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과 유사한 '공영방송 압박'… "권위주의 다시 등장"
“KBS에선 2008년 8월8일(KBS 이사회가 정연주 당시 KBS 사장을 해임한 날)이 치욕의 역사로 남아 있다. 경찰이 난입했고, 때마침 그날이 베이징올림픽 개막식이었다. 2010년 2월 김재철 MBC 사장이 선임되던 날엔 김연아 선수가 밴쿠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고, 2014년 안광한 MBC 사장이 선임된 날엔 김연아 선수가 은메달을 땄다.”
강성원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장이 “공영방송 종사자들에게는 대형 이벤트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다”며 이명박, 박근혜 정권 때 있었던 사건들을 언급하자, 1대 주주인 공기업의 지분매각 추진으로 지배구조 변화를 앞둔 YTN의 신호 지부장은 11월 월드컵 개막을 의식해 “지금인가”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윤석열 정부 이후 KBS, MBC, YTN, TBS 등 공영방송과 준공영방송 안팎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그만큼 이명박 정권 때와 유사성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이 ‘우리는 지금 ‘왜’ 공영방송을 말하는가’란 주제로 지난달 29일 개최한 미디어토크에 참석한 4명의 (준)공영방송사 종사자 대표들은 각 사업장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개별 사건이 아닌 2008년 때처럼 공영 미디어를 타깃으로 한 압박이라는 데 공감했다. 채영길 민언련 공동대표는 “권위주의 권력이 다시 등장했기 때문”이라고 그 배경을 설명했다.
강성원 KBS본부장은 “KBS 안과 밖에서 연계된 보수세력들”이 KBS에 대해 국민감사를 청구하고, 감사원이 이를 인용해 최근 특별감사를 한 데 대해 “이미 정식적 프로세스에서 소명됐던 내용에 대한 감사 청구로 다분히 정치적 의도를 가진 감사”라며 “2008년의 트라우마를 떠올릴 수밖에 없는 전초전 아닌가”라고 했다. 2008년에도 당시 이명박 정권의 정치적 후견 세력으로 불리던 뉴라이트전국연합 등이 국민감사를 청구, 감사원이 속전속결로 표적 감사를 진행했고, 이는 정연주 당시 사장이 해임되는 결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최성혁 언론노조 MBC본부장은 “당시 뉴라이트전국연합 기획실장 출신인 한오섭이 지금 대통령실 국정상황실장”이라며 “이걸 보면 당시와 지금의 연관성이 많이 있지 않을까 짐작해본다”고 말했다.
MBC는 대통령 욕설 보도 관련 고소·고발, 국세청 세무조사, 노동부의 특별근로감독 등 “모든 기관을 통해 경영진 특히 사장에 대한 사퇴 압박과 민영화 협박”을 받는 중이다. 최성혁 본부장은 “욕설 보도만 해도 관변단체 등 20건이 넘는 고발이 경영진을 향해 이뤄졌다”며 “이런 분위기라면 수사기관을 동원해 언제든 압수수색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기자회를 중심으로 압수수색에 대비하는 움직임이 있다”고 전했다.
YTN 역시 “거대한 이중압박”을 느끼고 있다. 정기 세무조사가 1년 앞당겨 진행됐고, 1대 주주인 한전KDN이 정부 지시로 지분매각을 추진하면서 YTN은 25년 만에 지배구조 변화 초읽기에 들어갔다. TBS는 재단법인으로 독립하며 ‘지역 공영미디어’로 재출범한 지 3년여 만에 존폐 기로에 섰다. 현재 서울시의회에 발의된 TBS 폐지 조례안이 통과될 경우 내년 7월부턴 서울시에서 예산 지원을 받을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주용진 TBS 사원행동 대표는 “TBS는 타 방송처럼 건물을 가진 것도 아니고 인건비와 운영비도 벌어야 하는 상황”이라며 “내년에 아예 방송이 없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방송사업자만의 일도 아니다. 방송정책 주무 부처이자 MBC 최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 임면권을 가진 방송통신위원회에 대한 강도 높은 감사도 최근 진행됐다. 그야말로 “복합적이고 전방위적인” 압박인 셈이다. 전 정권에서 임명된 방통위원장의 임기가 끝나는 내년 8월 이후에는 또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짐작할 수 없다. 따라서 공영방송 내부 투쟁과는 별개로 “지배구조 논의가 더 새롭게 진행돼야 한다”고 강성원 본부장은 말했다. 강 본부장은 “정치적 후견주의 배척”을 강조했고, 최성혁 MBC본부장은 “(공영방송) 사장 선임에 시민과 국민이 얼마나 참여할 수 있느냐, 여기 하나에 거의 모든 것을 걸고 있다”고 말했다.
주용진 TBS 사원행동 대표는 “공동 연대”를 주장했다. 주 대표는 “하나가 무너지면 공동으로 붕괴하고, ‘이래도 되는구나’ 여기게 될 거다. 모든 방송사가 연대해 디테일을 알려서 시민들이 공감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밝혔다. 신호 YTN지부장은 공공성을 지키는 건 (준)공영방송 종사자의 숙명일 뿐 아니라 국민과 시청자가 나눠서 져야 할 책임과 의무라고 강조했다. 신 지부장은 “뉴스채널의 공적 소유구조는 공공성 확보를 위한 중요한 요소 중 하나”라며 “결국 자본의 품으로 돌아가면 국민에 더 큰 손해로 돌아간다는 걸 시민들이 인식해주시고, 우리도 알리는데 노력할 테니 시민들도 동참해 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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