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 딛고 낸 ‘용기’가 갑질 세상 바꾸는 ‘씨앗’ 됐어요[직장갑질 고발, 그 이후]

조해람 기자 2022. 11. 1. 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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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직장갑질119 공동기획 - 공익제보자 4인의 이야기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와 함께 재직 중인 직장 내 ‘갑질’을 공론화한 4명이 지금도 갑질을 당하고 괴로워하고 있을 피해자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들고 있다. ‘한림대병원 장기자랑 갑질’ 투쟁에 참여한 이병주씨. 조해람 기자
한림대성심병원 선정적 장기자랑
노조 만들어 한목소리 내자 ‘폐지’
다른 병원서도 폐지 소식 이어져

‘선정적’ 장기자랑 관행? 뭉치면 없어진다

“한림대성심병원 계열 직원분들 계십니까?”

2017년 11월2일, 직장갑질119가 개설한 카카오톡 채널에 누군가가 들어와 제보를 쏟아냈다. 출범 바로 다음날이었다. 간호사들에게 선정적인 의상을 입혀 장기자랑을 시킨다는 이야기, 과도한 ‘보여주기식’ 화상회의 준비에 직원들을 강제로 동원한다는 이야기들이 줄줄이 나왔다. 다른 직원들도 우르르 들어와 같은 불만을 토로했다. “이거 심각하다. 해봐야겠는데? 스태프들이 다 달라붙었죠(박점규 직장갑질119 운영위원).” 직장갑질119의 ‘1호’ 사건, ‘한림대병원 간호사 직장갑질’이었다.

“장기자랑도 경쟁이 붙어서 매번 더 선정적으로…뭘 준비하고 있는지 (다른 곳에)의상이 들키면 안 되니까 화장실도 못 가게 했다더라고요.” 이 병원 임상병리사 이병주씨(49)에게도 간호사들의 폭로가 가닿았다. 2000년 입사한 그 역시 ‘공짜 초과노동’ 같은 악·폐습에 시달렸지만, “시키는 대로” 일하다 보니 다소 무뎌져 있었다. 20대 초중반 간호사들의 호소는 그를 다시 깨웠다. 오랜 세월 알음알음 이어져온 부조리들을 끊어낼 기회였다.

이씨와 몇몇 동료들은 “잘릴 각오하고” 노동조합 깃발을 세웠다. 걱정이 무색하게도 가입원서가 앞다퉈 날아들었다. 그럴수록 용기도 자라났다. 직장갑질119와 노조는 직원들의 목소리를 한데 모으고, 언론을 통해 사건을 널리 알렸다. 온 세상의 이목이 쏠리니 병원도 함부로 할 수 없었다. ‘장기자랑 폐지, 화상회의 폐지, 미지급된 시간외수당 지급.’ 완벽에 가까운 승리였다. 한림대병원 사건 이후 다른 직장 곳곳에서 ‘장기자랑 폐지’ 소식이 전해졌다.

한림대병원 사건은 노동자들이 직장갑질에 집단으로 대응한 사실상 첫 사례다. 그 흐름 한복판에서 이씨는 “뭉쳐야 바뀐다”는 교훈을 얻었다. “부분적으로 목소리를 냈다면 성공하기 힘들었을 거예요. 용기를 내준 직원들의 목소리가 한곳에 모이면서 다들 알게 된 것 같아요.” 함께 목소리를 내는 순간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흐름이 되고, 노조도 회사도 건강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그는 믿는다.

지금 이씨는 조합원 3000명을 대표하는 노조 지부장이다. 그러나 노조의 ‘안전한 울타리’ 바깥 사람들에게도 늘 관심이 많다. “직장갑질을 막기 위해선 첫째로는 노조 같은 단체가 있어야 하겠지만, 노조를 만들 수 없는 많은 사람을 위해 법도 더 촘촘해져야겠죠.” 그가 사회와 함께하는 방식이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와 함께 재직 중인 직장 내 ‘갑질’을 공론화한 4명이 지금도 갑질을 당하고 괴로워하고 있을 피해자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들고 있다. ‘성균관대 교수 갑질’을 제보한 전 대학원생 A씨(30대). 조해람 기자
교수 딸 스펙에 동원된 대학원생
‘악의 고리 끊자’ 공익신고서 제출
사건 알려져 수사, 해당 교수 파면

무소불위 ‘갑질 교수’를 끌어내리다

한림대병원 간호사들이 한참 싸우던 때, 성균관대 약대 대학원생 A씨는 실험실에서 분을 삭이고 있었다.

