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美에서 ‘이태원’을 보니…

김진명 워싱턴 특파원 2022. 11. 2.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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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에서 일어난 압사 사고 소식으로 주말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서울 한복판에서 이런 사고가 난다는 상상조차 해본 적 없기에 더 충격이었다. 그런 한편 이런 사고도 일어날 수 있다는 상상을 해본 적 없는 것이 우리의 문제였을까란 뒤늦은 생각도 하게 된다.

미국 문화라고 할 수 있는 ‘핼러윈’을 이번 사고의 원흉으로 지목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마음도 조금은 알 것 같다. 다만 이번 사고를 보면서 미국 문화에서 참고할 만하다고 느낀 점들도 공유하고 싶다. 앞으로 다른 사건·사고 예방이나 대응에 도움이 되면 좋겠다.

우선 이태원에 도착한 구급차가 교통 대란과 인파에 막혀 제때 구조 활동을 시작하지 못했다는 것이 안타깝다. 워낙 길이 좁은 데다 밤이 늦어 현장 상황이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이라면 어떻게든 길을 터주려고 모두가 더 많은 노력을 하지 않았을까란 생각도 해보게 된다.

지난 10월 30일 새벽 압사 사고가 난 서울 용산구 이태원 도로에서 구급차들이 사망자들을 이송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뉴스1

많이 알려진 사실이지만 미국에서는 소방차나 기타 응급 차량이 사이렌이나 경광등을 켜고 달려오면 다른 차량들은 즉시 길가로 비켜 정차해야 한다. 위반 시 벌금도 무겁거니와 ‘구호 활동을 방해하는 무식한 사람’이란 비난의 시선도 따갑다. 한국에서 이런 얘기를 들을 때면 ‘미국은 길이 넓으니까’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워싱턴DC 시내의 좁고 정체된 도로에서도 사이렌 소리만 들리면 모든 차량들이 필사적으로 비킬 공간을 찾아 길을 터주는데 볼 때마다 감탄이 나온다. ‘응급 차량에는 무조건 길을 양보해야 한다’는 교육을 어려서부터 받고 자란 사람들은 반응 속도 자체가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또 하나는 경찰의 교통 통제나 안전 조치에 대한 인식이다. 물론 지금 보도되는 것처럼 경찰이 압사 가능성을 신고받고도 제대로 조치하지 못했다면 옹호하기 힘든 잘못이다. 다만 일반적으로 안전을 염두에 둔 경찰의 사전 통제가 어떻게 받아들여 왔는지는 생각해 볼 만한 문제 같다. 상인회가 경찰의 통제를 원하지 않았다는 보도도 있고, 경찰이 사전에 강하게 통제를 했다면 과도한 자유 침해라는 항의를 받았을 것이란 반론도 있다.

워싱턴DC에 살면서 놀란 점 중의 하나는 경찰 혹은 비밀경호국의 사전 예고 없는 교통 통제가 생각보다 더 잦다는 것이다. 정부 요인들이 많은 도시라서 그런 점도 있겠지만 나중에 공개된 교통 통제 이유를 보면 안전상의 문제일 때도 많다. 누군가 차량을 타고 건물로 돌진했다든지, 수상한 짐 꾸러미가 발견돼 내용물을 확인해야 한다든지, 그런 경우다.

경찰이 갑자기 가던 길을 막고 돌아가라고 지시하면 미국인들도 투덜거리기는 한다. 하지만 한국에서처럼 큰 소리로 경찰에게 이유를 따져 묻거나 항의하는 일은 여태 본 적이 없다. 공권력이 세기 때문도 있겠지만 ‘필요한 일일 것’이란 믿음도 있는 것 같다. 앞으로 주최 단체가 없는 행사의 안전 관리를 잘 하려면 이런 문화도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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