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름-어눌한 듯한 조각속에 철학을 심다

김태언 기자 2022. 11. 2.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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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장하거나 매끈하지는 않다.

하지만 그 거친 결 사이로 깊은 고민을 담아온 조각가들의 전시가 동시에 열리고 있다.

30년 넘게 조각에 천착한 정현 작가(66)와 박미화 작가(65)가 그들이다.

조각 및 설치 87점과 드로잉 등 110점으로 구성된 전시는 정 작가의 1980년대 작품부터 최신작까지를 망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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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북구립미술관 정현 개인전
고성 산불 나무 등 버려진 재료로 기교는 최소화, 물질의 아픔 끌어내
아트스페이스3은 박미화 개인전
젖은 흙 빚어 날것 그대로 설치 “권력과 무지에 희생당한 존재 기억”
박미화 작가의 설치작 ‘회랑’ 가운데 1점. 작고 가엾어 보이는 양의 형상을 띠고 있다. 아트스페이스3 제공
웅장하거나 매끈하지는 않다. 오히려 어딘가 모르게 허름하고 어눌한 분위기가 묻어난다. 하지만 그 거친 결 사이로 깊은 고민을 담아온 조각가들의 전시가 동시에 열리고 있다. 30년 넘게 조각에 천착한 정현 작가(66)와 박미화 작가(65)가 그들이다.

전시 ‘시간의 초상: 정현’에 전시된 ‘무제’(2022년). 강원 고성 산불 현장에서 가져온 나무로 작업했다. 성북구립미술관 제공
서울 성북구 성북구립미술관에서 열리는 정 작가의 개인전 ‘시간의 초상: 정현’은 작품마다 철학적 사유가 진득하다. 대표적으로 ‘무제’(2022년)는 시커멓게 타버린 나무들이 서로를 지탱하며 무너지지 않는 형상이 인상적이다. 정 작가는 “2019년 발생한 강원 고성 산불 현장의 잿더미에서 건진 나무들”이라며 “시련을 겪은 것들은 언제나 아름답다”고 했다.

조각 및 설치 87점과 드로잉 등 110점으로 구성된 전시는 정 작가의 1980년대 작품부터 최신작까지를 망라했다. 대부분의 재료가 나무토막이나 아스팔트, 콘크리트, 잡석과 석탄이다. 작가는 “기교는 최소화하고 시간이 만들어놓은 물질의 상처와 아픔을 최대한 끌어내고자 했다”고 말했다.

그간 공개하지 않았던 석고 작품도 인상적이다.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길쭉한 인간의 형상인 ‘무제’(1987년)나 거세게 표현된 인간의 얼굴인 ‘무제’(1998년)를 보면 “브론즈가 화장한 얼굴이라면 석고는 맨 얼굴”이란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정 작가는 “많은 이들이 석고를 ‘과정의 재료’로 여기지만, 석고의 풋풋함이 좋다”고 했다. 다음 달 4일까지.

서울 종로구 아트스페이스3에서 다음 달 3일까지 열리는 박 작가의 개인전 ‘Lesser 더 적게’도 닮은 점이 많다. 박 작가도 버려진 목재 등을 이용해 “보잘것없어 보이는 것들”에 애정 어린 시선을 둬왔다.

전시엔 그의 또 다른 도전이 돋보였다. 조각에서 흙은 주로 굽거나 칠해서 사용하는데, 박 작가는 젖은 흙으로 형상을 빚어 “날것인 상태로” 배치했다. 전시장을 길쭉하고 넓게 장식한 ‘지성소’와 ‘회랑’은 누워 있는 천사와 웅크린 양 등 무기력하면서도 왠지 눈이 가는 자그마한 존재들이 한데 모여 있다. 두 작품 모두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작업했다.

모두 13점을 선보인 이번 전시 작품들은 대부분 긁히고 파인 자국들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고충환 미술평론가는 “박미화의 작업은 권력과 무지에 희생당한 존재들을 기억하고 기록하고 기념하는 일”이라며 “존재를 연민으로 감싸는 애틋한 시선이 인상적이다”라고 평했다.

박 작가는 이번 전시작 대부분을 판매하지 않을 예정이다. 박 작가는 “지구에서 더 적게 자취를 남기고 싶다”며 “흙 조형들은 전시가 끝난 뒤 흙으로 되돌려 보내겠다. 이 역시 새로운 작업으로 재탄생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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