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숲길] ‘우리는 행복해요’

국제신문 2022. 11. 2.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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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미술’은 공공장소에 설치, 전시되는 일반 대중을 위한 미술을 의미하며 영국의 미술행정가 존 윌렛이 그의 저서 ‘도시 속의 미술, 1967’을 통해 일반인들의 정서에 개입하는 미술개념으로 고안한 용어이다. 전통적 공공미술이 공공의 개념을 공공장소에만 국한시킨 반면, 새로운 공공미술은 장소를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소통의 공간으로 간주하여 공동체와 관람객의 참여를 유도하고 대중이 공감할 수 있는 작품으로 구성하는 경향을 가진다.

20세기 초 전제주의나 전체주의 국가들은 도심 중앙에 지도자의 동상 등, 권력의 정당성을 강조하는 정치선전 도구로 공공미술을 활용하였다. 1930년대 미국은 경제 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해 희망메시지를 담은 벽화, 포스터 등 공공미술을 장려하기도 했다. 그리고 1963년부터 공공건물의 건축비용 중 1%를 미술품 제작비용으로 활용하는 ‘건축 속의 미술’ 제도를 시행했고, 이후 이 제도는 다른 나라의 공공미술 프로그램의 모델이 되었다. 우리나라는 1972년에 3000㎡ 이상의 건축물에 건축비용 1%를 미술품에 할당하는 제도를 권장사항으로 마련했고, 1995년에 ‘건축물 미술장식제도’를 시행하여 의무적으로 1만㎡ 이상의 건축물에 건축비용 1%를 미술품설치에 부담하게 한 이후 본격적으로 공공미술이 활성화되었다.

현대의 공공미술은 장소성에 대한 풍부한 담론을 생성하는 미술의 중요한 새로운 장르로서 부각되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대지미술가 크리스토 자바체프가 2005년 뉴욕 센트럴 파크에 설치한 ‘The Gates’는 고층빌딩으로 밀집한 삭막한 도시를 아름답게 펄럭이는 황색 깃발로 수놓아 뉴욕이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을 만한 낭만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도시라는 자부심을 뉴욕시민에게 심어주었다. 그러나 2006년 서울 청계천에 설치한 클래스 올덴버그의 ‘스프링’은 한국적인 미를 찾아볼 수 없는 디자인은 차치하고라도, 도시 정체성과 청계천이 지니는 장소성과 역사성을 담고 있지 않아 시민의 공감대 형성에 실패한 예로 아쉬움을 남긴다.

일반 대중을 위한 공공미술에서 대중의 반응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미술가의 개념과 일반 시민의 반응이 엇갈리는 경우도 많다. 미를 판단하는 기준은 매우 주관적임에도 불구하고 시민과 충분히 소통하고 공감할 수 있는 작품들도 단순히 외관적으로 흉물스럽게 여겨져 논란의 대상이 되는 안타까운 사례도 있다. 2017년 서울역 광장에 설치된 황지해의 ‘슈즈트리’는 3만 켤레의 신발과 폐타이어 등으로 만든 높이 17m, 너비 10m, 길이 100m의 거대한 조형물이다. 그러나 ‘흉물스럽고 쓰레기더미 같다’는 시민들의 반응으로 곤욕을 치렀다. 삶의 애환을 고스란히 담은 서울역에서 누군가 신고 오갔던 오래된 신발은 우리들의 지난한 삶의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신발이 결국은 꽃과 나무에 다다르기를 바라는 작가의 마음을 몰라준 것이 아쉽다. 2020년 부산 초량천변에 설치된 최정화의 ‘초량살림숲’ 역시 흉물 논란에 휩싸여 올해 말 부산현대미술관으로 이전하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초량시장과 그 주변에 살았던 사람들의 살림살이는 이 지역의 역사이고 삶, 그 자체이다. 작가는 이 살림살이들을 통하여 그들의 기억을 환기해주며 그들의 삶이 소중하고 가치 있는 예술이라고 말하고자 한 듯하다.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이 지역에서 보낸 나는 고향의 기억을 살려주는 ‘살림살이’들을 자주 못 보게 되어 아쉽지만 지극히 평범했던 나의 추억과 기억을 예술로 만들어준 작가에게 감사한다.


2004년 부산비엔날레에 설치한 박이소의 초대형 간판 ‘우리는 행복해요’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실상 불행하고, 행복해지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것으로 보여 ‘우리는 행복한 가’에 대한 물음에 작가가 역설적으로 대답한 작품이다. 공공미술을 위한 이 드로잉은 작가가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공공장소에 설치되지는 못했지만 나는 지금도 지나치는 곳곳에서 박이소가 던진 강렬한 메시지 ‘우리는 행복해요’를 읽으며 ‘나는 행복해요’를 마음속으로 되새긴다. 공공미술에서 텍스트의 힘은 강하다.

배미애 갤러리이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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