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이 된 용바위 전설… 우주발사전망대의 황금빛 노을 [자박자박 소읍탐방]
전라남도에서도 남쪽 끝자락, 고흥은 대한민국에서 우주와 가장 가까운 땅이다. 로켓 발사가 있을 때마다 전 국민의 이목이 이곳으로 쏠린다. 지난 6월 21일 국내 기술로 개발한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KSLV-II)가 나로우주센터에서 날아올랐다. 가까이서 이 장면을 보려고 전국에서 관람객이 몰려들었다. 2027년까지 4차례의 추가 발사가 예정돼 있다. 고흥을 알릴 기회가 점점 늘어날 전망이다.
승천한 건 용이 아니라 로켓이었다
나로우주센터는 외나로도에서 바다로 툭 튀어나온 해안 언덕에 위치한다. 뒤편은 봉래산에 가려져 있고, 앞은 바다여서 하늘에서가 아니면 사실상 발사장을 보기 어렵다. 고흥에서 로켓 발사 장면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은 영남면 해안이다. 직선거리로 바다 건너 15㎞가량 떨어진 언덕에 ‘우주발사전망대’가 세워져 있다.
로켓 모양의 전망대에는 전시관과 카페가 들어서 있다. 2층 전시관으로 들어서면 중앙에 세워진 순한 표정의 개 동상이 눈길을 잡는다. ‘비극의 우주 개, 라이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1957년 11월 3일, 당시 소련이 발사한 '스푸트니크 2호’에 태워져 우주 공간으로 나간 최초의 지구 생명체다. 로켓 발사는 성공했지만 모스크바의 떠돌이 개 라이카는 발사 몇 시간 뒤 고열과 스트레스로 죽음을 맞았다고 한다. 인류의 우주 개척사는 아무도 없는 밀폐된 공간에서 공포에 떨었을 라이카에 빚진 셈이다.
7층 카페의 테이블은 회전전망대다. 아주 천천히 돌아가는 의자에 앉아 차 한 잔으로 느긋하게 주변 풍광을 음미할 수 있다. 바다 건너 길쭉하게 이어진 땅 끝자락에 나로우주센터가 있다. 육안으로 시설은 확인할 수 없지만 로켓이 발사되는 순간부터 궤적까지 가장 관찰하기 좋은 위치다.
바다를 정면에 놓고 오른쪽에는 남열해수욕장이 발아래 보이고, 그 너머로 다도해의 크고 작은 섬들이 점점이 떠 있다. 바다와 육지가 서로 감싸고 있는 모양새다. 왼쪽부터 외나로도와 내나로도, 대옥대도, 까막섬, 시호도, 비사도, 등받치기섬, 토끼섬 등이 이어지는데, 고흥에서는 베트남의 하롱베이 풍광과 비슷하다고 자랑한다. 특히 황금빛 바다에 섬 그림자가 드리워진 해질녘 풍광이 아름답다.
이렇게 노을이 황홀한데, 바로 아래 해변의 정식 명칭은 ‘남열해돋이해수욕장’이다. 서남해에서는 드물게 일출을 볼 수 있는 해변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듯하다. 길이 350m 정도인 아담한 해변은 밀가루처럼 고운 모래로 덮여 있다. 잔잔하게 밀려드는 바닷물이 모래사장에 널찍한 포물선을 그리다 천천히 모래 속으로 스며든다. 최근엔 서핑 해변으로 조금씩 알려지고 있다. 백사장 뒤편엔 30~40년 된 곰솔 250여 그루가 숲을 이루고 있다.
우주발사전망대에서 보는 다도해 풍광은 구불구불한 해안도로를 따라 영남면 소재지까지 이어진다. 영남면 서쪽 해안의 사도마을은 임진왜란 당시 전라좌수영 수군 진성이 있었던 곳이다. 조선 성종 22년(1491) 완성된 사도진성은 둘레 400~500m, 성벽 높이 3~4m가량인 것으로 알려졌다. ‘호남읍지’에 따르면 동·서·남 세 방향에 성문을 세웠고 객사와 동헌, 군기고와 선창 등이 있었다. ‘난중일기’에는 임진왜란 발발 직전인 1592년 2월 25일 이순신 장군이 초도 순시해 전투 준비에 소홀한 군사들을 징계한 내용도 기록돼 있다.
그러나 지금 마을에서 성의 흔적을 찾기는 어렵다. 다만 진성 축조 당시 심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은행나무 한 그루가 남아 있다. 500살이 넘었으니 어디서나 잘 보일 텐데, 골목 안에 뿌리 내린 나무는 가지가 다 잘려나가고 높이 5m 정도의 밑동만 남았다.
전라남도기념물로 지정돼 마을의 자랑거리였던 사도리 은행나무는 2011년 집중호우에 쓰러지고 말았다. 주민들이 자세를 바로 세우고 소생시키기 위해 정성을 다하고 있지만, 옛 풍채를 찾기는 힘들어 보인다. 그루터기에서 잔가지가 자라고 있지만 잘려나간 몸통 위에는 사철나무와 닥나무가 뿌리를 내렸다. 이 은행나무마저 고사하면 사도마을에는 조용한 어촌의 정취만 남는다. 마을로 들어가는 길에 바다에 떠 있는 작은 섬들이 몽환적인 풍광을 선사한다.
우주발사전망대에서 남열해수욕장 반대편으로는 해안 산책로인 ‘미르마루길’이 이어진다. ‘미르마루’는 용과 하늘을 의미한다. 탐방로를 따라 걸으면 시원한 바다 전망과 함께 용두암, 용굴, 용바위 등 파도가 빚은 기묘한 바위 군상을 감상할 수 있다.
