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적 성장 이끈 당 지도체제, 질적 성장 발목 잡는 족쇄로
- 투자 주도로 年10% 성장 옛말
- 공급·인프라 과잉의 위기 직면
- GDP 대비 부채 280%로 급등
- 고용 없는 성장과 양극화 심화
- 공산당 주도 한계로 국가지체
- 견제와 균형 갖춰야 부패 해소
- 시진핑 체제 권력 강화만 몰두
- 선진경제 되려면 자유 보장을
중국은 지금 두 가지 트랩에 갇혀 있다. 밖으론 미국과 패권 경쟁을 하며 투키디데스 함정에 빠져 있고, 안으로는 양적 성장의 한계인 중진국 함정에 빠져 있다. 중진국 함정이란 저개발국이 땀 흘려 일하고 검약하게 모아 중진국 수준에 이르렀으나 단박에 선진국으로 도약하지 못하고 상당 기간 정체·둔화하거나 심지어는 뒷걸음치는 현상을 말한다.
대국 굴기도 어렵지만 선진국 굴기는 더욱 힘들다. 전혀 다른 접근 방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성적이 반에서 30등 하던 학생이 심기일전 잠도 줄이고 공부 시간도 늘려 외우기만 하면 되는 과목에 집중한다든지 해서 10등까지는 오를 수 있다. 하지만 거기서 다시 5등이나 3등까지 치고 올라가려면 양적 접근만으론 부족하다. 하드 트레이닝을 넘어 공부하는 방식을 달리해야 한다. 내친김에 1등이 되려면 아예 다른 사람이 되어야 한다.
■중진국 함정에 빠지는 이유
국가의 성장과 발전도 비슷한 이치다. 땀의 경제와 두뇌의 경제는 엄연히 다르다. 머리를 써야 하는 대목에서 헤딩만 하고 있을 순 없다. 그런 변화가 쉽게 이뤄지지 않는 이유, 즉 중진국 함정에 빠지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지 못한 때와 성장 과정에 잠복해 있던 여러 문제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경우다. 두 경우 다 리더십의 역할이 결정적이다. 나라마다 다르지만 대체로 소득 수준 1만 달러 전후 때 겪게 된다.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지 못해 주저앉은 사례가 브라질이고, 여러 사회경제적 문제를 관리하지 못해 헤매는 경우가 아르헨티나다. 브라질은 자원 부국이지만 부가가치가 높은 제조업과 IT 서비스 산업에서 뒤처져 소득 수준 8000달러 정도에 머물러 있다. 1970년 전후해서 한 때 이민 붐이 일었을 정도로 기회의 땅이었고 미국에 버금가는 선망의 대상이었으나 아직도 덩칫값을 제대로 못 하고 있다. 아르헨티나는 만연한 부패와 무능한 정부의 포퓰리즘 탓에 광활한 목초지와 풍부한 광산 등 천혜의 조건을 다 까먹고 있다. 1950년대까지 1인당 국민소득 수준이 일본의 3배였던 아르헨티나는 이후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22번 받았고 국가 부도를 9번 겪었다.
중국은 물론 브라질이나 아르헨티나의 경우와는 아주 다르다. 경쟁력 높은 산업이 있고, 용의주도한 국가 운영 능력의 집권당이 있으며, 뜨거운 애국주의와 자부심 그리고 아직 헝그리 정신이 충만한 국민이 있다. 무엇보다 앞으로 더 나아질 것이란 큰 꿈을 꾸고 있다. 그럼에도 성장의 한계를 드러내는 현상이 분명하다. 마냥 자기식으로 성장하기만 하는 경제는 없다.
중국은 투자 주도로 연 10%씩 성장하던 시대가 이미 아니다. 공급 과잉으로 가동률이 떨어지는 국유기업을 벌써 구조조정을 해오고 있다. 사회적 생산 기반은 2010년까지 거의 완성되어 이후의 인프라 건설은 과잉이다. 토건국가의 정점도 지났다는 뜻이다. 그런 과잉 설비와 투자를 해소하는 방안으로 일대일로를 시행하고 있으나 그 프로젝트 또한 곳곳에 지뢰 밭이다. 투자와 운영 그리고 회수의 선순환이 이뤄지지 않으면 빚의 만리장성이 더 높아질 위기다. 중국의 국가 부채는 2008년 국내총생산(GDP)의 150%에서 2021년 280%로 높아졌다.
양적 성장이 한계에 다다르고 질적 전환을 해야 하는 시기가 되면 두 가지 현상이 나타난다. 고용 없는 성장으로 일자리 창출이 어렵게 된다. 자금은 풍부해졌지만 마땅한 사업 거리가 줄어들고 양극화가 심해진다. 기득권이 고착되고 부의 유동이 정체되는 것이다. 자연스레 사회 갈등이 커진다. 중국은 2014년부터 그런 현상이 생겨났고 심화되고 있다.