원해서 하는 실험이 아니었다. 지도교수 딸의 치의학전문대학원(치전원) 입시 ‘스펙’을 위한 실험에 A씨는 차출됐다. 계획부터 실제 실험까지 모두 A씨와 동료들이 했지만, 결과물은 언제나 교수 딸의 몫이었다. 실험실에 아주 가끔 얼굴만 비쳤던 딸은 그 ‘스펙’으로 서울대 치전원 입시에 합격했다. 교수는 A씨와 동료들의 몫으로 나오는 연구비 일부도 현금으로 빼앗아갔다.

‘부끄러움’이 A씨를 내내 바짝 따라붙었다. “내가 하는 일이 비도덕적이고, 불법적이라는 생각이 계속 들어서 스트레스가 컸어요.” 불만을 말할 수는 없었다. 좁은 대학원 사회에서 교수는 제왕처럼 군림했다. “두세 다리 건너면 다 아는” 제약업계 특성상 약대 교수의 권력은 무소불위였다. 학교를 그만두고 싶어도 몇 년 동안의 노력이 물거품이 될 터라 쉽지 않았다. A씨도 때로는 무뎌져야 했다. 어깨에 걸린 가족의 기대도 무시할 수 없었다. ‘참고 견디는 괴로움’이 견딜 수 없게 된 때에야 그는 대학원을 그만뒀다.

신고할 생각까지는 없었던 A씨가 마음을 돌린 건, 후배들에게 “네가 이 업계에서 어떻게 살지 지켜본다”고 협박하는 교수의 모습이었다. ‘저래서는 계속 피해자가 양산되지 않을까…악의 고리를 여기서 끊어야겠다.’ 남들 모르게 밤마다 적어 내려간 신고서를 국민권익위원회와 교육부에 제출했다. 공익제보가 처음인 그에겐 정부기관 외에도 도와줄 단체가 필요했다. 직장갑질119의 문을 두드렸다. 활동가들은 법률상담을 해주거나 기자들을 연결해줬다. “자칫하면 약사 사회에 있는 선후배들에게 피해가 갈 수 있으니 더더욱 문제가 잘 해결돼야겠다는 생각이 컸는데, 여러 사람이 도와주니 심리적으로도 큰 도움이 됐죠.” A씨의 이야기는 ‘성균관대 교수 갑질 사건’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졌다. 수사기관은 교수를 구속 기소했고, 교수 딸의 서울대 치전원 입학은 취소됐다.

“혼자서는 할 수 없던 일”이라고 A씨는 말한다. 지지와 도움을 주는 시민단체를 만났고,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기사 댓글에 많은 이들이 함께 분노해주는 것도 큰 힘이 됐다. 그러나 스스로 “운이 좋았다”고도 생각한다. A씨는 “저는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도 많을 것”이라며 “나섰다가 피해가 돌아오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저를 포함해 모든 갑질 피해자들의 심정”이라고 했다.

A씨는 지금 약학과 관계없는 회사에 다닌다. 지금 회사 사람들은 A씨의 사연을 모르지만, “대학원 분위기가 조금은 나아졌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뿌듯하다. “세상은 꾸준히 연속적으로 좋아지기보다는, 어떤 사건이 있을 때마다 계단식으로 좋아지는 것 같아요. 그렇게 성숙해지는 것 아닐까요.” A씨 사건 이후 직장갑질119에는 갑질에 취약한 대학원생들을 위한 ‘대학원생119’ 채널이 생겼다. 계단처럼 나아가는 세상에 그가 놓은 한 칸이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와 함께 재직 중인 직장 내 ‘갑질’을 공론화한 4명이 지금도 갑질을 당하고 괴로워하고 있을 피해자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들고 있다. 용산장애인복지관 직장 내 괴롭힘을 고발한 김호세아씨. 조해람 기자
사회복지사, 상사 폭언 등에 사직
가까스로 ‘괴롭힘’ 공식 판정 받아
이젠 피해자들 상담 등 도움 앞장

상담받던 피해자, 이제는 상담자로

김호세아씨(33)도 A씨처럼 스스로 계단을 놓았다. 지금 그는 다른 직장갑질 피해자들에게 계단을 놓아주는 일을 한다.

