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진 한예종 총장 “한예종, 앞으로 30년은 유학 오고 싶은 학교로 만들 것” [세계초대석]

박성준 2022. 11. 2.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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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엔 ‘학원이냐 학교냐’ 정체성 논란
비 새는 연구실 등 열악한 환경 극복해
30년간 ‘유학 안가도 되는 학교’로 성장
2000년 손열음 국제콩쿠르 우승 이후
임윤찬·박세은·김기민 등 스타 이어져
동문들 콩쿠르 1위 수상만 1316회 달해
미래 위해선 석·박사 과정 신설이 절실
‘예술전문사’ 정식 학위로 인정 못 받아
전통예술원 졸업생 80%는 전공 못 살려
개교 30주년을 맞은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가 새로운 30년을 향해 ‘미래를 이끄는 세계 예술교육의 중심’이란 담대한 비전을 내놨다. 척박한 환경에서 지난 30년 동안 ‘유학 안 가도 되는 학교’를 만들었으니 앞으로 30년은 ‘유학 오는 학교’로 나아가겠다는 선언이다.
개교 30주년을 맞은 한국예술종합학교 김대진 총장은 “‘유학 갈 필요 없는 학교’란 목표는 어느 정도 달성한 상황”이라며 “앞으로는 ‘유학 오는 학교’로 만들어야 한다. 30년 후 개교기념 행사에는 더 많은 외국 교수와 유학생이 참석할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제공
1993년 음악원 개원 이후 연극원, 영상원, 무용원, 미술원, 전통예술원이 잇따라 들어선 후 한예종이 쌓은 성취는 대단하다. 가장 최근엔 재학생인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세계적 각광을 받았지만 ‘파리오페라발레단의 별’ 박세은, 마린스키발레단의 수석무용수 김기민, 영화 ‘기생충’의 제시카 박소담, ‘믿고 보는 배우’가 된 진선규, 오페라·연극·뮤지컬 경계를 넘나드는 극작가 배삼식 등 각 분야에서 한예종 동문이 맹활약하고 있다. 한예종 집계로는 각종 콩쿠르에서 재학생·동문 1위 수상만 1316회에 달한다.
그래서 지난해 8월 취임한 김대진 제9대 한예종 총장이 최근 열린 개교 30주년 기자간담회에서 밝힌 소회는 감동적이다. “새로운 예술교육 패러다임 만들기를 목표로 시작했는데 여정은 험난했고 불신, 편견과 싸워야 했습니다. 식당 없는 학교, 비 새는 연구실에서 망망대해 조각배 같은 느낌이었는데 모든 구성원의 헌신적 노력으로 한예종이 단단한 배가 돼서 큰 바다로 나올 수 있게 됐습니다.” 그 자신이 여러 콩쿠르에서 우승했던 피아니스트이자 1994년부터 한예종 음악원 교수로서 손열음, 김선욱, 문지영 등을 길러낸 교육자인 김 총장을 지난달 28일 한예종 석관동 캠퍼스에서 만났다.
-‘불신, 편견과 싸웠다’는 한예종 설립 초기 회고담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지금 한예종 모습을 보면 상상하기 힘든 일인데 어떤 상황이었나요.

“음악원은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 5층을 빌려서 수업을 하던 때인데 지하 예술 자료관이라는 굉장히 작은 공간에 제 연구실이 있었습니다. 비오니까 복도에 비가 새서 양동이를 갖다 놓았다 물이 차면 버리곤 했어요. 식당도 없으니 점심시간이면 ‘중국집 철가방’이 교수실 복도에 도열하는 장관이 펼쳐진 시절입니다. 무엇보다 ‘한예종이 학원이냐 학교냐’는 정체성 논란도 초기에 엄청 많았어요. 당시 출국신고서 직업란에 ‘교수’라고 적었더니 직원이 어느 대학이냐고 묻고는 화를 내면서 두 줄 긋고 교사라고 쓰더군요. 그런 경험을 모든 구성원이 했습니다.”

