세계가 나뉘는 분기점이 본격화할 것”이라면서 이 같은 미중 간 패권 경쟁 여파로 반도체의 기술적 진보 역시 느려질 수밖에 없다고 봤다. 그는 “반도체 산업에서 ‘무어의 법칙’을 보장하기는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윤홍우 특파원 seoulbird@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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