구립 용산장애인복지관 사회복지사로 취업한 김씨는 2019년 9월부터 상급자에게 꾸준히 괴롭힘을 당했다. 공금으로 개인 비품을 산 상급자에게 문제를 제기한 뒤부터였다. 상급자는 사사건건 트집을 잡았고, ‘일찍 나와서 청소를 하겠다’는 김씨를 불러 “(행동에)일관성이 없다”며 수십분간 폭언을 퍼붓기도 했다. 김씨는 정신과 진료까지 받았다. 공교롭게도 그 시점은 김씨가 복지관의 공금 횡령 의혹을 고발하고 노조에 가입하던 시기와 겹쳐 있었다.

김씨의 일은 “완전히 매듭지어지지 않은” 채로 남았다. 사직서를 제출하고 회사에 괴롭힘 신고를 했지만 회사는 ‘괴롭힘이 아니다’라고 판단했다. 분리조치도 없었다. 모든 증거를 모아 신고한 끝에 노동청에서 ‘괴롭힘이 맞다’는 판단을 받았지만 이미 직장을 “쫓겨나듯 떠난” 뒤였다. 가해자 징계도 가벼운 수준에 그쳤다고 했다. 매듭은 짓지 못했지만, 괴롭힘 사실에 대한 ‘공식 인정’이 김씨를 버티게 해줬다. “피해자의 목소리를 ‘주장’에 국한시키려는 경우가 많아요. 판정을 받으면 내가 받은 피해가 사실이라는 객관적인 근거가 생기는 셈이죠.” 그 ‘인정’에 이르는 길이 절대 쉽지 않다는 것도 깨달았다. 결국 다른 사람의 ‘도움’이 가장 절실하다. “회사 시스템에 속한 채 상급자들과 일을 하면서, 동시에 그들에게 내 권리를 요구하기는 참 어려워요. 그때 조직문화를 바로잡아주고 도움을 줄 공동체가 필요해요. 노조나 시민단체가 그 역할을 한다고 봐요.” 그 역시 신고 과정에서 직장갑질119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제가 겪은 일이 ‘직괴(직장 내 괴롭힘)’가 맞느냐”는 질문에 활동가들은 “그렇다”며 적극적으로 도왔다.

지금 김씨는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에서 상근활동가로 일하고 있다. 과거의 자신처럼 열악한 처지에 몰린 괴롭힘 당사자들을 상담하고 직접 돕는다. 자신은 사회복지사를 그만뒀지만 “복지사들이 더 안정된 조건 속에서 사회복지의 가치를 실천할 수 있게 돕는 것도 복지의 한 영역”이라고 믿는다. 지금도 어디선가 직장갑질을 당하고 있을 이들에게 그는 “여러분들은 괴롭힘당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며 “그 권리를 누가 침해한다면 우리를 찾아달라. 외면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저는 외면하지 않으려고 노력 많이 했거든요.” 그가 덧붙였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와 함께 재직 중인 직장 내 ‘갑질’을 공론화한 4명이 지금도 갑질을 당하고 괴로워하고 있을 피해자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들고 있다. 지난 8월 동남원새마을금고의 ‘밥짓기·빨래’ 갑질과 괴롭힘을 폭로한 B씨(20대). 조해람 기자
새마을금고 밥짓기·빨래 강요
‘비명 같은 제보’에 활동가들 나서
특별근로감독 시행, 국감 이슈로

“혼자 울지 말고…같이 싸워요”

많은 이들이 함께 쌓아 올린 계단의 가장 최근 칸 위에 B씨(20대)는 서 있다. 지난 8월 말 ‘동남원새마을금고 갑질·괴롭힘 사건’으로 널리 알려진 그의 이야기는 현재진행형이다.