■국가 지체(遲滯) 현상에 봉착
중국식 사회주의가 직면한 가장 큰 난관은 국가의 지체 현상이다. 국가의 지체(遲滯) 현상이란 국가가 주도하는 경제 성장이 한계에 봉착해 지지부진을 이어가는 것을 말한다. 중국이 지금의 경제적 성취를 이룬 배경은 국가의 지도와 간섭이다. 중국은 당 우위의 국가로 국가 위에 당이 있으니, 정확하게 말하면 공산당의 지도와 간섭이다. 덩샤오핑은 “우리 체제의 강점은 효율성이다. 우리는 결정 나면 바로 실행에 들어간다”고 말한 바 있다. 공산당이 통치의 정당성과 지배의 지속성을 견지해 온 다이내믹스가 곧 경제적 성과에 있음을 강조하는 대목이다. 중국은 당의 영도로 시장을 개방하고 자유화를 확대하며 국민의 ‘비단 장수 왕 서방’ 기질을 유도해, 글로벌 최대의 제조업 국가이자 최대 무역국가로 성장했다.
■정치적 민주다원화가 과제
문제는 여기서 한 단계 더 도약해서 선진 경제가 되려면 더 많은 자유가 보장되어야 하는데, 중진국까지를 주도해 온 공산당 자신이 그걸 가로막고 있다는 사실이다. 경제 패러다임의 전환은 정치적 민주다원화와 함께 성취되는데 지금 딱 딜레마 상황이다. 그런데 시진핑 체제는 개혁 개방을 확대하는 대신 반부패 운동을 빙자한 권력 기반 강화에 몰두해왔고 민간의 활력과 창의성을 북돋아 주기보다 오히려 ‘국진민퇴(國進民退)’를 외치고 있다. 시진핑 주석이 2012년 집권을 시작하며 가장 먼저 한 작업이 소련 공산당의 해체 원인을 분석하는 것이었다. 답은 두 가지로 요약됐다. 부패와 이념 동요였다.
■반부패 작업 매진
먼저, 반부패 작업이 가혹하게 진행됐다. 10년 동안 35만 명이 넘는 관료가 부패 혐의로 조사받았고, 저우용캉 등 상무위원급 고관도 여러 명 종신형으로 수감 중이다. 문제는 “파리와 호랑이 가릴 것 없이 모두 때려잡는다”는 반부패 운동을 벌인 결과, 과연 청렴해졌냐 하는 것이다. 국제투명성기구(TI)가 매년 발표하는 부패지수에서 중국의 순위는 180국 중 2012년 80위였고 이후 77위에서 87위를 오르내렸다. 2021년에는 66위를 기록했으나, ‘제로 코로나’ 강행으로 경제 활동이 둔화한 탓의 일시적 현상이란 평가가 있다. 결론은 반부패 운동은 강력했으나 이권을 장악하고 있던 상하이 파벌을 약화하는 등 정적 제거에 성과가 있었을 뿐이다.
부패를 해소하는 상식적인 방안은 견제와 균형의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다. 독립적인 사법부와 언론의 자유 그리고 시민사회의 감시가 부정부패를 줄인다. 동시에 진행해야 할 작업은 공직자를 충분히 대우해 주는 것과 부패의 틈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공산당의 권력 독점은 그런 시스템을 만들지 못하고 있으니 구조적인 부패를 줄일 수가 없다. 결국, 부패 해소를 제대로 하면 공산당이 망하고, 부패 해소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중국이 망하는 현실이다. 구당(救黨)이냐 구국(救國)이냐 그것이 문제다.
■격차 해소와 공동부유
다음, 실용보다 사회주의 이념이 강조되어 왔다. 20차 당 대회에서도 사상 해방 즉 다소의 자유 허용이 아닌 사상 통일만 강조됐다. 공동부유는 멋진 구호다. 미국 등 선진국이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균열하고 있는 이유도 경제적 양극화, 즉 소득 불평등의 심화 때문이다. 하물며 사회주의 중국은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선 뭐든 해야 한다. 다만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잡아먹어서도 안 되고 국유기업을 민간기업보다 우대하며 창의성과 활력을 퇴조시켜서도 안 된다. 그런데 공동부유의 방식이 거칠다. 빅테크 기업을 과도하게 규제하면서 민간 영역을 주눅 들게 한다. 지금 청년 실업률이 20%에 육박한다. 새로운 일자리 창출이 한계 상황임에도 정부의 특혜로 명맥을 유지하는 국유기업에서 찾을 수는 없다. 경제는 경제의 논리로 풀어야 하는데 이념의 색채가 너무 강하다. 자본주의와 연성 독재가 실용적으로 융합되어 만들어낸 성과가 이제 체제의 경직성 탓에 뒷걸음치고 있는 형국이다.
중진국 함정을 벗어나는 최상의 방법은 자유를 확대하는 것이다. 롤 모델로서의 선진국은 없지만 그래도 선진국의 공통점은 있다. 경제적으론 자유, 정치적으론 민주의 시스템을 유지하는 것이다. 공산당 통치의 정당성을 위해서 경제적 자유를 억압하는 딜레마가 지속될수록 함정은 점점 더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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