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 기자의 영화 人 a view] 넷플릭스 ‘20세기 소녀’ 청춘의 대명사 김유정
17세 보라, 연두 첫사랑 관찰 로맨스
- 1999년 고교생 첫사랑 이야기
- 방우리 감독 자전적인 스토리
- 시나리오 작업 때부터 주연 낙점
- 공개 3일 만에 비영어 부문 2위
- 경험해 본적 없는 세대의 사랑
- 자신만의 특유 캐릭터로 소화해
- 30대 주인공役 한효주도 눈길
순수하고 발랄한 청춘의 대명사인 김유정이 넷플릭스 영화 ‘20세기 소녀’에서 17세 고교생이 되어 싱그러운 첫사랑을 떠올리게 만든다. 광고에 아역으로 데뷔해 ‘잘 자란 아역 스타’의 길을 걸으며 ‘국민 여동생’을 거쳐 이제는 첫사랑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는 모습으로 다가왔다.
방우리 감독의 첫 장편 데뷔작인 ‘20세기 소녀’는 1999년을 배경으로 17세 소녀 보라가 절친 연두의 첫사랑을 이뤄주기 위해 사랑의 큐피드를 자처하며 벌어지는 첫사랑 관찰 로맨스 영화다. 김유정은 절친의 짝사랑을 이루어주기 위해 고군분투하다 자신이 첫사랑에 빠지게 되는 보라 역을 맡았다. 지난달 21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20세기 소녀’는 3일 만에 넷플릭스 글로벌 TOP 10 영화(비영어) 부문에서 2위를 차지했다. 한국을 비롯해 일본 대만 브라질 멕시코 등 총 33개국의 톱 10 리스트에 오르며 10대 시절의 첫사랑을 전 세계에 전파하고 있다.
최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유정은 “10대 친구들이나 저를 포함한 20대 초반 친구들은 이 영화가 새롭기도 하고, 내 바로 옆에 있는 이야기같이 느껴질 것 같다. 반대로 그 당시를 경험하셨던 분들은 뭔가 추억을 꺼내 보는 느낌이 들 것”이라며 “해외에서 좋아하는 이유는 각 나라마다 첫사랑에 대한 감성이 있을텐데 우리 이야기가 새롭게 느껴지지 않을까 한다”고 ‘20세기 소녀’가 폭 넓게 사랑받고 있는 이유를 분석했다.
‘20세기 소녀’는 지난달 부산국제영화제(BIFF)의 한국 영화의 오늘-스페셜 프리미어 부문에 초청돼 관객과 먼저 만났다. 당시 김유정은 영화제를 찾아 관객과의 대화, 오픈 토크 등 바쁜 일정을 소화했다. 그는 “일정이 많긴 했는데 좋은 기운을 많이 받았다. 힘들었지만 에너지가 더 올라오더라. 좋은 추억을 많이 쌓고 왔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이어 “‘20세기 소녀’가 넷플릭스에서 공개되기 때문에 극장에서 볼 수 없는데, 영화제에 초청돼 큰 스크린으로 볼 수 있었다. 극장에서 보니 다른 느낌이더라. 뭐랄까 더 크게 감정이 오기도 했고, 제 연기 모니터도 더 자세히 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영화를 보고 나서 바로 관객분들과 대화를 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고 말했다.
■세 가지 연기 포인트
자신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모티브로 직접 시나리오를 쓴 방 감독은 김유정의 사진을 붙여 놓고 집필할 정도였다. 방 감독은 “모두가 사랑하는 배우 김유정의 기분 좋은 에너지가 ‘보라’의 모든 것을 응원할 수 있게 해 줄 거라 생각했다”고 했는데, 그만큼 보라 역에 김유정은 적역이었다. 김유정 역시 이 작품을 선택하게 되었던 이유로 “지금 이 시기의 제가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는 작품이었다. 학생 때의 풋풋한 감정, 친구와의 우정이 크게 다가왔고 작품 속 캐릭터들의 매력이 각각 뚜렷한 것도 좋았다”며 “방 감독님과 만난 뒤 바로 ‘20세기 소녀’의 감성에 빠져들 수 있었다”고 호응했다.
1999년생인 김유정이 1999년의 고교생을 연기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그녀는 “제가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시대이기 때문에 그때 그 감성을 어떻게 살릴까 고민을 많이 했다. 그리고 그 시대보다는 보라의 나이에 좀 더 초점을 맞춰 생각했다. 그 나이에만 겪고, 그 나이에만 느낄 수 있는 감정들이 분명히 존재하니까 말이다”고 했다. 연기의 포인트를 10대 시절에만 느낄 수 있는 우정과 사랑에 초점을 맞췄다는 설명이다.
