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저무는 ‘베이다이허’ 시대

이종섭 기자 2022. 11. 2.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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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수도 베이징에서 동쪽으로 300㎞ 정도 떨어진 곳에 ‘베이다이허(北戴河)’라는 해안 휴양지가 있다. 매년 여름 중국 전·현직 지도부가 모여 중요 현안을 논의하는 비밀회의가 열리는 장소다. 과거에는 지도부 인사 문제도 당의 원로와 각 계파가 모두 모인 이 회의에서 사실상 결정되는 것으로 알려져왔다. 하지만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집권 이후 베이다이허 회의의 위상이나 기능이 크게 약화됐다는 분석이 많았다. 최근 몇 년 동안에는 시 주석이 아예 베이다이허에 가지 않거나 마지못해 얼굴만 비칠 뿐 실질적으로 이곳에서 아무런 의사결정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설도 있었다. 지난달 22일 폐막한 중국 공산당 제20차 전국대표대회(당 대회)는 이런 소문을 확인시켜주는 듯했다.

이종섭 베이징 특파원

당 대회 폐막식 당일 갑자기 누군가에 이끌리듯 행사장을 빠져나간 후진타오(胡錦濤) 전 국가주석의 모습은 하나의 상징적인 장면이다. 외신을 통해 공개된 후 전 주석 퇴장 전 모습은 그가 강제로 끌려나간 것이라는 추측에 무게를 더했다. 앞에 놓여 있던 차기 지도부 인사 명단을 확인하려 하자 반발이나 돌출 행동을 우려해 그를 강제로 내보냈다는 것이다. 한편에서는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된 ‘정치적 숙청’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사실 이러한 추측 가운데 어느 하나도 완벽한 설득력을 갖진 않는다. 진실을 확인할 길도 없다. 다만 분명한 건 의도했던 의도치 않았던 전 세계가 후 전 주석의 퇴장을 시 주석의 완전한 권력 장악과 원로 정치의 종식을 의미하는 상징적 신호로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장면은 다음날에도 있었다. 지난달 23일 공산당의 새 지도부로 선출된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7명이 내외신 기자회견장에 차례로 입장하는 순간 장내가 술렁였다. 예상했지만 예상을 뛰어넘는 결과였다. 새로운 지도부 전원이 시 주석 측근들로 채워졌다. 계파 안배 차원에서 적어도 상무위원에는 포함될 것으로 예상됐던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 출신의 후춘화(胡春華) 부총리는 보이지 않았다. 공산당 내 주요 계파로 후 전 주석이 이끌었던 공청단의 완전한 몰락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시 주석은 이번 당 대회를 통해 당의 원로와 다른 계파들을 모두 몰아내고 권력을 독점하며 온전한 ‘시진핑의 시대’를 알린 셈이다.

베이다이허 회의 얘기로 돌아가보자. 과거 관례로 보면 당 대회를 앞둔 올여름 베이다이허 회의에서는 원로들의 의견 수렴과 계파 간 조율을 통해 차기 지도부 구성이 논의됐어야 한다. 결과를 놓고 보면 이런 절차는 생략되거나 무시됐을 가능성이 크다. 공산당 일당체제에서 일정 부분 권력 독점을 막는 역할을 했던 장치들이 모두 사라진 것이다.

전 세계가 ‘절대 권력’을 확보한 시 주석의 다음 행보를 불안한 시선으로 지켜보고 있다. 드러나지 않지만 중국 내부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당 대회를 전후해 중국에서는 반체제성 구호가 담긴 현수막과 낙서 시위가 이어졌다. 여론이 철저히 통제되는 사회에서 정확한 민심을 읽기란 쉽지 않다. 짧은 중국 생활에 비춰 강력한 사회적 통제 속에서 앞으로 5년, 10년을 더 숨죽여 살아가야 하는 민초들의 마음을 지레짐작해볼 뿐이다. 낙서 시위에 동참한 한 대학생은 외신에 “오랫동안 잊고 있던 해방감을 느꼈다”고 했다.

이종섭 베이징 특파원 noma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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