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읽기] 소각장에서 복합문화예술공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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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사에게 음식을 먹어보는 것, 패션 디자이너에게 옷을 입어보는 행위가 공부라고 한다면 건축사에게는 건축물을 답사하거나 자료를 찾아보는 것이 공부다.
국내에서도 서울 마포구에 숨겨져 있던 석유비축 공간이 그 쓰임을 다하면서 2017년 문화비축기지(설계자 허서구, ㈜ROA건축사사무소)라는 이름으로 재탄생한 것이 좋은 예다.
소각장이 문화를 누릴 공간으로 변모한 것은 설계자가 의도한 '반전의 미학'이 담겨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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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사에게 음식을 먹어보는 것, 패션 디자이너에게 옷을 입어보는 행위가 공부라고 한다면 건축사에게는 건축물을 답사하거나 자료를 찾아보는 것이 공부다. 외국 건축물을 살피다보면 오래된 공장이 현대적인 쇼핑몰로 바뀐다거나 심지어는 곡물 저장창고가 공동주택으로 변신하는 사례를 꽤 많이 접한다. 마법처럼 놀라운 리노베이션(개보수)의 결과다.
국내에서도 서울 마포구에 숨겨져 있던 석유비축 공간이 그 쓰임을 다하면서 2017년 문화비축기지(설계자 허서구, ㈜ROA건축사사무소)라는 이름으로 재탄생한 것이 좋은 예다. 또 2012년 개최한 전남 여수엑스포에서는 사용을 멈춘 시멘트 사일로가 홍승표 한경대학교 교수의 창안으로 세상에서 가장 큰 파이프오르간으로 새로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비어 있는 대지에 새로운 건축물을 설계하는 것보다 기존 건축물을 활용해야 하는 리노베이션은 훨씬 복잡하다. 건물 상태를 세세하게 확인한 후 도면을 작성해야 하는 과정이 기다리고 있어서다. 철거하고 완전히 새롭게 건물을 세우는 것이 좋을 수도 있지만 그렇게 되면 원래 있던 구조물의 의미가 사라진다. 앞선 사례처럼 대규모 산업용 구조물이 점유한 거대한 공간은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다.
기존 건축물에 상상력을 불어넣어 변화를 이끌어낸다는 특별함 때문에 리노베이션 작업은 건축사에게도 매력적인 기회로 다가온다.
경기 부천에 있는 ‘아트벙커 B39’는 원래 도시의 어두운 단면을 대변하는 쓰레기 소각장이었다. 이 자리는 과거 도시 외곽이었으나 경계가 확장하면서 인근에 주거시설이 들어선 후 2010년 폐쇄됐다. 지방자치단체는 기존 시설을 철거하는 대신 리노베이션 과정을 거쳐 문화공간을 조성하기로 했다. 이렇게 되면 막대한 철거 비용을 아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 프로젝트는 스튜디오 케이웍스 김광수 건축사가 맡았다. 쓰레기가 활활 타던 39m 높이의 대형 벙커는 문화가 살아 숨 쉬는 곳으로 탈바꿈했다. 대규모 공간이 마련돼서인지 특별한 전시와 행사가 줄을 이었다. 최근에는 다양한 예능 프로그램의 배경이 되기도 하고,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방탄소년단(BTS)이 영상과 화보를 촬영하면서 코로나19 시대를 지나 수년 만에 재조명받게 됐다.
도시가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루려면 소각장과 같은 시설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런 시설을 무작정 혐오의 대상으로 여기는 것은 곤란하다. 설계자는 ‘소각장은 우리의 일상이며 현실’이라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 싶었나 보다. 소각장이 문화를 누릴 공간으로 변모한 것은 설계자가 의도한 ‘반전의 미학’이 담겨 있을 것이다.
어쩌면 ‘벙커 B39’의 기본 형태를 남기려는 설계자의 태도가 ‘예술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박정연 건축사 (그리드에이건축사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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