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고객·환율·중국'…4개의 화살이 3분기 실적 갈랐다
환율에 민감한 항공사, 중국 변수 철강·화학 '암울'
(서울=뉴스1) 신건웅 권혜정 기자 = 올해 3분기(7~9월) 실적 발표가 잇따르면서 기업들의 표정이 엇갈리고 있다. 글로벌 경기침체 현실화 여파로 대규모 적자를 낸 회사가 속출한 가운데 증권사 컨센서스(전망치 평균)를 웃돌며 '깜짝 실적'을 기록한 회사도 적지 않았다.
그렇다면 3분기 실적 명암을 가른 요인들은 무엇일까. 우선 가격 주도권을 가진 회사와 안정적인 고객사를 확보한 회사일수록 좋은 실적을 냈다. 반면 중국 의존도가 높거나 환율에 민감한 회사는 불확실성이 컸다.
◇ "지금 주문해도 1년 반 기다려야"…가격 주도권에 실적↑
2일 재계에 따르면 글로벌 경기침체 현실화로 기업들의 3분기 실적도 직격탄을 맞았다. 그러나 가격이 비싸도 인기가 많은 제품을 보유한 회사들은 여전히 돈을 잘 벌었다.
현대차와 기아가 대표적이다. 현대차의 3분기 매출액은 37조7054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0.6% 늘었다. 영업이익은 1조5518억원으로 3.4% 줄었지만 1조원을 넘는 세타2 GDI 엔진 품질 관련 비용을 빼면 2조5000억원을 넘어선다. 기아도 매출은 30.5% 늘어난 23조1616억원, 영업이익은 7682억원이다. 마찬가지로 엔진관련 품질비용을 제외하면 영업이익은 사실상 2조3120억원이다. 두 회사 모두 올해 연간 기준 역대 최대의 매출액과 영업이익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밀려드는 주문이 분기 최대 매출로 이어졌다. 3분기 말 기준 현대차의 글로벌 백오더는 100만대, 기아의 글로벌 백오더는 120만대다. 차량용 반도체난이 점차 해소되고 있지만 높은 수요를 감당하기엔 역부족인 상황이 이어지며 공급자 우위 시장이 이어졌다.
이에 현대차와 기아는 기존 모델 대비 신차 가격을 올리는 등 가격주도권을 가져가고 있다. 공급자 우위는 미국 내 딜러들에게 제공하는 인센티브 감소 효과도 내고 있다. 그동안 현대차와 기아는 미국 내 딜러의 판매를 촉진하기 위해 인센티브를 지급하고 있는데, 차량 공급 부족 이후 딜러 인센티브가 크게 축소됐다.
기아는 최근 IR을 통해 "인센티브 수준은 지난 8~9월이 가장 저점이었고 10월에도 변동은 없었다"며 "금리 인상으로 인한 일정부분 영향이 있긴 하겠지만 큰 지장은 없는 수준으로 연말까지 (인센티브 흐름에) 변동은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반도체 업체들의 실적은 가격 하락에 부진했다. 공급 과잉에 수요 위축이 겹친 탓이다. 글로벌 메모리 1위 업체인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은 10조852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1.39% 줄었고 2위인 SK하이닉스 영업이익은 1조6556억원으로 60.3% 급감했다.
시장조사업체 트랜드포스는 올해 3분기 D램 가격이 전 분기보다 10~15%, 낸드플래시는 13~18% 하락한 것으로 추정했다.
◇ 고객사로 애플 잡은 LG이노텍 vs 샤오미 확보한 삼성전기
가격과 더불어 중요한 변수는 안정적인 고객사 확보다. 특히 애플을 고객사로 확보한 회사들의 실적이 좋았다.
대표적으로 LG이노텍은 IT 수요 둔화 등 어려운 시장 상황에서도 3분기 매출 5조3874억원, 영업이익 4448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매출은 41.9%, 영업이익은 32.5% 늘었다. 영업이익 컨센서스(4260억원)를 훌쩍 웃돈 수치다.
LG이노텍은 애플의 대표 부품 협력사로 알려져 있다. LG이노텍 관계자는 "고객사 신모델 양산에 본격 돌입하며 스마트폰용 고성능 카메라모듈이 실적을 이끌었다"고 설명했다.