또 하나의 걸림돌은 첫사랑의 정서를 실제 첫사랑을 느낀 사람처럼 표현하는 것이었다. 김유정은 “일단 사랑의 감정을 직접 겪어본 적이 많이 없다. 물론 연기로는 간접적으로 체험을 굉장히 많이 했지만 그것도 조금 독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며 “이 영화는 듣기만 해도 설레게 하는 ‘첫’이라는 포인트가 있지 않나. 첫사랑의 ‘첫’이 포인트인데 로맨틱 코미디 연기를 많이 했기 때문에 새롭게 보일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했다”고 두 번째 연기 포인트를 짚었다. 첫사랑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것에 대해서는 “아직은 저는 확실하게 잘 모르겠다. 어떤 수식어가 붙는다는 것은 작품 자체를 좋게 봐주셨다는 것이어서 사실 감사한 일이긴 하다”며 특유의 눈웃음을 지어 보였다.
세 번째 연기 포인트는 바로 절친인 연두와의 우정이었다. 학창 시절의 우정은 뭔가 시기적으로 특별하고, 우정과 사랑 사이에 놓였을 때는 미묘함이 있기 때문이다. 김유정은 “사실 전 학교를 굉장히 열심히 다녔고, 친구들과도 열심히 놀러 다녔고, 열심히 공부했기 때문에 지금도 학창 시절 친구들과 가장 친하게 지낸다. 감정 이입이 너무 잘 돼서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간 것 같은 기분도 느꼈다”며 “보라와 연두가 싸우는 장면에서는 눈물이 주체가 안 됐다”고 친구와의 우정 연기에 자신감을 보였다. 그리고 “보라의 목소리 톤이나 습관 행동 말투 등 정말 많은 고민을 했었다. 좋아하는 노래, 우는 모습, 웃는 모습 등 보라의 모든 것을 하나하나 만들어가며 영화를 찍었다”고 강조했다.
■1999년으로 여행 떠난 20년 차 배우
‘20세기 소녀’의 배경은 세기말이자 밀레니엄을 앞둔 1999년이다. 당시는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넘어가는 시기였다. 그래서 아직 VHS 비디오테이프가 있었고, 핸드폰과 삐삐가 공존하기도 했다. 그래서 보라네 집은 ‘보라비디오’ 가게를 운영하고, 주인공들의 연락 수단은 삐삐와 공중전화다.
김유정은 “비디오 가게 세트에 비디오테이프가 굉장히 많았는데, 그중 ‘아마겟돈’(1998)이라는 영화가 너무 궁금해서 봤는데 너무 멋있었다. 공중전화는 어릴 때 써봤던 물건이고, 정말 새로웠던 건 삐삐와 플로피 디스크였다”며 1990년대 물건들에 대한 호기심을 보였다.
‘20세기 소녀’가 김유정에게 특별한 점은 배우 한효주가 30대의 보라 역으로 특별출연한다는 점이다. 과거 드라마 ‘일지매’ ‘동이’에서 한효주의 아역을 한 바 있는 김유정은 “이번이 세 번째로 아역, 성인 배우로 인연을 맺은 것인데, 효주 언니가 좋다고 해줘서 작품을 같이 하게 됐다. 너무 감사한 일”이라며 한효주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이어 “보라가 성인이 됐을 때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다. 그런데 효주 언니가 연기해 준 보라가 너무 좋았다”며 “작품 공개 후 웃으면서 보고, 또 슬퍼서 눈물도 흘렸다고 하더라. 앞으로도 같이 호흡을 맞춰 연기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2003년 아역 광고 모델로 시작해 벌써 20년 차의 녹록지 않은 연기 경력을 지닌 김유정은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 ‘일단 뜨겁게 청소하라’ ‘편의점 샛별이’ ‘홍천기’, 넷플릭스 영화 ‘제8일의 밤’ ‘20세기 소녀’ 등을 통해 20대를 대표하는 배우로 입지를 굳게 다지고 있다.
나이에 비해 현장 경험이 많다 보니 촬영장에서도 베테랑 배우로 인정해주는 분위기가 있다. 김유정은 “제가 너무 많이 어렸을 때부터 활동을 했고, 경험을 많다고 해도 아직도 모르는 게 많고, 더 배워야 한다는 마음가짐을 항상 되새기면서 촬영 현장에 간다”며 겸손함을 잃지 않으려는 자세를 보였다.
김유정은 다음 행보로 류승룡 안재홍이 주연을 맡은 넷플릭스 드라마 ‘닭강정’에 특별출연한다. 피로회복 기계인 줄 알고 의문의 기계에 들어갔다가 닭강정으로 변해버리는 민아 역을 맡았는데, 어떤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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