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아버지와 짜장면
어린 시절 잘생긴 아버지는 나의 자랑이었다. 어머니에게 결혼한 이유를 물으면 “잘생겨서”였다. 외할아버지는 인물값 한다며 결혼을 반대했다. 어머니는 나를 혼수 삼아 결혼에 성공했고, 철없는 딸은 미남 아버지를 부러워하는 친구들 옆에서 괜히 우쭐대며 대를 이어 2호 팬이 되었다.
그 모습이 파킨슨을 오래 앓으며 확연하게 달라졌지만, 다행히 초기부터 치료를 꾸준히 받아 치매로 가는 시간을 늦추고 있었다. 몇 해 전, 남편과 부모님을 모시고 여행할 때였다. 배려심 많은 아버지가 음식에만 집중하며 대화하지 않자, 남편이 변화를 눈치채고는 마음 준비를 시켰다.
가장 먼저, 상황을 믿지 않으려 하는 어머니도 걱정이었다. “아니야. 원래 식성이 까탈스럽지 않고, 말수가 없는 편이잖아. 산책도 필사도 얼마나 열심히 하는데 벌써 그럴 리 없어….” 흐린 말 뒤에는 ‘치매’를 외면하고 싶은 복잡한 어머니의 심정이 묻어났다.
그러다 얼마 전 친정에 갔더니 아버지가 내게 누구냐고 물으셨다.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아버지는 다시 “어디서 왔어요?” 물으시고는 드시던 짜장면에 집중하셨다. 낯선 이로 대하는 아버지를 채근하지 않고 마음속에 준비한 그 순간을 맞았다. 나란히 눈을 맞추고 “선운사에서 동백꽃 보고 왔어요. 짜장면 맛있어요?” 하니 “최고예요”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저 짜장면을 맛있게 드셨다.
목이 메어 다음 말을 못 잇고 바라만 보았다. 어찌나 맛나게 드시는지 중국집 광고에 등장해도 충분한 모습이셨다. 냅킨으로 연신 입가를 닦으며 드시는 손길이 느리고 둔하지만, 여전히 미남이시다. 그렇게 기억회로가 깜빡거리며 문제를 일으킨 순간은 내 아버지의 또 다른 행복한 모습으로 박제되었다.
그날 이후, 아버지와 식사하는 주 메뉴는 짜장면이 되었다. 아버지는 나를 반기며 변함없이 짜장면을 맛있게 드시지만, 잊는 것이 점차 늘어간다. 바람이 있다면 즐거운 추억만을 곱씹으시고 내내 빙그레 웃으실 수 있기를 소망한다. 그리고 딸은 잊더라도 짜장면은 오랫동안 맛있게 즐기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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