코로나19 취업난을 뚫고 겨우 입사한 직장이었다. 들어가자마자 ‘밥짓기’를 인수인계받았을 때도, 집합금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열리는 회식에 참석을 강요받았을 때도, 그 자리에서 20대 여성이라는 이유로 ‘높은 분께 술을 따라드리라’고 요구받았을 때도 꾹 참았다. “취업난이 심각했으니까, 이 정도는 어려운 게 아니라며 스스로 타협하려 했어요.” 위태롭게 견디던 그에게 직장은 급기야 ‘남직원 수건 빨래’까지 강요했다. “사용한 사람이 빠는 게 맞지 않을까요?” 한마디 했을 뿐인데 괴롭힘이 시작됐다.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에도 폭언과 따돌림이 돌아왔다. 홀로 살던 집에서, 퇴근하는 버스정류장에서 매일같이 눈물을 쏟았다. “어느 날 거울을 봤는데 몇 년은 늙은 거 같았어요. 원래는 친구들 만나는 것도 좋아했는데, 고향도 못 가겠고….”

두 차례의 직장 내 신고가 좌절되고 괴롭힘이 점점 심각해지면서 B씨는 신고를 결심했다. 분노에서 시작했지만 두려움은 턱밑까지 차올라 있었다. ‘신고해도 해결이 안 되면? 결국 나만 괴롭거나 잘리면 어쩌지?’ 그러나 “계속 다니면 죽을 것 같아서, 신고를 이유로 더 괴롭힘을 당한다 해도 여기서 더 힘들어질 게 없어서” 마음을 먹었다. 블라인드(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에서 본 ‘직장갑질119’라는 생소한 단체에 B씨는 증거를 꾹꾹 눌러 담은 e메일을 보냈다. “정말 도움이 너무나 간절합니다…차라리 쓰러져서 정신을 잃고 싶을 따름입니다….”

비명 같은 제보였다. 활동가들은 즉각 손을 내밀었다. “폐를 끼치기 싫어하는” B씨가 망설일 때면, 박 위원과 윤지영 변호사가 “혼자 하지 말고 같이 싸우자”며 격려했다. 그 격려가 B씨에게는 아주 중요했다. “원래는 내 일이니까 남의 도움을 받지 않고 혼자 신고하려 했는데, 만약 그랬으면 얼마나 힘들었을지…제 발로 그만둬야 했을 수도 있어요.”

“혼자 하면 한계 부딪히지만
목소리 모이면 바뀔 수 있어
힘들더라도, 포기하지 않기를”

B씨의 폭로는 태풍이 됐다. 고용노동부는 동남원새마을금고에 대해 특별근로감독을 실시하고, 언론 보도나 직장갑질119에 제보된 다른 새마을금고들도 근로감독에 들어갔다. ‘관행’으로 포장된 악·폐습이 낱낱이 드러났다. 황국현 새마을금고중앙회 지도이사와 송제민 동남원새마을금고 이사장은 국정감사장에 불려나와 집중포화를 맞았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B씨 개인의 상처는 여전히 그대로다. 직장을 쉬고 있는 그는 지금도 가슴이 떨리고 불면에 시달린다. 가해자들이 아무리 뭇매를 맞았대도 최종 징계 수위는 결국 동남원새마을금고가 결정한다. ‘제 식구 감싸기’로 끝날까 봐, 다시 돌아가면 또 괴롭힘을 당할까 봐 불안한 날들이다.

그럴 때면 다시, 처음 신고에 나서기 전 찾아 읽었던 다른 갑질 제보자들의 사연들을 떠올린다. “그분들이 있어서 나도 나설 수 있었다”고 B씨는 말한다. 그래서 스스로 “내 사건이 제대로 마무리돼야 이걸 보고 용기를 내 신고하는 분들이 많을 것”이라며 “그런 의미에서 그냥 넘어가고 싶지 않다”고 다짐한다. “혼자 하면 한계에 부딪히지만, 여기저기서 목소리가 모이면 제도적인 부분도 바뀔 수 있으니 용기를 내줬으면 해요. 힘드시더라도….” 세상이 한순간에 바뀌지 않더라도 다음 사람은 더 나은 곳에서 싸울 수 있게, 앞선 다른 이들처럼 B씨도 포기하지 않고 계단을 쌓는다. 2019년 9월 직장갑질119 조사에서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했다”는 응답은 44.5%로 나타났다. 3년 뒤인 2022년 9월 조사에서는 29.1%로 줄었다.

글·사진 조해람 기자 lenn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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