-‘한예종’에도 그런 시절이 있었군요.

“그 시절 가장 큰 스트레스가 어디 가서 학교 이름 얘기하고 설명하기였습니다. 구성원이 모두 엇비슷한 경험을 한 터라 ‘빨리 열심히 해서 증명해야 한다’는 자발적인 동력이 생긴 거죠. 그래서 이심전심으로 모두 앞만 보고 달려온 겁니다. 그러다 손열음이 2000년 독일 에틀링겐 국제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하면서 학교 이름이 알려지고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가’라는 반응이 나오기 시작했죠. ‘한예종이 이렇게 좋은 학교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던 계기가 만들어진 겁니다.”
-그런 과정을 거쳐 이제 ‘미래’와 ‘세계’에 방점이 찍힌 비전을 내놨는데 어떤 고민의 결과물인가요.

“돌이켜보면 한예종은 ‘무’에서 ‘유’를 창조했습니다. 고 이강숙 초대 총장님이 그 시절 자주하시던 말씀이 ‘유학할 필요가 없는 학교를 만들어보자’였는데 사실 믿은 사람은 없었죠. 그런데 교수들끼리 공감하며 만들어낸 예술적인 동력이 굉장히 컸고 그 결과 국제 콩쿠르 입상 등의 성과가 나타나다 어느 한순간 놀라운 성취를 이뤄서 초대 총장님 말씀이 실현된 겁니다. 이제 계속 열심히 해서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면 자연스럽게 유학 오는 학생도 만들어지지 않겠냐는 거죠. 목표가 아닌 결과로서 ‘유학을 와 주는 학교’가 아니라 ‘유학 오고 싶은 학교’를 만들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선 어떤 시스템이 만들어져 있어야 하는 거죠.”

한예종의 미래를 위한 시스템은 결국 석·박사 과정 신설로 초점이 모인다. 현재 한예종 학사 과정은 학위를 인정받지만 석·박사 학위를 주는 대학원 과정은 없다. 김 총장은 이번 기자회견에서 “한예종이 실질적인 대학원 과정 운영에 필요한 기본 여건과 교육체계를 갖췄음에도 법률상 ‘각종학교’로 분류돼 대학원 설립과 석·박사 학위 수여가 불가능하다”며 ‘한예종 설치법’ 제정을 최우선 추진 과제로 제시했다. 한예종이 주는 ‘예술전문사’는 ‘석사 학위에 상응하는 학력’이지만 정식 학위로는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한예종을 나와 학업을 이어가려면 국외 유학을 가거나 국내 다른 대학에 가야 하는 게 현실이다. 1999년과 2006년에도 석·박사 과정 설치를 추진했으나 ‘한예종에 대한 특혜’를 주장하는 다른 대학들 반발로 무산된 바 있다.
-석·박사 과정 신설에 대해선 ‘예술가에게 왜 학위가 필요한가’라는 반대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필요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예술가에겐 학위가 필요한가. 아닌가’는 분명히 논쟁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백남준씨도 박사학위가 있거든요. 논란 이전에 우리나라 사회가 학위 없어도 활동할 수 있는 구조가 되어 가고 있는지 살펴봐야 하는데, 사실상 사회는 더욱 학위를 요구하고 있거든요.”

-결국 학위는 학생들에겐 생존의 문제가 아닌가요.

“가령 어느 회사에서 석사학위 소지자를 채용할 때 학교마다 부여한 코드가 있어요. 그런데 한예종은 그 코드가 없어요. 그러면 인사팀이 학교에 전화해서 서류가 몇 번을 왔다 갔다 해서 인정해 주는 회사도 있고 안 되는 회사도 있고…그런 데서부터 지금 당장 막히는 거란 말이죠. 특히 전통예술원 같은 경우는 활동을 하려면 현실상 학위가 없으면 안 됩니다. 그래서 지금 졸업생의 80% 정도가 완벽히 다른 분야로 가요. 학생들한테는 고통스럽죠.”

-한예종 특혜 논란도 나오는데, 어떤 특혜가 있는지요.

