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근 칼럼] 서해 피격, 이상하고 위험한 수사
세상은 온통 이태원 참사로 슬픔에 잠겨 있지만, 국방부와 군은 열흘 전 일로 침잠해 있다. 서욱 전 국방부 장관의 구속이 남긴 충격파가 작지 않아서다. 서 전 장관의 구속이 왜 군을 충격에 빠뜨렸는지, 몇개의 장면을 통해 되짚어보자.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지 두 달이 되어가던 지난 7월7일, 합동참모본부는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대응 과정에서 군이 군사정보통합처리체계(MIMS·밈스)의 첩보를 삭제했다는 KBS의 보도를 반박했다. 불법 삭제가 아니라 불필요한 첩보의 열람을 막기 위해 배포선을 조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군의 이런 주장은 결국 무시됐다. 정부는 국가정보원과 검찰, 감사원을 총동원해 수사한 끝에 지난달 22일 서 전 장관과 김홍희 전 해양경찰청장을 구속했다. ‘윤석열 정부의 군’의 논리를, ‘윤석열 정부의 검찰’이 깨고 관련자들에 대한 법적 처벌에 나선 것이다.
이상한 점은 이뿐이 아니다. 이 사건의 시발점은 국정원이 박지원·서훈 전 원장을 고발한 것이다. 당시 고발장은 박 전 원장이 고 이대준씨가 피격당했다는 첩보가 입수된 지 하루 뒤인 2020년 9월23일 오전 9시30분~10시 원장 집무실에서 차관급·1급 간부들을 모아 회의를 열었다고 적시했다. 이 회의에서 “국정원 시스템에 등재된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관련 첩보 및 보고서를 즉시 삭제하라는 취지의 지시를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감사원은 국방부와 국정원에서 새벽 3시에 동시에 첩보가 삭제됐다고 발표했다. 첩보를 삭제했다는 시간에서조차 두 기관의 조사가 어긋난다. 더구나 국정원은 고발장에 당시 참석자들을 적시했는데, 8월 초에 이미 퇴직한 이석수 전 기조실장의 이름까지 넣었다. 정보 삭제라는 살벌한 모의를 처벌해달라는 고발장치고는 너무나 허술하다. 감사원 조사대로라면, 국정원은 스스로 한 일조차 엉터리로 조사해 고발했다는 뜻이 된다. 엇박자는 또 있다. 이대준씨가 표류하고 있다는 사실을 국정원이 합참보다 51분 먼저 알았다는 감사원의 발표를 두고 두 기관이 다투고 있다. 국정원은 첩보 수집 수단이 없어 합참에서 정보를 받아보고서야 알았다고 하는데, 감사원은 조사 결과 국정원이 먼저 표류 사실을 인지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감사원이 국정원에 면박을 주는 태도인데, 조사 결과를 우겨대는 감사원의 고집이 기괴하기까지 하다.
관건은 서 전 장관이 밈스 첩보에 대해 모종의 조치를 취한 것의 적법성 여부다. 군에서는 실시간 판단이 생명이다. 지휘관은 정보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도 선택을 해야 한다. 그래야 다음 단계의 대응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작은 것을 포기하고 큰 목표를 취하는 게 원칙이다. 그런데 검찰의 주장대로라면, 당시 서 전 장관은 밈스에 있는 첩보들을 그대로 두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제되지 않은(첩보 내용은 암호 등이 섞여 있어 관련자 이외에는 해석할 수도 없다) 첩보를 이 사안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후방의 육군 부대까지 다 보도록 방치하는 게 과연 옳은 선택인가. 또 검찰 측은 “공용전자기록 손상죄의 큰 핵심은 손상·은닉하는 것뿐만 아니라 효용을 해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첩보를 그대로 두었다면 누군가 제대로 활용했을 수 있는데, 그 여지를 없앴다는 뜻인 듯하다. 안보의 특성과 현실을 무시한 억지 논리다.
서해 피격을 둘러싼 윤석열 정부의 감사와 수사가 말하는 것은 하나다. 바로 이 수사가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으니 너는 대답만 해)라는 것이다. 이대준씨의 탈북 조작을 기정사실화한 상황에서 안보 논리는 고려할 여지가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대준씨가 어떤 과정을 통해 희생되었는지, 당국의 잘못은 없는지 명명백백히 밝혀야 한다. 법원이 영장을 발부한 것을 보면 서 전 장관의 행위 중 미심쩍은 부분이 없지 않은 것 같다. 재판 과정에서 짚어져야 할 일이다. 문제는 이런 식의 수사가 군에 미칠 악영향이다. 안보 논리는 깡그리 무시한 채 목표를 정해놓고 어떻게든 혐의를 잡겠다고 나서면 군인들은 아무런 일도 하지 않을 것이다. 일이 터지면 상부에 보고하고 지시만 기다릴 게 뻔하다. 1일 한·미가 전투기들을 대거 동원해 공중연합훈련에 들어갔다. 그러나 정권이 안보의 특성과 논리를 무시한다면 전투기로 하늘을 뒤덮는다 해도 속 빈 강정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문제 해결의 출발은 사실을 그대로 보는 것이다. 안보에는 안보 논리를 적용하는 것이 옳다. 이태원 참사의 원인도 결국 사실을 그대로 보지 않은 것 아닌가.
이중근 논설주간 haruba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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