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영수가 이야기하는 연극의 매력

서울문화사 2022. 11. 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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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들어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는 것. 지금 연극이 해야 할 역할이라고 배우 오영수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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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은 반세기 이상 무대에서 연기를 해오셨어요. 한길만 걷는 건 과거에도 쉽지 않았으리라 생각해요.

연극만 해서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연극에 회의도 느꼈고. 그게 한 40대 초반부터 후반까지 했던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그때는 이미 너무 연극에 빠져 있었어. 연극을 던지고 다른 일을 한다는 게 불가능했습니다. 지금 사람들은 이해가 안 될 수 있겠지만 그때는 그러고 살았어요. 돌이켜보면 잘했다는 생각이죠.

한 분야에 오래 몸담고 노력하면 얻는 건 무엇인가요?

하고 싶은 일을 꾸준히 하면서 그걸 내 몸에 새기고 그렇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경지에 도달할 수가 있는데, 지금 내가 그 경지에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일정한 수준에 머무를 정도로 연기를 해오지 않았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저는 아날로그 세대입니다. 한 가지 일을 해나가면서 경지에 오르는 것을 가장 긍정적으로 보는데, 요즘 디지털 시대를 사는 친구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는 다르겠죠.

40대면 연기를 시작한 지 20년 정도 되었을 때인데, 커리어가 무르익었을 시기예요. 무엇이 연극에 회의감이 들게 만들었나요?

그때는 경제적인 문제가 제일 컸어요. 그래서 공무원 대우를 받을 수 있는 국립극단에 들어갔어요.

국립극단에 입단하는 건 좋은 일 아닌가요?

좋죠. 그런데 1970년대 후반의 정부 산하 문화기관은 어용성이 있었어요. 그래서 대학로에서 연기하던 사람들이 잘 안 가던 곳이에요. 어지간하면 대학로 연극 무대에서 버티었는데, 그러다가 영화를 선택한 동료들도 있었죠.

TV 방송국을 가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방송국에선 내가 생각한 배역을 주지 않아요. 출연해도 한두 마디나 하던 시대였어요. 연극 무대에서 한 20년 이상 했는데, 그런 상황을 견딜 수 없었죠. 그리고 국립극단이 들어가기 쉽지 않아요. 일 년에 한 명 뽑기도 하는데, 나는 그때 들어갔죠. 나는 국립극단에 입단하고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했고, 텔레비전으로 가서 국민 스타가 된 친구도 있고 그래요.

연극 무대의 매력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무대가 선생님을 어떻게 유혹했나요?

제가 좀 내향적이어서 발표력도 부족하고 사람들 앞에서 말도 제대로 못했어요. 그런데 무대에 선다는 것은 관객과 대화를 나누는 거예요. 무대에 오르다 보면 자신감이 생길 것 같았어요. 처음에는 군대 제대하고 제대로 된 직업도 없을 때였는데 친구가 극단이나 같이 가자고 해서 따라갔어요. 그때는 내가 허우대가 좀 멀쩡해서 극단 운영하는 주인이 한두 번 더 나와보라 하더군요. 그렇게 목소리 테스트하고 극단에서 일을 시작했어요.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그때는 한 1년은 청소하고 잡일을 했죠. 그렇게 연기를 시작하고 무대에 올랐어요. 제가 30~40대일 때는 언론 통제가 있었어요. 말을 제대로 못하고 검문도 심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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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은 시대가 원하는 목소리만이 아니라
인생을 이야기해야 하는 거예요.”

그때가 1970년대 후반인가요?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죠. 관객에게 시대 비판적인 이야기를 던졌을 때 객석에서 밀려오는 반응이 엄청난 희열을 줘요. 아, 이게 무대의 맛이구나. 연기의 맛을 느꼈죠. 시대가 요구하는 가치를 관객에게 심어주는 그 자긍심에 취해 있었어요. 그런데 50대가 되어보니 그것만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어요. 연극은 시대가 원하는 목소리만이 아니라 인생을 이야기해야 하는 거예요. 인생. 그런 연기를 50대가 되어서 했어요.

연극은 인간의 삶을 온전히 다 보여줘야 한다는 것인가요?