“(특혜 받는 학교라고 말하는 사람들한테) 구체적으로 ‘어떤 특혜를 받고 있습니까’라고 물어보고 싶은 심정입니다. 한예종은 국정감사를 받을 정도로 까다로운 규제를 받고 있고, 특별법으로 만들어진 다른 대학에 비해서도 학생 수 대비 예산이 상위에 있지 않아요.”
-‘한예종이 인재를 독식한다’는 걱정이 앞서는 것 아닐까요.

“박사 과정을 개설해도 ‘현재 예술전문사 정원 250명 중에 10% 정도만 박사 과정에 할애를 하자’, 그러면 많이 잡아봤자 30명입니다. 여섯 개 원당 5명꼴로 박사학위가 매년 탄생하는데 무슨 독점을 하게 됩니까.”

-석·박사 과정 신설과 더불어 ‘우수한 융합형 인재 양성’을 중요한 과제로 선정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10여년 전만 해도 가장 모범적이고 객관적인 작품을 해야 인정을 받았어요. 이제는 달라져서 개성적이고 창의적인 예술상을 원하는 거죠. 가르치는 입장에서 창의력을 어떻게 키워줄 수 있는지 고민인데 결국 자기 전공만 들고 파서 되는 문제가 아니더란 거죠. 인접 예술에 대한 경험을 해야 하고 인문학도 해야만 하는 거죠.”
-현재 세 곳(동대문·서초·종로구)에 분산된 통합 캠퍼스 계획도 그래서 필요한가요.

“융합교육은 결국 학과가 같이 있어야 가능한데 지금 이렇게 이렇게 떨어져 있는 상황에서 융합교육을 한다는 것은 그냥 ‘교육을 위한 교육’이 될 수밖에 없어요. 학생들이 체험을 해야 되는데 가장 기본 조건은 결국 같은 곳에 있어야 합니다. 그만큼 통합캠퍼스가 절실한데 장기 프로젝트입니다.”
-현재 세 곳(서초·성북·종로구)에 분산된 통합 캠퍼스 계획도 그래서 필요한가요.

“융합교육은 결국 학과가 같이 있어야 가능한데 지금 이렇게 이렇게 떨어져 있는 상황에서 융합교육을 한다는 것은 그냥 ‘교육을 위한 교육’이 될 수밖에 없어요. 학생들이 체험을 해야 되는데 가장 기본 조건은 결국 같은 곳에 있어야 합니다. 그만큼 통합캠퍼스가 절실한데 장기 프로젝트입니다.”

-한예종이 거둔 성과이자 중요한 과업이 예술 영재 교육인데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특히 공연예술 쪽은 (예술가 성장에) 타이밍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조기 교육이 중요하고 영재교육원 역할이 사실은 굉장히 크다고 생각을 합니다. ‘영재를 발굴한다’는 책임을 지는 게 필요한데 영재가 만들어지는 거로 착각을 하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영재 코스를 밟으면 영재가 된다’는 인식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교육을 잘 받으면 영재가 만들어지지 않을까라는 인식이 있어요. 그래서 ‘영재 교육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하지요. 굉장히 조심스러운 면이 있긴 하지만 결국 ‘영재는 타고난다’는 것이죠. 우리는 그 타고난 영재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영재발굴을 해야 하는 것인데 ‘교육을 통해서 영재성이 생겨난다’고 믿으면서 나타나는 부작용이 우려되는 거죠. 영재발굴에서도 수도권하고 지방하고 격차가 생기는데 영재 캠퍼스 지역 확산 등으로 이를 해소하고 전반적인 수준을 높이는 데 한예종이 기여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대진 총장은… ●1962년 서울 출생 ●예원학교·서울예고·줄리아드스쿨(학·석·박사) ●이화경향·중앙·동아음악·로베르 카자드쥐 국제피아노 콩쿠르 1등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기악과 교수(1994∼) ●한국예술종합학교 제9대 총장(2021년 8월∼)

대담=박성준 문화체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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