반면 사업구조가 유사한 삼성전기의 3분기 영업이익은 311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2% 줄었다. 매출도 6% 감소한 2조3837억원으로 집계됐다.
주력 제품 중 하나인 초소형 고용량 MLCC의 주요 수요처인 중국 스마트폰 업체들이 글로벌 경기침체와 인플레이션, 중국의 도시 봉쇄 등으로 판매 부진을 겪은 탓이다. 지난 2분기 말부터 이들 업체의 재고가 급증했다. MLCC 재고 일수가 적정 수준인 45~50일을 크게 웃돈다.
업계 관계자는 "애플을 고객사로 둔 것과 중국 샤오미가 고객사인 것은 실적 차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언급했다.
◇ 1400원 뚫은 환율에 항공사 어쩌나
환율도 기업들의 실적을 가른 요소다. 달러화가 초강세를 보이는 이른바 '킹달러' 현상이 이어지면 수출기업들은 환차익을볼 수 있다. 수출 기업의 경우 해외 이익을 달러화로 거둬들이기 때문이다. 기존 달러·원 환율이 1200원이라면 해외에서 1달러짜리 물건을 판매한 후 받는 돈이 1200원이지만, 환율이 1400원으로 오르면 200원을 더 받을 수 있다. 같은 상품이라도 수익성이 좋아지는 셈이다.
고환율 효과를 본 대표 기업은 삼성전자와 현대차, 기아 등 수출 기업들이다. 삼성전자는 올 3분기 달러 강세로 전분기 대비 1조원 가량 영업이익을 늘리는 효과를 냈다. 현대차와 기아도 각각 4740억원과 7600억원의 환차익을 봤다.
반면 항공사들은 고환율로 인해 3분기에 수천억원대의 환손실을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 환율이 10원 오를 때마다 대한항공은 약 350억원의 외환 손실을 보는 구조이며 아시아나항공의 경우 284억원 수준이다. 특히 아시아나항공은 달러·원 환율 급등에 따른 대규모 외환손실로 3분기말 기준 자본총계가 마이너스로 돌아서는 '완전 자본잠식' 상태에 처할 가능성에 놓였다.
◇ 中에 긴장한 철강·화학사…"3분기 성적 암울"
중국은 국내 기업 실적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변수로 꼽힌다. 중국 현지 경기에 따른 수요와 투자 등에 따라 한국 기업들의 실적도 급변한다. 올 3분기에는 중국 시장 봉쇄 등으로 부정적 영향이 컸다.
직격탄을 맞은 곳은 철강업체다. 포스코홀딩스 3분기 영업이익은 920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1% 급감했다.
태풍 '힌남노'로 인한 포항제철소 침수로 생산을 중단한 여파(4335억 손실)도 컸지만 더 큰 고민은 철강 수요 부진이다. 코로나 봉쇄 등으로 중국 건설 경기가 부진하면서 수요가 급감했다.
현대제철도 마찬가지다. 3분기 영업이익이 373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54.6% 줄었다.
세계철강협회(WSA)는 내년 철강 수요 증가율을 종전 2.2%에서 1.0%로 하향 조정했다. 중국 경기가 회복되고 달러 강세 기조가 종지부를 찍어야 철강 수요가 개선될 것으로 내다봤다.
화학업계도 중국발(發)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중국이 정부 주도로 석유화학 산업의 내재화를 위해 NCC(나프타 분해 시설) 시설을 대폭 확대하면서 긴장하고 있다.
에틸렌 증설 물량은 석유화학사의 수익성 하방 압력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에틸렌의 스프레드(에틸렌-나프타 가격차)는 지난 1분기 톤당 226달러에서 2분기 288달러로 반등한 뒤 3분기에 184달러로 다시 하락했다. 통상적인 에틸렌의 손익분기점은 300∼350달러다.
중국 업체들의 대규모 증설이 시황 악화로 이어져 실적에 부담을 주고 있는 셈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중국 시장 변동은 한국 기업 실적에 바로 반영된다"며 "중국 시장 침체, 과잉 공급 등으로 한국 기업들도 좋지 않은 상황"이라고 했다.
keo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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