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현진의 돈과 세상] [95] 저축의 날
코로나19 위기든 전쟁이든, 엄청난 재정 적자를 메꾸는 방법은 세 가지다. 세금을 더 걷거나, 국채를 발행하거나, 돈을 찍는 것이다. 돈을 찍는 것은 허리띠를 졸라매는 시간을 잠시 늦출 뿐, 나중에는 인플레이션이라는 폭탄을 맞는다. 지금이 그렇다.
제1차 세계대전 초기에 일본은 의외로 여유가 있었다. 전쟁 중인데도 중국의 위안스카이 정권에 차관까지 제공했다. 강제 병합한 조선을 수탈한 결과다. 저축률을 높인 것도 큰 도움이 되었다. 1908년 일본 왕은 ‘근검조서’를 통해 국민에게 내핍과 근검절약을 명령했다.
당시 일본은 돈 찍기만큼은 최대한 피하려고 했다. ‘서양 따라잡기’를 위한 것이었다. 일본의 서양 따라잡기는 1872년 미국의 상업은행 제도를 수입하는 일로 시작했다. 1882년에는 미국은 없고, 유럽에만 있던 중앙은행 제도까지 수입했다. 그 완결판은 1897년 화폐법이다. ‘1엔=순금 0.2돈(0.75g)’을 선언하며 자랑스럽게 금본위제도에 합류했다. 그런데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자 유럽은 금본위제도를 버리고, 미국은 지켰다. 일본은 한참 갈등하다가 1917년 금본위제도를 포기했다.
이제 내핍이 더욱 중요해졌다. 왕이 내린 ‘근검조서’에 따라 일본 정부는 저축가를 보급했다. “영·미·독·백(벨기에)·화(네덜란드)를 따라잡자. 저축을 하자”는 그 노래는 제2차 세계대전 중에도 계속 울렸다. 패전 뒤 사라졌지만, 1952년 ‘저축의 날’로 부활했다. 추수한 곡식을 쟁여두듯, 번 돈을 아끼라는 뜻으로 10월 말로 정했다.
그 저축의 날을 1964년 우리나라가 수입했다. 지금은 ‘금융의 날’이라고 부른다. 저축의 날을 만들 때 저축 장려를 위해 한국은행 저축추진과를 만들었다. 지금은 금융결제국으로 변신했다. 쌓아둔 지급준비금이 상업은행들 사이에서 물처럼 잘 흐르도록 한다. 물자가 풍족하여 저량(貯量)보다 유량(流量)이 중요해진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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