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없는 십자가상[왕은철의 스토리와 치유]〈267〉
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석좌교수 2022. 11. 2. 03:02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소재만으로도 충분히 슬픈데 내막을 알면 더 슬퍼지는 예술품이 있다.
조각가 권진규의 건칠(乾漆) 작품 '십자가 위 그리스도'가 그러하다.
'십자가 위 그리스도'는 교회의 의뢰를 받아 제작된 작품이다.
'십자가 위 그리스도'라는 작품에 십자가가 없는 이유다.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소재만으로도 충분히 슬픈데 내막을 알면 더 슬퍼지는 예술품이 있다. 조각가 권진규의 건칠(乾漆) 작품 ‘십자가 위 그리스도’가 그러하다. 서른세 살의 나이에 십자가형을 받고 세상을 떠난 예수를 형상화한 작품이다. 그런데 조각가는 삼베에 건칠 작업을 해 예수의 형상을 만들어 슬픔을 배가시킨다. 삼베의 거칠고 까끌까끌한 질감이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가 느꼈을 고통과 고뇌를 반영하는 것만 같다.
‘십자가 위 그리스도’는 교회의 의뢰를 받아 제작된 작품이다. 그런데 교회는 좀 더 세련되어 보이는 성상을 원했던 모양이다. 고통에 일그러지고 우울하고 다소 평범해 보이는 예수의 모습이 그들의 눈에는 차지 않았다. 그들은 신성보다는 평범한 인간성이 두드러지는 모습을 보고 가져가지 않겠다고 했다. 우리라고 달랐을까. 겉모습에 대한 집착은 우리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제는 그가 위대한 근대 작가라는 평가를 받지만, 우리도 그때 그 자리에 있었다면 교회가 그랬듯 그의 작품을 냉대했을지 모른다. 하기야 당대의 평론가들도 그랬다.
작품에 대한 냉대에 상처를 받은 조각가는 작품에서 십자가를 떼고 자신의 작업실에 걸었다. 그것은 그가 3년 후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런 상태로 걸려 있었다. ‘십자가 위 그리스도’라는 작품에 십자가가 없는 이유다. 그런데 십자가의 부재가 십자가를 더 환기하게 만든다. 안 보이니까 더 생각하게 된다고 할까.
작가가 이 작품을 제작한 것은 스스로 삶을 마감하기 3년 전인 1970년, 마흔여덟 살이었을 때다. 그는 건칠을 통해 예수의 마지막 모습을 재현하려 했다. 고통으로 일그러지고 거칠어진 예수의 모습을 담아내고 싶었던 거다. 사람들은 우아함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그 모습을 외면하다가 오랜 세월이 지나서야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십자가 없는 ‘십자가 위 그리스도’는 유난히도 긴 팔을 벌리고 내내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같은 고통과 슬픔 속의 우리를 안아주려는 것처럼.
‘십자가 위 그리스도’는 교회의 의뢰를 받아 제작된 작품이다. 그런데 교회는 좀 더 세련되어 보이는 성상을 원했던 모양이다. 고통에 일그러지고 우울하고 다소 평범해 보이는 예수의 모습이 그들의 눈에는 차지 않았다. 그들은 신성보다는 평범한 인간성이 두드러지는 모습을 보고 가져가지 않겠다고 했다. 우리라고 달랐을까. 겉모습에 대한 집착은 우리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제는 그가 위대한 근대 작가라는 평가를 받지만, 우리도 그때 그 자리에 있었다면 교회가 그랬듯 그의 작품을 냉대했을지 모른다. 하기야 당대의 평론가들도 그랬다.
작품에 대한 냉대에 상처를 받은 조각가는 작품에서 십자가를 떼고 자신의 작업실에 걸었다. 그것은 그가 3년 후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런 상태로 걸려 있었다. ‘십자가 위 그리스도’라는 작품에 십자가가 없는 이유다. 그런데 십자가의 부재가 십자가를 더 환기하게 만든다. 안 보이니까 더 생각하게 된다고 할까.
작가가 이 작품을 제작한 것은 스스로 삶을 마감하기 3년 전인 1970년, 마흔여덟 살이었을 때다. 그는 건칠을 통해 예수의 마지막 모습을 재현하려 했다. 고통으로 일그러지고 거칠어진 예수의 모습을 담아내고 싶었던 거다. 사람들은 우아함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그 모습을 외면하다가 오랜 세월이 지나서야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십자가 없는 ‘십자가 위 그리스도’는 유난히도 긴 팔을 벌리고 내내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같은 고통과 슬픔 속의 우리를 안아주려는 것처럼.
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석좌교수
Copyright © 동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동아일보에서 직접 확인하세요. 해당 언론사로 이동합니다.
- “압사 위험” 4시간전부터 신고… 경찰 조치 없었다
- [송평인 칼럼]젊은이들이 위험한 줄도 모르고 위험에 처한 상황
- 경찰, 참사 이틀뒤 시민단체-보도 동향 수집… “정부 성토 조짐”
- 인파 몰린 ‘T자 골목’에 불법증축 건축물 6개
- [현장르포]뉴욕 핼러윈 200만명 퍼레이드, 4가지 안전 비결 ①출구공간 확보 ②입장 구역은 제한
- 10대 살리고 6시간 구조한 예비역… “1명만 더” 외친 ‘난간義人’도
- [단독]용산署, 참사 사흘전 “인파 몰려 사고 우려” 또 다른 보고서 올렸다
- “유족 한국 못와”… 시신 운구비용 1000만원 친구들이 모으기로
- 영정 앞에 ‘정규직 전환증’… 자축하러 간 핼러윈이 비극으로
- “얼룩진 신발, 부러진 안경… 얼마나 힘들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