이름에서 짐작하듯 생생한 용의 전설을 품은 길이다. 용암마을 앞 용바위는 탐방로의 끝이자 들머리다. 안내판에 온통 용에 관한 전설뿐이다. 용추에 살던 두 마리 용이 여의주를 얻기 위해 먼저 승천하려고 싸움을 벌였고, 이때 용암마을의 류시인이라는 인물이 꿈속에 나타난 백발노인의 충고대로 한 마리를 쏘아 떨어뜨렸다. 덕분에 용암마을은 불운을 면할 수 있었고, 살아남은 용은 여의주를 차지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용바위 중간 부위가 유독 굵은 선으로 깊이 파여 있는데, 바로 용이 승천한 흔적이라 한다. 절벽 위에는 여의주를 품은 황금빛 용 조형물을 세워 놓았다.
전설이 지배하고 있으니 과학적 설명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용바위는 벙거지 모자처럼 둥그런 봉우리에서 바위 절벽이 가파르게 떨어진 형상이다. 절벽 아래에는 폭 20~30m의 넓은 암반이 바다와 닿아 있다. 선착장에서 암반 위로 들어서면 발밑 바위마다 구멍이 숭숭 뚫렸거나 깊게 파인 모습이 확인된다.
방문객마다 '공룡 발자국인가' 또는 '화산 흔적인가'라는 의문을 품는다. 용이 승천했다는 곳에는 침목을 가로로 쌓아 놓은 것 같은 절리층도 보인다. 용암이 바닷물과 만나 굳어진 특이한 화산지형일 듯한데 설명이 없으니 궁금증만 더해진다. 전설보다 과학적 해설에 더 충실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낚시꾼들이 즐겨 찾는 용바위에서도 우주센터가 들어선 외나로도가 보인다. 승천의 꿈을 이룬 건 결국 전설 속의 용이 아니라 우주발사체 누리호였다.
그 절에서는 팔영산만 보인다
인근 팔영산도 용바위 못지않게 무수한 전설을 품고 있다. 해발 500~600m에 이르는 8개의 바위 봉우리가 능선을 이루고 있는 다도해국립공원의 명산이다. 그 아름다움을 설명하는 데에도 전설이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전설도 자연에 대한 경외심의 산물이라고 보면 나름 의미를 지니지만, 때로는 허황되고 허무하다.
옛날 중국 위나라 왕의 세숫대야에 8개 봉우리의 아름다운 산이 비추어졌다. 신하가 중국의 모든 산을 훑었지만 찾을 수 없었고, 이웃나라까지 수소문해 보니 바로 고흥의 팔영산이었다는 내용이다. 해외에까지 널리 알려진 산이라 자랑할 수도 있지만, 중국의 인정을 갈구하던 시대의 산물이라 그리 개운한 이야기는 아니다. 팔영산의 아름다운 그림자가 임금이 사는 한양까지 드리워져 그리 불렀다는 얘기도 전한다. 역시 서울 중심의 해석이다.
단순히 1~8봉으로 불리던 여덟 봉우리가 이름을 얻은 것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차례로 선비의 그림자를 닮았다 해서 유영봉, 성스러운 부처 같아서 성주봉, 전통악기를 빗대 생황봉, 사자 모양이라 사자봉, 다섯 신선이 놀던 오로봉, 하늘과 통하는 두류봉, 북두칠성을 닮은 칠성봉, 푸른 병풍을 두른 듯하다는 의미의 적취봉이라 불린다. 북측 능가사에서 출발해 영남면 소재지까지 종주하는 데에는 5~6시간이 소요된다.
북측 산자락 평지에 자리 잡은 능가사에 들어서면 팔영산의 여덟 봉우리가 더욱 우람하게 보인다. 능가사는 신라 눌지왕 때인 417년 아도 승려가 창건했다는 이야기가 전하지만 전문가들은 신빙성은 떨어지는 것으로 보고 있다. 남은 기록으로 보면 임진왜란 때 소실된 후 중창해 능가사로 이름을 바꾸었고, 영조와 철종 때도 중수를 거쳤다.
대웅전을 비롯해 범종과 목조사천왕상, 사적비 등의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는데, 사천왕문을 통과하면 시선이 자연스럽게 뒤편의 팔영산으로 옮겨진다. 8개 바위 봉우리에서 단풍이 폭포수처럼 쏟아지고 있어서다. 울긋불긋 단풍 물결이 곧장이라도 대웅전 기와지붕을 타고 흘러내릴 듯하다. 절간 초입의 카페 마루에 앉아 한참 지붕 위로 우뚝 솟은 팔영산 봉우리를 응시했다. 무념무상이다.
동쪽 자락에는 팔영산자연휴양림이, 서쪽 자락에는 팔영산편백치유의숲이 조성돼 있다. 이곳 편백숲은 1980년대 초 한 제지회사가 조성했다. 국내 최대 규모인 488ha에 이른다. 입구에 숲 치유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명상센터와 테라피센터가 위치하고, 주변에 10㎞에 이르는 숲길이 조성돼 있다. 수령 30~40년 정도의 편백나무가 좌우로 빽빽하다. 대체로 경사가 완만하고 군데군데 벤치가 놓여 있어 한나절 숲 산책을 즐기기에 그만이다. 족욕실, 반신욕실, 숲 치유 프로그램 등을 예약하면 좀 더 알차게 보낼 수 있다.
고흥=글·사진 최흥수 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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