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무대, 풍요로운 연기력
다문화 2세 등 한국 속 ‘外來人’
5편의 이야기를 핏줄처럼 하나로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만났던 남녀가 서울 한 등산로에서 재회한다. 순례길 중 사리아에서 겪은 일을 회상하는데, 현지인이 이렇게 묻더란다. “코리안(한국인)들이 왜 여기에 오나?” 걷는 것까지 왜 남의 나라에 와서 하냐는 뜻이다. 한국에서 온 입양아를 가족으로 둔 그 외국인의 눈으로 보면 한국은 정말 이상한 나라다.
이 연극 ‘오슬로에서 온 남자’(박상현 작·연출)는 짤막한 이야기 5편을 하나로 묶은 신작이다. ‘사리아에서 있었던 일’부터 이태원 부동산을 배경으로 실향민들을 추억하는 ‘해방촌에서’, 작고한 아버지가 남긴 땅을 어떻게 할지 논의하는 ‘노량진-흔적’, 어릴 적 노르웨이로 입양됐다 생모를 찾아 방한한 ‘오슬로에서 온 남자’를 거쳐 한국에 시집온 베트남 엄마에게서 태어난 다문화 2세의 이야기 ‘의정부 부대찌개’까지 핏줄과 신경처럼 절묘하게 이어져 있다. 입양이나 월남(越南), 국제결혼 등으로 뿌리 뽑혀 다른 땅에 이식된 사연들이라는 게 공통점이다.
좁은 공간에 피고 지는 다섯 가지 에피소드는 연극성을 절대적으로 요구한다. 강애심, 엄옥란, 백익남, 이상홍, 박윤정 등 배우들은 바위와 의자 몇 개만 놓여 있는 가난한 무대에서 말맛과 연기력으로 고요한 몰입을 부른다. 마치 맨몸으로 암벽을 타는 솜씨다. 작가 겸 연출 박상현은 잊고 있던 기억이나 상처, 그리움 등 흩어진 천 조각들을 모아 담백하면서도 우아한 조각보를 지어낸다. 이 연극은 혼잣말이나 잠꼬대가 아니라 우리 시대의 한 단면이다.
지난 세기에 외래(外來)는 선망과 과시 또는 경원시와 비하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이제 건설 현장과 공장, 농장과 식당이 외국인의 노동력 없이 굴러가기는 어렵다. 우리 공동체 바깥에서 겉돌던 외래가 지금은 우리의 일상 속에, 뼈와 살 속에 스며 있는 셈이다. 무심하게 잊고 있던 시간의 조각들을 하나의 플롯으로 엮는다.
‘오슬로에서 온 남자’는 한때 우리가 외면해왔던 해외 입양, 다문화가족, 성소수자 등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들에게 준 냉대와 무관심, 상처의 흔적들을 내시경처럼 훑는다. 껄끄러운 현실과 직면하게 한다. 때로는 부끄럽고 때로는 미안하다. 13일까지 대학로 나온씨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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