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자꾸 '법적' 책임과 '법적' 사각지대 얘기가 나올까…정치가 실종됐다

CBS노컷뉴스 윤지나 기자 2022. 11. 2. 0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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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수 국무총리가 1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이태원 사고 관련 외신기자 브리핑을 하고 있다. 총리실 제공


"한국 정부의 책임의 시작과 끝은 어디라고 보시는지?"

1일 이태원 압사 참사와 관련해 한덕수 국무총리에게 외신 기자가 한 질문이다. 한 총리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지는 건 정부의 무한 책임"이라고 답했지만 현재 정부당국의 입장과 태도에서 책임의 시작과 끝은 불분명하다. 책임 소재와 관련한 논의는 '법적' 책임에 한정돼 있고, 현행법 상 사각지대에 대한 반성만 있기 때문이다.

일단 공식 사과가 이태원 압사 참사가 발생하고 사흘만에 나왔다. 재난관리 주무부처인 행정안전부 이상민 장관은 사고 다음 날 면피성 발언으로 혹독한 비판에 시달린 뒤 이날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현안보고 자리에서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사과에도 불구, 일련의 사태 해결 과정에서 정부당국과 집권여당은 "경찰과 소방 인력을 배치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는 이 장관의 문제적 발언에서 크게 나아가지 않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현행 안전 관련 시스템이 참사 당일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점과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행정력이 부재했다는 점, 행정과 관리라는 '정치 영역'을 여전히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 이날 현안보고에서 행안부와 경찰 설명의 주요 내용은 평상시보다 경찰 병력이 늘었다는 것, 29일 사고 신고 접수 전 1시간 전부터 현장의 위험성을 알리는 급박한 신고가 폭주했는데도 초동 대처가 미흡했다는 것이다. 사전에 인파가 몰릴 것을 예상했음에도 '사전에' 적절한 대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비판이 국내 언론은 물론 외신에까지 나오고 있지만, 이 부분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국민의힘 양금희 대변인도 이날 오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 사건을 미리 막을 수 있었다고 판단하느냐'는 질문에 "복합적인 원인들이 작용했다"며 "사건 조사를 진행하고 있는 상황에서 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답했다.

'주최자 없는 행사'에 대한 안전관리 강화법을 추진하겠다는 정부와 여당의 태도 역시 법적으로 안전대책을 세워야 하는 의무가 없는 상황, 즉 법적 책임이 없다는 인식의 연장선상에서 비판 받는 대목이다. 현행 재난안전관리기본법이 지자체 등에 자발적인 민간행사의 경우 안전관리 계획을 수립할 의무를 지우지 않아 피해를 키웠다는 것이지만, 해당 법은 '국가와 지자체는 각종 사고로부터 국민의 생명·신체를 보호할 책무를 지고', '각종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태원 압사 참사를 수사 중인 서울경찰청 수사본부와 국립과학수사연구원들이 31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 압사 참사 현장을 합동감식하고 있다. 류영주 기자


이에 하위 세부규칙이 없다는 핑계까지 나오는 상황이지만, 경찰의 직무집행법은 "생명 또는 신체에 위해를 끼치거나 재산에 중대한 손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상황에서 경고와 억류, 피난 등 필요한 조치를 하도록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번 참사를 계기로 제도를 한 차원 더 구체화할 필요도 있지만, 이번 참사의 배경을 시스템의 미비나 '의무가 없으면 움직이지 않는' 관료제의 폐해로 국한하려는 태도가 설득력을 확보하기 어려운 이유다. "시스템을 움직일 판단, 정치가 없었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그런 말을 정부와 여당이 하기는 쉽지 않다(국민의힘 관계자)"는 솔직한 얘기도 들린다.

책임과 관련한 논의가 '법적으로' 규정된 책무를 다했느냐 여부로 흐르는 것에 대한 비판은 더불어민주당을 중심으로 제기된다. 이재명 당 대표는 이날 의원총회 모두발언에서 "정부 어느 누구도 이 사건에 대해서 책임이 있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며 "오로지 형사책임만 따지고 있다. 형사책임은 형사와 검사가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여당 내에서도 "법만 거스르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건데 국민 정서를 아예 모르는 것(국민의힘 관계자)", "법을 운운하는 건 지시를 받고 움직이는 실무 공무원들이나 할 말(초선 의원)"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31일 서울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핼러윈 참사'로 숨진 합동분향소정부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 박종민 기자


이런 흐름은 "옛날에 왕들은 비가 안 오면 곡기를 끊고 기우제를 지냈다. 비가 안 오는 것까지 리더가 책임지는데, 번화가 한복판에서 사람이 많이 죽었는데 정부가 아무 책임이 없다는 게 정치적으로 말이 되냐(국민의힘 중진 의원)"는 지적, 즉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지는 권력의 최정점에 대한 비판과 마주칠 수밖에 없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주최 측이 있느냐 없느냐 보다 국민의 안전이 가장 중요하다"며 "자치단체와 경찰이 권한과 책임을 구분할 것이 아니라 미리미리 협업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전날 '주최자 없는 자발적 집단 행사'를 언급한 윤 대통령을 향해 야권을 중심으로 "참사의 원인을 제도 미비 탓으로 돌리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온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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