요즘은 영화나 드라마나 사건을 다루지 인생을 이야기하지 않아요. 인생이 빠져 있어요. 연극이나 드라마는 인생을 이야기하는 거예요. 주인공이 사건을 해결하고 승리해서 이야기가 정점에 오르면 끝나요. 성공을 거둔 다음 주인공의 인생이 어떻게 되는지는 보여주지 않아요. 하지만 그 인생이 어떻게 마무리되는지를 보여주는 게 연극이에요. 셰익스피어의 희곡은 인생을 이야기하기에 지금까지도 의미가 있거든요. 요즘은 인생을 다뤄도 ‘노(老’)가 빠져 있어요. 노년이 없이는 인생을 이야기할 수가 없어요. 마무리 없이 어떻게 인생을 이야기해요. 연극계뿐만이 아닌 모든 분야가 그래요. 그래서인지 요즘 ‘방탄노년단’이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어요. 같은 작품을 젊은 배우, 노년 배우 나누어 공연하는데 노년 배우들 출연 공연은 표가 다 팔려요. 그렇게 중년이 문화 예술에 많은 관심을 할애합니다. 또 내가 ‘깐부’로 알려지다 보니 나이 든 사람들에게도 뭔가가 있다는 생각을 대중이 갖게 된 게 아닌가. 그런 생각도 듭니다.

맞습니다. 인생은 정점을 찍은 이후에도 계속되니까요.

만약 <오징어 게임>에서 성기훈이 1등을 거머쥐었는데, 오일남이라는 인물이 없다면 드라마가 단조롭게 끝났을지도 몰라요. 오일남이라는 친구가 인생을 이야기하는 의미로 나왔기에 삶과 죽음 그리고 권력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었던 거죠.

지금도 꾸준히 연극을 하고 계신데요. 관객이나 동료 등 연극계가 어른의 목소리를 요구한다고 느끼시나요?

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텔레비전을 보면 나이 든 사람이 볼 만한 프로그램이 없어요. 지금 60대, 70대, 80대는 젊은 시절 책을 많이 읽고 문화에 이해가 깊은 사람들이에요. 머릿속은 꽉 찬 사람들인데 그들이 품은 갈증을 풀어낼 창구가 없어요. 그러다 보니 중년이 연극을 보러 많이 오는 것 같고. 그리고 <오징어 게임> 때문에 우리 콘텐츠가 전 세계 문화의 흐름을 좇는 게 아니라 선도하고 있다고 느꼈어요. 우리 문화 수준이 세계적인 수준에 결코 떨어지지 않아요. 그러니 자신감을 가지라는 말도 하고 싶네요.

“서로를 쳐다보지 못하기 때문이에요.
서로의 얼굴을 보고 교감해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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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 <오징어 게임> 시즌 2에도 나오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죽었는데 뭘. 그런데 하도 여기저기서 그런 얘기가 나오니까 또 모르지.

선생님은 새로운 가치관을 가진 세대의 등장을 목격하고 함께 작업해오셨어요. 1990년대의 X세대나, 밀레니얼, 지금 Z세대까지요. 새로운 세대를 아우르며 함께 살아가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돌아가신 이어령 선생이 ‘디지로그’라는 좋은 얘기를 했잖아요. 아날로그와 디지털은 혼재하고 있다. 그런데 혼재가 아니라 공존해야 한다는 말이었어요. 아주 공감하는 말이에요. 아날로그 시대가 끝나고 디지털 시대가 오는 게 아니잖아요. 아날로그와 디지털은 혼재하고 있지만 공존해야 해요. 저는 아날로그 시대를 살아온 사람이기에 그 시대 관점으로만 생각할 수밖에 없어요. 아날로그에도 소중한 것이 있어요. 다 버릴 게 아니라 필요한 건 취하고 그러면서 새로운 것을 집어넣어야 해요. 연극이나 예술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사람을 쳐다보고 살아야 해요. 물론 코로나 때문에 불편하기는 하지만 요즘은 서로를 쳐다보지 않아요. 남녀의 문제, 노소의 문제로 사회가 분열되고 삭막해지고 있어요. 인간의 삶이 완전히 무너지고 있어요. 원인은 서로를 쳐다보지 못하기 때문이에요. 서로의 얼굴을 보고 교감해야 해요.

서로의 얼굴을 직시해야 된다는 말이 경종을 울리네요. 저 역시 휴대폰 속의 논쟁에만 몰두해 사는 건 아닌가 반성하게 됩니다.

상대방 얼굴을 안 보면 그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몰라요. 비판은 상대를 보고 생각이 틀렸다 맞다를 비판해야 하는데, 서로를 쳐다보지 않으면 자기 세계에만 빠질 수 있거든.

저출산 문제가 심각하니 앞으로는 세대 갈등도 심화되겠죠?

그럴수록 우리 예술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서로를 바라보게 만들어야 해요.

혼돈과 분열의 시대에 연극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한마디로 말하면 서로의 얼굴을 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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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shion Editor : 최태경 | Feature Editor : 조진혁 | Geust Editor : 하예지 | Photography : 목정욱 | Hair&Make-Up : 이은혜 | Assistant : 전지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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